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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권 모르는 ‘마라톤 맨’…두 바퀴로 세계 무대에 도전장

중앙선데이 2019.08.03 00:20 647호 26면 지면보기

[정영재의 스포츠 오디세이] 전기자전거 수출 길 연 김홍식 EME코리아 회장

대구시 신암동 EME코리아 본사 앞에서 김홍식 회장이 전기자전거 주행 시범을 보이고 있다. 송봉근 기자

대구시 신암동 EME코리아 본사 앞에서 김홍식 회장이 전기자전거 주행 시범을 보이고 있다. 송봉근 기자

마라톤은 가장 원초적인 스포츠다. 레이스는 고통스럽고, 레이스를 준비하는 과정은 더 고통스럽다. 오죽하면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가 “도로 훈련을 하다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자동차에 뛰어들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고 회고했을까.
 

삼성 육상단 출신, 2시간14분대
서울올림픽 출전 문턱에서 놓쳐

사재 80억 들여 전기자전거 사업
3년간 기술 개발, KC 인증 50개

국산 배터리 달고 내년부터 수출
“테슬라 같은 자전거 만들겠다”

마라톤은 또한 머리를 써야 하는 스포츠다. 자신의 기량과 한계를 알고, 뒤따라 가야 할 때와 튀어나가야 할 때를 잘 판단해야 한다.
 
국내에서 가장 앞서가는 친환경 모빌리티 회사인 이엠이(EME)코리아의 김홍식(55) 회장은 마라토너 출신이다. 그의 42.195㎞ 풀코스 최고 기록(2시간14분41초)은 대한민국 마라톤 역대 48위에 해당한다. 이 기록은 1988년 서울올림픽 대표 선발전이었던 동아마라톤에서 세웠고, 그는 5위로 골인해 서울올림픽 출전(3명) 문턱까지 갔다.
 
은퇴 후 사업으로 큰돈을 번 김 회장은 3년 전 전기자전거 사업에 발을 담갔다. 국내외 굴지의 대기업과 자전거 전문 메이커들이 ‘친환경’이라는 트렌드만 믿고 이 시장에 뛰어들어 고전하고 때로 실패하는 동안 김 대표는 그들의 뒤에서 묵묵히 자신만의 레이스를 해 왔다. 3년간 80억원이 넘는 자비를 들여 기술을 개발하고 각종 인증을 따냈다. 4만 대에 가까운 수출 오더를 받았지만 성급하게 제품을 출시하지 않았다. 이제 때가 왔다고 판단한 김 회장은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스퍼트를 준비하고 있다. 대구광역시 신암동 6층 건물 전체를 전기자전거·전동스쿠터·킥보드 등 자사 제품으로 채운 EME코리아 본사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충전 없이 1만㎞ 달리는 자전거도 생산  
 
김홍식 회장과 김진상 (주)아이에이치 대표(오른쪽)가 배터리 생산 업무협약을 맺고 있다. 송봉근 기자

김홍식 회장과 김진상 (주)아이에이치 대표(오른쪽)가 배터리 생산 업무협약을 맺고 있다. 송봉근 기자

지난 31일, 김 대표는 말끔한 정장 차림이었다. 이날 EME코리아와 전기자전거 배터리 전문업체 (주)아이에이치(IH)가 스마트 모빌리티 배터리 사업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EME코리아는 지분 맞교환을 통해 IH를 자회사로 편입했다. 이름도 EME에너지로 바꾸기로 했다. 70여명이 일하고 있는 이 회사는 연산  
 
2만대의 스마트 모빌리티용 배터리팩을 공급할 계획이다.
 
전기자전거를 포함한 친환경 이동수단의 핵심은 배터리다. 배터리에서 생산한 전력으로 모터를 가동해 자전거를 밀어주는 시스템이다. 현재 국내에서 유통되는 전기자전거 대부분이 중국에서 만든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제품이다. 중국산 배터리의 성능은 그리 뛰어나지 않다. IH의 김진상 대표는 “중국은 대부분 평지에서 자전거를 탄다. 우리나라는 오르막내리막이 많은 지형이다. 어떤 배터리를 쓰느냐에 따라 이동 거리, 오르막에서 차고 올라가는 힘의 차이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EME 본사 앞에 전시된 전기자전거를 타 봤다. 페달을 밟는 순간 누가 뒤에서 민 것처럼 ‘슝’하고 자전거가 앞으로 나가는 바람에 깜짝 놀라 브레이크를 잡았다. 몇 차례 조작을 통해 익숙해진 뒤 큰길로 나섰다. 기어는 1∼5단까지 변속할 수 있는데, 1단은 전기 힘이 가장 작고, 5단은 페달을 거의 안 밟아도 될 정도로 밀어주는 힘이 좋다. 배터리 충전은 휴대전화 충전하듯이 배터리팩을 콘센트에 끼우면 된다. 전원을 끄면 일반 자전거와 똑같다. 가격은 90만원에서 380만원까지다.
 
