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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 曰] 누가 ‘날강두’를 만들었나

중앙선데이 2019.08.03 00:20 647호 30면 지면보기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호날두 노쇼’ 파문이 거세다. 한국 팬들로부터 ‘우리 형’으로 추앙받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4·유벤투스)는 졸지에 ‘날강두(날강도+호날두)’로 전락했다. 호날두의 인스타그램에는 분노한 한국인의 댓글이 넘쳐나고 있고 호날두는 이를 지우고 있다는 뉴스도 나왔다.
 

유벤투스전 ‘호날두 노쇼’ 예고된 참사
계약서 꼼꼼히 보고 위약금 올렸어야

지난달 말 열린 ‘팀K리그’와 이탈리아 프로축구 유벤투스의 친선경기에서 호날두는 경기 내내 벤치를 지켰다. 경기 당일 입국한 호날두는 약속한 팬사인회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유벤투스 선수단은 “교통체증이 심했다”며 경기장에 지각 도착했고, 경기는 57분이나 지연됐다. 호날두를 향한 환호는 야유로, 나중엔 라이벌 “메시”를 연호하는 진풍경으로 바뀌었다. 계약서에는 호날두가 45분 이상 뛰기로 돼 있었고, 호날두의 플레이를 보기 위해 6만여명의 축구팬들이 최고 40만원짜리 티켓을 샀다.
 
이번 사태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물론 호날두와 유벤투스 구단, 그리고 주최사인 더페스타에 있다. 그러나 K리그 올스타전 차원에서 이 경기를 위해 팬 투표로 선수를 선발한 한국프로축구연맹(총재 권오갑)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K리그 올스타전은 언제부터인가 ‘하기도 안 하기도 그런’ 계륵 같은 존재가 돼 버렸다. 흥미도 박진감도 떨어지는 잔치였다. 2017년에는 ‘K리그를 확장한다’는 명분 아래 올스타를 선발해 베트남 원정을 갔다가 베트남 23세 대표팀에 0-1로 지는 망신을 당했다.
 
이런 와중에 ‘호날두+유벤투스’ 카드가 들어왔다. 유벤투스는 7월 말 베이징에서 열기로 한 친선경기가 취소되는 바람에 대안을 찾고 있었다. 국제경기 60회 이상을 주관한 매치 에이전트인 정재훈 모로스포츠 대표에게도 제안이 왔다고 한다. 정 대표는 “지난 5월 제안을 받았지만 일정이 촉박해서 거절했다. 이 정도 이벤트라면 1년 전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축구 경험이 없는 더페스타가 유벤투스와 연결됐고, 프로연맹은 검증 안 된 에이전트를 믿고 빅 이벤트를 맡겼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12시간 일정의 친선경기’가 만들어졌다. 프로연맹은 호날두를 앞세워 이 경기를 엄청나게 홍보했다.
 
유벤투스전 이틀 전인 7월 24일, K리그가 열린 울산을 찾았다. 울산 현대가 상주 상무에 2-1로 앞서 있던 후반 30분 쯤, 울산 선수단 직원이 “유벤투스전에 나가는 믹스(29·노르웨이)가 교체될 것”이라고 귀띔했고 곧바로 믹스는 아웃됐다. 키 플레이어 믹스가 빠진 울산은 후반 종료 직전 골을 허용해 2-2로 비겼다. 울산 팬들은 매우 찜찜했지만 올스타전을 위해 믹스를 빼준 김도훈 감독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렇게 K리그 구단과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이 경기를 준비했다. 선수단은 “K리그의 자존심을 걸고 멋진 경기를 보여주자”고 다짐했다.
 
결과는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었다. 유벤투스는 약속을 어겼고, 호날두는 몽니를 부렸으며, 더페스타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고, 프로연맹은 모든 책임을 더페스타와 유벤투스에 넘겼다. 결국 우롱당한 건 K리그 팬과 선수들이었다. 정재훈 대표는 “이런 이벤트 계약 때 가장 중요한 게 ‘안전장치’다. 슈퍼스타일수록 출전 조건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어겼을 경우 위약금을 매우 높게 책정해야 한다. 호날두라면 전체 개런티의 절반 정도를 걸었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론이 들끓자 프로연맹은 30일 기자 브리핑을 열었다. 누구도 사과하거나 고개를 숙이는 사람은 없었다. 김진형 홍보팀장은 “우리는 더페스타를 믿은 게 아니라 유벤투스를 믿었다”고 말했다. 호날두는 ‘날강두’ 소리를 들을 만했다. 하지만 ‘날강두’가 한국 팬을 우롱하도록 판을 깐 건 결국 우리였다. 나라의 국격도, 집안의 체통도 누가 세워주는 게 아니다. 스스로 지키고 세워나가야 한다.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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