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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깨면 오세요" 돌려보냈다 사망…응급실 의사 과실치사 확정

중앙일보 2019.08.03 09:00
응급실 이미지.[연합뉴스]

응급실 이미지.[연합뉴스]

술에 취해 응급실에 실려온 환자를 “술에서 깨면 다시 오라”며 돌려보냈다가 환자가 사망한 사건에서 법원이 의사에게 업무상 과실치사죄가 인정된다며 금고 8월에 집행유예 2년의 형을 확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업무상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본 원심 판단에 오해가 없다”며 의사 박모(40)씨의 상고를 기각했다고 2일 밝혔다.
 

단순 주취자인 줄 알았는데…귀가 뒤 사망

2014년 5월 어느 날 새벽 1시 반쯤 응급실에 한 남성이 실려 왔다. 술에 취한 채 코피를 흘리며 실려 온 김모(당시 45세)씨에 대한 기록은 그날의 간호 기록지에 시간대별로 남아 있다.
 
#당시 간호기록지 기록
01:36 술 취한 상태로 협조 안됨. 코피 멈춤. 병원 진료 안 보겠다 말함.
02:00 화장실에서 계속 자며 볼일 봄.
02:47 소변기에 대변보고 바닥에 토함. 같이 왔던 보호자 간 상태.
03:18 화장실 바닥에서 뒹굴고 얼굴 오른쪽 눈에 멍, 부어오름.
03:21 협조 안됨, 계속 앞으로 숙이는 모습. 당직의 확인. 정신 차린 후 진료 보기로.
04:03 보호자 와서 상태 설명. 귀가 후 술 깬 뒤 내원해 검사받기로 함.
 
하지만 집으로 돌아간 김씨는 13시간 뒤쯤 숨졌다. 그날 오후 5시쯤 김씨 배우자가 퇴근하고 보니 김씨가 숨을 거칠게 쉬고 있어 다시 응급실을 찾았지만 김씨가 두개골 외상에 의한 뇌출혈로 사망한 것이다.
 
그날 응급실 당직을 서고 있던 의사 박씨는 김씨를 ‘술에 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경찰ㆍ검찰 조사에서 “주취자라고 생각하고 경찰을 불렀다, 당시 환자 상태를 봤을 때 뇌출혈 증상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CT촬영 등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은 것뿐이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업무상 과실치사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 "의사는 최선의 조치 했어야"

1ㆍ2심 법원은 박씨의 업무상 과실을 인정했다. 우리 법은 의료사고에서 의사 과실을 인정하려면 ^의사가 결과 발생을 예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예견하지 못했고 ^그 결과 발생을 피할 수 있는데도 피하지 못했는지를 검토한다. 이런 과실이 있었는지 아닌지를 따질 때는 일반적인 의사들의 주의 정도를 표준으로 한다. 사고 당시의 일반적 의학 수준이나 의료환경, 조건, 의료행위의 특수성 등을 고려한다는 말이다. 
 
박씨의 경우 ^김씨의 뇌출혈을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예견하지 못했는지 ^사망이라는 결과를 피할 수 있었음에도 피하지 못했는지가 과실을 인정하는 데 있어 쟁점이 됐다.
 

일반 주취자와 달라…제대로 진찰했다면 알았을 것

먼저 법원은 당시 김씨가 보인 행동이 일반 주취자들과는 다르다고 판단했다. 김씨는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고 의사소통이 어려웠지만, 응급실에서 난동을 부리거나 고함을 지르는 등의 행위는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법원은 의사 박씨가 김씨의 증세를 제대로 진찰했다면 김씨의 뇌출혈 가능성 등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사람의 신체ㆍ생명ㆍ건강을 관리하는 업무 성질에 비춰볼 때 의사는 상황에 따라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최선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씨와 의사소통이 어려워도 뇌출혈 가능성을 의심하며 CT 촬영이 가능한 상태에 이르도록 노력해야 했고, 이게 불가능하다면 보호자에게라도 뇌출혈 가능성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법원은 “박씨는 김씨가 실려왔다 퇴원한 2시간 30분 동안 김씨에게 아무 치료 행위나 처치를 하지 않았다”며 박씨의 과실을 인정했다.
 
다른 의료진의 일반적인 주의 정도에 비춰 봤을 때도 박씨의 과실을 인정했다. 대한의사협회의 감정회신서에는 “당직 의사가 환자나 보호자에게 뇌 CT 촬영이 필요함을 설명하는 노력을 해야 했고, 충분한 진찰을 했다면 CT 검사를 했으리라 판단된다”는 의견이 담겼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감정서에도 “최초 병원 내원 시 적절한 조처를 했다면 사망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쓰인 점이 고려됐다. 
 
한국의료법학회장을 지낸 신현호 변호사는 “실제 응급실에서 뇌출혈 증세를 보이는 환자를 주취자로 보고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진찰권이 독점적인 상황에서 의료과실을 엄격하게 따져 환자들이 의사에게 충분하게 진료받을 권리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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