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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금 10년 기한 넘어도 보장”…임차인 보호 판결 새 불씨

중앙선데이 2019.08.03 00:02 647호 12면 지면보기
상가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이 5년에서 10년으로 확 늘어난 데다 임차인의 권리금을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잇따르면서 건물주(임대인)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임차인 보호’ 취지는 이해하지만 임대인에게 과중한 책임을 부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임차인의 권리금을 두텁게 인정한 대법원 판결은 유사 분쟁은 물론 상가 임대차시장에도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대법, 판례 뒤집는 결정 잇따라
임대인이 직접 장사하겠다며
권리금 없이 내쫓는 관행도 제동

상가 임대인에 과중한 책임 논란
‘임대료 폭탄’으로 대응할 우려도

장사 잘되는 점포일수록 ‘자릿세’ 비싸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대법원 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지난달 상가(점포) 임대인이 임차인을 내보내면서 ‘내가 그 자리에서 직접 장사하려 한다’는 의사를 명확히 해 임차인이 후임 세입자를 구하지 않고, 이에 따라 권리금을 회수하지 못했다면 임대인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낼 수 있다고 판결했다. 임대인이 직접 점포를 운영하기 위해 권리금을 주지 않고 임대차 계약을 해지하는 식의 부당한 관행을 더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취지다. 앞서 5월에는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가 임대차 기간이 끝나 계약갱신요구권이 없더라도 임대인은 임차인이 권리금을 되찾을 기회를 보호해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권리금은 해당 점포의 인테리어 비용 등 ‘유형재산’과 매출 규모 등 ‘무형재산’에 대해 새 임차인이 기존 임차인에게 주는 돈이다. 당연히 장사가 잘되는 점포일수록 권리금이 비싸 소위 ‘자릿세’라고도 한다. 과거에는 관행으로 주고받았지만 권리금 갈등이 끊이지 않자 정부는 2015년 권리금을 법제화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이 같은 권리금은 지난해 말 기준 전국 점포 10곳 중 7곳에 형성돼 있을 정도로 보편적이다. 권리금은 그러나 임대차 계약의 당사자인 임대인과는 무관하게 임차인끼리 주고받는 구조여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법제화 이전에는 말할 것도 없고 2015년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서울시 상가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에서 벌어진 상가임대차 분쟁 원인 1위(30.9%)도 권리금이었다. 위원회 측은 “권리금 법제화 이후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 기회가 보장되고 있지만 권리금 자체가 모호한 개념인 데다 사례별로 구체적인 이해관계가 다 달라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대법원의 잇단 권리금 보호 판결은 권리금 분쟁의 새로운 기준점이 될 전망이다. 한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그동안 권리금 분쟁은 법원마다 판단 기준이 다 달라 대응이 쉽지 않았다”며 “이번 판결이 어느 정도의 기준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대법원 1부의 판결은 기존 법원의 대체적인 판결을 뒤집은 것이어서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그간의 판례는 계약갱신요구권이 있을 때까지만 권리금을 보호하는 게 타당하다는 쪽이었다. 비슷한 내용으로 소송을 냈다 패소한 임차인의 재심 신청도 잇따를 전망이다. 하지만 유사 소송이라고 해도 법원이 임차인의 손을 들어줄지는 미지수다. 관련법에는 임차인의 권리금 보호뿐 아니라 임대인의 권리도 동시에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광석 법무법인 득아 대표변호사는 “대법원의 판결이 있지만 구체적인 사례로 들어가면 내용이 다 다르고, 임대인의 사용수익권도 보장되므로 일선 법원의 판단은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소송보다 분쟁조정기구서 해결 바람직
 
상가 임대차시장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 전망이다.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으로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이 10년으로 늘어난 만큼 임대인은 최소 10년, 혹은 평생 임차인이 권리금을 회수할 수 있게 보장해야 한다. 이 때문에 상가임대차 시장에서는 이를 회피하기 위한 임대인의 편법 계약이 성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상가임대전문회사 관계자는 “임대차 계약 종료 때 임대인이 임대료를 확 올리면 권리금 회수가 쉽지 않아지고, 추후 임대인이 원하는 세입자를 골라 들일 수도 있게 된다”며 “이 같은 편법이 성행하면서 되레 임차인만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우려했다. 권리금을 지나치게 임대인 책임으로 몰아가 위헌 소송이 잇따르는 등 새로운 논란을 불러올 가능성도 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임대차 분쟁을 놓고 임대인과 임차인이 갈등을 빚고 있는 시점에서 이런 판결은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며 “판결의 취지는 좋지만 양측 갈등을 봉합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권리금 관련 분쟁이 생기면 소송보다는 우선 분쟁조정기구를 찾으라고 조언한다. 정부는 올해 4월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울중앙·수원·대전·대구·부산·광주 등 6개 지부에 상가건물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를 설치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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