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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총성 없는 한·일 경제 전면전 시작됐다

중앙선데이 2019.08.03 00:20 647호 30면 지면보기
한국에 대한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우대국) 배제가 현실화됐다. 지난 7월 발표된 반도체 원자재 수출 규제에 이어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일본의 2차 보복이 단행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강력한 정면대응을 선언했다. 문 대통령은 긴급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이기적인 민폐” “적반하장” “가해자” 등 격한 표현을 써가며 일본을 질타했다. 그러면서 “우리도 단계적으로 대응조치를 강화해 나갈 것”이라며 “우리 경제를 의도적으로 타격한다면 일본도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국 간에 총성 없는 경제적 전면전이 시작된 셈이다.
 

일, 화이트리스트 한국 제외 결정
문 대통령, 강력한 대응조치 선언
GSOMIA 폐기, 한미동맹에도 나빠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래 수많은 굴곡과 갈등 속에서도 상생 관계를 다져온 두 나라가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는 건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양국이 입게 될 경제적 손해와는 별개로 두 나라 국민들이 겪게 될 정신적 충격과 물질적 피해는 더 안타까운 일이다.
 
이 지경이 된 데에는 양쪽 정부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강제징용 판결에 아무리 불만이 있더라도 아베 정권이 경제 보복으로 나온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과거사를 둘러싼 정치외교적 분쟁을 무역과 연결한 조치는 온당치 않다. 지난 6월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자신이 강조한 ‘자유롭고 공정하며 차별 없는 무역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이번 조치는 누가 봐도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이다. 그런데도 “안보상 수출 관리 재검토”라고 둘러대는 것부터 떳떳하지 않은 결정임을 자인한 꼴이다. 일본이 즉각 경제 보복 조치를 철회하고 외교 협상에 나서길 다시 한번 촉구한다.
 
한국 정부도 강제징용 판결 이후 일본의 보복 조치가 내려질 때까지 8개월 동안 사실상 수수방관한 태만에 대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많은 일본 전문가들이 아베 정부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경고했음에도 당국은 근거 없는 낙관론으로 허송세월했다. 이제라도 희망적 사고에서 벗어나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길 바란다.
 
문 대통령은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는 결기 있는 발언으로 반일 감정을 고취하고 애국심에 호소하는 데 성공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 일본에 대응하고 그들의 공세를 극복할 것인가는 뚜렷하지 않다. 국민이 감내해야 할 피해는 또 어쩔 것인가. 문 대통령이 밝힌 ‘상응하는 단호한 조치’도 좋지만, 앞으로 기업과 시민이 참고 견뎌야 할 피해를 미리 헤아려 최소화하는 데 힘써야 한다. 어제 코스피가 7개월 만에 2000선이 깨진 것은 그만큼 불안 심리가 크다는 점을 반영한다. 아무리 결의를 다지더라도 경제 전쟁을 명분만으로 이길 순 없다. 실효성 있는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 국민을 안심시켜야 한다.
 
이와 함께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일본과의 안보 협력이다. 일본과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를 깨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아무리 마땅한 대응 카드가 없어도 안보 협력을 깨는 건 신중해야 한다. 우리가 GSOMIA를 통해 얻는 이익이 큰데도 오로지 일본에 타격을 입히기 위해 이를 폐기하는 건 자해 행위와 다름없다.
 
숱한 경고와 우려에도 ‘경제 전쟁’은 시작됐다. 가뜩이나 경제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초대형 악재가 터진 셈이다. 온 사회의 각별한 슬기와 노력, 그리고 인내가 요구되는 비상 상황이다. 이럴 때 앞장서야 할 게 정치권이다. 여야는 하루빨리 의미 없는 소모전을 끝내고 구체적인 묘책 마련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
 
한·일 간 충돌이 출구 없는 ‘치킨게임’의 양상으로 흐르는 모양새다. 양국의 감정이 격화되고 있지만, 전쟁 중에도 대화의 끈은 이어가는 법이다. 양국 정부가 좀 더 차분하게 머리를 맞대고 무모한 대결을 피하는 길을 찾아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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