두 번째 탄 제품은 ‘버자드’라는 이름의 자가충전형 자전거였다. 페달을 밟으면 자동으로 배터리가 충전되기 때문에 별도의 충전 없이 1만㎞ 이상을 달릴 수 있다. 김 회장은 “우리 제품은 디자인이 중후해 양복을 입고 타도 모양이 나쁘지 않다. 땀이 적게 나기 때문에 출퇴근용으로 좋고, 주말에는 레저·스포츠용으로 즐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기자전거 제품들로 꽉 찬 EME코리아 본사 건물 모습. [사진 EME코리아]

전기자전거 제품들로 꽉 찬 EME코리아 본사 건물 모습. [사진 EME코리아]

서울 출신인 김 회장은 동네에서 알아주는 말썽꾸러기였다. 아버지는 골칫덩어리지만 운동은 잘 하는 아들을 초등학교 5학년 때 마라톤 명문교인 B중학교로 보냈다. 2∼3년 위 형들보다 달리기를 잘했지만 그 때문에 온갖 구박에 시달렸다. 결국 ‘제2의 고향’이 된 대구로 내려와 성광고를 졸업했고, 삼성 육상단에 들어가 마라토너로서 본격적인 담금질을 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매일 50∼60㎞를 달려 10일 만에 골인하는 훈련도 했다. 발톱 10개가 모두 빠질 정도의 고통 속에서 끈기와 자신감을 몸 속에 새겼다. 김 회장은 “우린 ‘아무리 힘들어도 기권은 없다’는 원칙으로 달렸다. 전기자전거 시장에 뛰어들어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할 때도 ‘포기는 없다’는 정신으로 이겨냈다”고 회고했다.
 
김 회장은 은퇴 후 옷장사도 해봤고, 대구에서 나이트클럽도 20년간 운영했다. 나이트클럽에서는 지역 폭력배 때문에 골치를 앓았다. 이들은 진탕 술을 먹은 뒤 손님과 시비를 붙어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든 뒤 유유히 사라졌다. 한번은 칼을 든 녀석과 죽기를 각오하고 맨몸으로 맞섰다. 그의 결기에 당황한 폭력배들은 그 뒤로 말썽을 부리지 않았다고 한다.
 
사업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을 묻자 김 회장은 ‘편견’ 이라고 했다. “운동만 한 네가, 나이트 사장 출신인 네가 기술을 알면 얼마나 알고 경영을 하면 얼마나 하겠냐는 말을 수 없이 들었다. 그때마다 ‘난 지식은 없지만 지혜는 있다. 머리는 빌리면 된다. 난 가치 있는 사람들을 연결시켜 더 높은 가치를 만들어 내는 일을 하겠다’고 응수했다.”
 
EME는 에코(Eco), 모빌리티(Mobility), 에너지(Energy)를 합친 조어다. EME는 50개 이상의 KC(국가통합인증마크), 30개가 넘는 제품군, 페라리를 포함한 해외 유명 브랜드 독점 운영권을 갖고 있다. 지난해 10월 대구에 사옥을 지어 본사를 옮겼고, 올해부터 대리점 모집을 시작해 전국 9곳에 EME 제품만을 파는 지점이 생겼다. 배터리 공장 인수에 이어 물류 전담 자회사도 만들 예정이고, 세계적인 기술을 인정받은 모터 제조 회사와도 힘을 합칠 계획이다. 내년 초부터는 ‘EME코리아’라는 이름을 단 제품을 유럽을 포함한 세계 곳곳에 수출하게 된다.
  
이봉주 등 스포츠 스타들도 홍보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 야구장 펜스에 걸린 EME 전기자전거 광고판. 배우 정준호가 전속 모델이다. 송봉근 기자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 야구장 펜스에 걸린 EME 전기자전거 광고판. 배우 정준호가 전속 모델이다. 송봉근 기자

김 회장은 소문난 마당발이다. 연예·스포츠 스타들과 친분이 두텁다. EME 전속모델인 배우 정준호를 비롯해 임창정·탁재훈 등이 발벗고 나서 그를 돕고 있다. 이봉주(마라톤)·양준혁(야구)·이용대(배드민턴) 등도 EME 홍보에 적극적이다. 김 회장은 “많은 스포츠·연예 스타들이 참가하는 ‘EME 자전거대회’를 열어 전기자전거를 알리고 수익금은 힘든 이웃을 돕는 데 쓰고 싶다”고 말했다.
 
일본 후지경제의 분석에 따르면 전 세계 전기자전거(킥보드 포함) 시장은 2015년 4000억원 규모에서 2020년에는 19조원, 2030년에는 26조원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 회장은 “정부 지원금 한 푼도 안 받고 지금까지 준비하고 버텨왔다. 정부와 지자체의 협력을 받아 본격적인 도약을 할 때가 됐다. 전기자동차 하면 테슬라를 떠올리듯 ‘전기자전거는 EME’라는 말을 듣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세종시, 전기자전거 사면 1인당 30만원 보조금 지급
전기자전거는 친환경 이동수단의 총아다. 그러나 국내에서 전기자전거는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전기자전거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았던 두 개의 걸림돌이 최근 치워지고 있다.
 
첫째는 정부의 자전거 정책이다. 그 동안 전기자전거는 ‘원동기’로 분류돼 자전거전용도로에서 달릴 수 없었다. 2017년 3월,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해 전기자전거도 자전거전용도로 통행이 가능하게 됐다. 전기자전거는 전기의 힘으로만 가는 스로틀 방식과 사람이 페달을 밟는 힘과 전기에너지가 합쳐진 방식인 PAS(페달보조방식) 두 종류가 있다. PAS 자전거만 자전거전용도로를 이용할 수 있다. 이로써 출퇴근용으로 전기자전거가 힘을 받게 됐다.
 
전기자전거를 사면 국가 보조금도 받을 수 있다. 세종시는 올해  전기자전거 구매 시 1인당 30만원씩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두 번째 걸림돌은 ‘중국’이었다. 현재 한국은 물론 전 세계를 중국산 전기자전거가 휩쓸고 있다. 그런데 올해 1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서 “중국산 전기자전거가 정부로부터 불공정한 보조금을 받고, 판매 과정에서 덤핑도 존재한다”며 중국산 전기자전거에 18.8~79.3%의 관세를 부과했다. 중국에 밀려 움츠리고 있던 국내 전기자전거 업체가 회생의 기회를 잡게 됐다.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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