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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고르바쵸프 맺은 핵군축 약속 30년만 폐기…미·러 냉전 부활?

중앙일보 2019.08.03 00:22
2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미국 대사관 앞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가면을 쓴 핵전쟁방지국제의사회(IPPNW ) 소속 운동가들이 미국과 러시아의 INF 조약 폐기 방침을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EPA=연합뉴스]

2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미국 대사관 앞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가면을 쓴 핵전쟁방지국제의사회(IPPNW ) 소속 운동가들이 미국과 러시아의 INF 조약 폐기 방침을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EPA=연합뉴스]

미국과 러시아가 맺은 핵군축 조약이 폐기될 운명에 처했다. 미국과 소련이 32년 전 냉전 시절 만든 조약이 사실상 백지화되면서 향후 두 국가 간의 군비 경쟁이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폼페이오, "조약 몰락은 러시아 책임"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EPA=연합뉴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EPA=연합뉴스]

AFP통신 등에 따르면 2일(현지시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성명을 내고 ”러시아가 고의로 위반한 (INF) 조약에 미국은 남아있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 이어 ”조약에 위배되는 미사일 시스템의 개발 및 배치는 미국과 동맹국에 직접적인 위협이며, 러시아의 협약 불이행은 미국의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를 위험에 빠뜨린다“라고 비판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6개월 동안 미국은 러시아에 불이행을 바로잡을 마지막 기회를 제공했지만, 러시아는 지난 수년간 그랬던 것처럼 조약 의무사항을 이행하는 대신 이에 위배되는 미사일을 보유하는 쪽을 선택했다”고 탈퇴 배경을 밝혔다. 그러면서 ”조약의 몰락은 온전히 러시아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반발한 러시아 "미국은 심각한 실수를 범했다"

러시아 외무부도 이날 미국과의 INF 조약 효력 중단을 공식 발표했다. 외무부는 이날 법률 정보 공시 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8월 2일 자로 지난 1987년 12월 8일 미국 워싱턴에서 옛 소련과 미국 간에 서명됐던 INF 조약의 효력이 미국 측의 주창으로 중단됐다”고 밝혔다.
 
외무부는 “미국은 심각한 실수를 범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며 미국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미국은 러시아가 INF 조약을 위반했다는 식의 명백한 허위 정보를 근거로 한 선전전을 펼치면서 조약을 둘러싼 사실상 극복할 수 없는 위기를 의도적으로 조성했다”며 “이는 현존하는 군비통제 시스템의 사실상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2700개 미사일 폐기…냉전 종식의 표상 INF조약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왼쪽)과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1987년 12월 미 백악관에서 INF 조약에 서명하고 있다.[EPA=연합뉴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왼쪽)과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1987년 12월 미 백악관에서 INF 조약에 서명하고 있다.[EPA=연합뉴스]

INF 조약은 미국과 옛 소련이 냉전이 한창이던 1987년 12월 체결한 것으로, 미사일의 생산과 시험, 실전배치를 금지하는 내용이다.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서명해 이듬해 6월 발효됐다. 양국은 조약에 따라 1991년 6월까지 500~5500㎞의 중·단거리 미사일 2692기를 없앴다. 또한 중·단거리 범주의 미사일을 추가로 개발·생산·배치하지 않았다. INF가 양국의 군비 경쟁을 억제하고 냉전을 종식하는 표상으로 여겨졌던 이유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러시아가 INF 조약에 저촉되는 미사일을 개발했다는 의혹이 서방 측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미국 역시 같은 시기 유럽 미사일방어(MD) 체계를 구축하면서 러시아도 미국이 조약을 위반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7년 취임 직후부터 사거리 1500km로 알려진 러시아의 9M729 순항미사일(나토명 SSC-8)을 대표적인 INF 조약 위반 사례로 꼽았다. 결국 미 정부는 지난해 10월 INF 파기를 선언했고, 지난 2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통해 조약상 의무 이행중단을 발표했다.
 
러시아도 지난달 3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미국이 조약 이행을 다시 결정할 때까지 INF 조약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법령에 서명했다. 러시아 타스통신에 따르면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차관 역시 지난달 30일 INF 조약 종료와 관련한 정책을 뒤집기 위해 수일 내로 어떤 조치도 취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신냉전 부활하나…"국제적 무기통제 합의 모색해야"

미국이 2일(현지시간) 1987년 러시아와 체결한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에서 공식 탈퇴했다.[연합뉴스]

미국이 2일(현지시간) 1987년 러시아와 체결한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에서 공식 탈퇴했다.[연합뉴스]

냉전 종식 이정표로 평가돼온 INF가 폐기 수순에 들어서면서 국제사회에선 미국과 러시아 간 군비경쟁으로 인해 ‘신냉전 체제'가 부활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한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세계는 귀중한 핵전쟁 제동장치를 잃게 될 것”이라며 “(INF 붕괴가) 탄도미사일 위협을 증가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제적인 무기통제를 위한 새로운 공동계획으로써의 합의를 즉각 모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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