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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한 여자들이 왔다. 킬링 이브

중앙일보 2019.08.03 09:00

'킬링 이브'의 두 주인공. 첩보요원 이브(산드라 오, 왼쪽)와 킬러 빌라넬(조디 코머). [사진 IMDb]

사이코패스 킬러도, 뒤쫓는 수사요원도 여자다. 그게 뭐 특별하냐 싶지만, 무엇이 다른지는 일단 보면 알게 된다. BBC 아메리카가 제작해 지난 달 콘텐트 스트리밍 서비스 ‘왓챠플레이’를 통해 국내 공개된 드라마 ‘킬링 이브’는 기존 첩보물의 틀을 깨고 세상에 없는 새로운 서사를 구축했다는 찬사를 받은 작품. 잔인하고 서늘하지만 때론 끈적하고 울컥한, 종종 웃음도 터지는 기묘하고 매력적인 이야기가 등장했다.  
 
이런 사람에게 추천 
피가 난무하는 장면을 태연하게 볼 수 있는 사람
‘양들의 침묵’ ‘아메리칸 사이코’ 등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 작품을 즐긴다면
 
이런 사람에겐 비추  
잔인한 장면은 질색인 당신
잘생긴 남주인공이 없는 드라마나 영화는 노노!  
와칭(watc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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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서, 비슷해서 끌리는 두 여자  

'킬링 이브'로 골든글로브 TV드라마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샌드라 오. [사진 IMDb]

‘킬링 이브’의 두 주인공은 영국정보국(MI6)에서 일하는 이브(샌드라 오)와 싸이코패스 암살자 빌라넬(조디 코머)이다. 빌라넬은 유럽 전역에서 상상초월 잔인한 방법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이브는 그런 빌라넬의 뒤를 쫓는다. 하지만 두 사람은 단순한 도망자와 추적자가 아니다. 서로의 존재를 감지한 순간 강렬하게 이끌리고, 사랑인지 집착인지 증오인지 모를 미묘한 감정 속에서 파국을 향해 질주한다.  
 

“빌라넬에 대해 얼마나 자주 생각하죠?” “거의 모든 순간이요.”

 
둘을 이어주는 건 자극적인 삶에 대한 열망이다. 살인을 할 때 가장 즐거워보이는 사이코패스 빌라넬은 “사람들은 어떻게 이 지겨운 삶을 계속 살아가죠?”라고 묻는다. 다정한 교사 남편과 안정적인 삶을 누리던 이브는 빌라넬의 살인 현장을 따라가며 ‘지리한 인생’에서 탈출하고픈 내면의 강한 욕구와 마주한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해 12월 ‘킬링 이브’의 두 배우 샌드라 오와 조디 코머를 ‘올해의 연기’로 선정하면서 이렇게 평했다. “이 드라마는 일종의 ‘고양이와 생쥐 쇼’(추격자와 도망자가 쫓고 쫓기는 이야기)다. 그런데 두 마리의 고양이 혹은 두 마리의 생쥐가 나온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누가 살인자인지, 누가 수사관인지 헷갈리는 상황이 펼쳐진다. 협력과 배신의 반복, 집중이 필요하다.    
 

#성 역할의 전복..스토리 자체로도 재밌다 

애정인가 증오인가, 두 사람의 관계는 복잡하다. [사진 IMDb]

‘킬링 이브’의 중심 역할은 모두 여성이다. 남자 캐릭터들은 이들의 주변에서 업무를 돕거나, 혹은 무참히 살해 당하거나 둘 중 하나다. 그동안 수많은 스릴러와 공포물에서 남자 킬러들에게 죽임을 당한 여성 캐릭터들의 ‘원한을 푸는 듯한’ 의도적 장치로 보여진다. 
 
‘킬링 이브’가 여성 술탄의 탄생(‘알라딘’)이나 여성 007의 등장(‘본드 25’) 등 최근 문화콘텐트 속 ‘전통적 성 역할 깨기&뒤집기’의 흐름 가운데 우뚝 선 작품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캐릭터의 성별에 집착하지 않고 그저 이야기 자체로만 받아들여도 충분히, 감탄이 나올 만큼 흥미진진한 스토리라는 게 강점이다. 
 

#저 무서운 배우는 누구냐?  

'킬링 이브'의 사이코패스 킬러 역할의 조디 코머. [사진 IMDb]

‘킬링 이브’는 샌드라 오에게 한국계 배우 최초 미국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 수상이란 영예를 안겼다.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는 위험한 내면과 마주하고 혼란에 빠져드는 수사관의 모습을 샌드라 오는 놀랍게 소화했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는 내내 “도대체 저 괴물 배우는 누구냐?” 싶은 건 빌라넬 역의 배우 조디 코머다. 
 
코머가 연기한 빌라넬은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다. 태연자약한 얼굴로 살인을 저지르지만, 이브의 관심이 자신에게서 떠난 걸 알자 거울 앞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화려한 걸 즐기고, 유머감각이 넘치며, 창의적이다. 어린 아이 앞에서도 태연히 살인을 하고, 사람을 죽일 땐 상상을 초월하는 괴력을 발휘하는 진짜 몬스터. 
 
이 어처구니없이 매력적인 킬러 역할을 120% 소화한 코머는 1993년생 영국 배우다. 영국 드라마 ‘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My Mad Fat Diary)’ ‘닥터 포스터’ ‘채털리 부인의 사랑’ 등에 출연했던 그는 이 작품에 자신의 모든 매력을 쏟아부으며 폭발하는 연기를 보여준다.  
 

#원작 소설과 뭐가 달라?  

BBC 아메리카의 '킬링 이브' 행사에 참가한 샌드라 오(왼쪽)와 조디 코머. [사진 IMDb]

‘킬링 이브’는 영국 소설가 루크 제닝스의 소설 『코드네임 빌라넬』을 원작으로 한다.(한국에서는『킬링 이브1-코드네임 빌라넬』 『킬링 이브2-노 투모로』로 나누어 출간됐다) 드라마를 보며 두 사람의 복잡한 심리적 교감이 약간은 뜬금없이 느껴졌다면 원작을 찾아볼 만 하다. 결핍을 지닌 두 사람이 서로에게 이끌리는 과정을 소설은 훨씬 섬세하게 묘사한다.
 
원작소설과 드라마에는 차이가 여럿 있다. 원작에서의 이브는 ‘초록 눈에 갈색머리’로 묘사되는데, 드라마에선 산드라 오가 이브 역할을 맡으면서 아시안계 여성으로 바뀌었다. 이브의 상사인 MI6 요원 캐롤린(피오나 쇼)은 원작에선 남자 캐릭터였으나 드라마에선 성별이 바뀌면서 여성들만의 서사를 완성했다. 원작에선 빌라넬의 나이가 20대 중반, 이브는 20대 후반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40대의 샌드라 오가 출연하면서 두 주인공의 나이 차가 크게 벌어졌다. 덕분에 둘의 애증관계는 보다 도발적이고 다층적으로 묘사될 수 있었다.
 
중독적인 이야기의 매력은 이런 기록으로도 확인된다. 2018년 첫 번째 에피소드 방영 후 매회 시청자 수가 증가해 마지막 방송은 첫 방송의 두 배로 시청자가 늘어났다. 리뷰 집계 사이트인 미국 메타크리틱 집계에 따르면 ‘킬링 이브’는 지난해 각종 매체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드라마 1위로 꼽혔다. 
 

제목  킬링 이브(Killing Eve)
감독  데이먼 토머스
출연  산드라 오 조디 코머 외
시즌  1(2018), 2(2019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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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 이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