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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갈등이 안보 갈등으로…‘한국, 우방 아냐’ 아베의 도발

중앙선데이 2019.08.03 01:00 647호 2면 지면보기

[한·일 대충돌] 공격 수위 높인 일본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운데)가 2일 오전 도쿄 총리 관저에서 각의를 주재하고 있다. 각의는 이날 한국을 화이트국가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처리했다. [EPA=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운데)가 2일 오전 도쿄 총리 관저에서 각의를 주재하고 있다. 각의는 이날 한국을 화이트국가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처리했다. [EPA=연합뉴스]

“지금까지 경험했던 한·일 관계의 최저점과는 질적으로 다른 ‘최저점’이다.” “한·미 동맹과 더불어 전후 한국을 지탱해온 보조축인 안보와 경제 측면에서의 한·일 파트너십이 궤도를 이탈해 버렸다.”
 

위안부, 징용 배상 등 갈등 누적
“안보·경제 파트너십 궤도 이탈”
불가리아·아르헨보다 못한 처우

안보 협력은 미국 눈치 보며 최소화
개헌 내다본 포석, 대립 장기화될 듯

전직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2일 일본 정부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주재로 열린 각의(우리의 국무회의)에서 화이트국가 관련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처리한 직후 이렇게 논평했다. 이 시행령은 무역 관계에서 우대 조치를 제공하는 안보 우호국(화이트국가)에서 한국을 빼는 조치다. 일본이 한번 지정한 화이트국가(한국 포함 27개국)를 리스트에서 빼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수출 규제 전부터 관료 사회 폭넓게 전파
 
적어도 수출 관련 절차와 관련된 시행령에서는 ‘일본의 안보 우호국’, 즉 우방국에서 한국이 빠지는 게 공식화된 것이다. 불가리아와 아르헨티나·그리스·헝가리보다 못한 처우다. 이는 양국 갈등이 위안부 합의와 징용 문제 등 역사 갈등의 범위를 벗어나 안보의 영역으로 확대됐음을 의미한다.
 
일본이 지난달 초 불화수소 등 3개 품목 수출 규제를 강화할 때만 해도 ‘수출 관리의 적정성’ 문제로 볼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한국’이란 국가를 콕 집어 화이트국가에서 빼는 것은 차원이 전혀 다른 조치라는 분석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물론 양국 정치권 등에서는 “이번 조치를 그렇게 무겁게 볼 필요는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일본 의원들은 최근 도쿄를 찾았던 한국 의원들에게 “신뢰 관계가 회복되면 다시 화이트국가로 복귀될 것”이라고 말했다. 방문단의 일원이자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자유한국당 윤상현 의원도 “한국은 이번 조치에 큰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는 반면, 일본은 ‘제3국에 문제가 있는 물자를 보내지 않는다’는 게 증명되면 풀어주겠다는 정도의 가벼운 태도를 보였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일본 내 일부 지한파 정치인들의 이 같은 인식은 아베 정권을 움직이는 핵심 인사들의 사고와는 한참 거리가 있어 보인다. 아베 정권이 한국을 우방국으로 보지 않는다는 얘기는 지난달 수출 규제 조치가 발효되기 훨씬 전부터 총리 관저를 중심으로 ‘동심원’처럼 일본 사회에 퍼져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일 관계에 밝은 일본 측 소식통은 “지난해 12월 이후 레이더 조준 논란에 이어 징용 갈등의 피로감이 쌓이면서 한국을 중국과 북한 수준의 ‘적’으로 봐야 한다는 인식이 총리 관저와 관료 사회에 폭넓게 전파됐다”고 전했다.
 
이런 인식이 최근엔 외교안보 이슈를 다루는 일본 내 학자와 전문가들로까지 번졌다. 지난달 중순 도쿄에서 비공개로 열린 심포지엄에서는 북한 문제에 정통한 한 일본인 전문가가 “이제 일본은 한국을 안보 우호국으로 보지 않으니 향후 한반도 전략이나 한·일 관계는 이런 인식을 전제에 깔고 연구해야 한다”는 발언을 해 한국 측 참석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아베, 일본 내 강경파 눈치 볼 수밖에 없어  
 
일각에선 아베 총리가 이렇게 물밑에서 확산돼온 움직임을 이번 화이트국가 관련 조치를 통해 ‘법제화’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해석도 나온다. “전후 냉전 시대를 거치며 동북아 안보를 담당해온 한·미·일 협력 축이 실제로 갸우뚱대기 시작했으며, 앞으로 아베 총리의 구체적인 행동으로 가시화될 것”이란 전망도 그래서 나온다.
 
이와 관련, 일본 내 한국 전문가들 사이에선 “아베 총리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위안부 합의가 파기되는 과정을 지켜봤기 때문에 향후 징용 문제 등에서 부분적 진전이 있다 해도 한국에 대한 그의 접근법을 크게 바꾸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만만찮다.
 
더 나아가 “아베 총리가 한국과의 안보적인 협력은 미국이 함께 엮이는 범위 내에서만 진행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북한 비핵화 공조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등 미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최소한의 범위에서만 한·일 공조를 모색할 것이란 얘기다. 아베 총리는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한국을 뺀 채 “미국과 연계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아베 총리의 강경론은 일본 내 정치 상황과도 적잖게 연계돼 있다. 임기 내 개헌에 집착하는 아베 총리로서는 보수 강경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가 한국에 약한 모습을 보이기 어려운 상황적 요인 때문에라도 한국과의 대립을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되는 이유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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