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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업체 피해는] "日화이트국 배제 1112개 품목 여파…중소기업 피해 더 크다"

중앙일보 2019.08.02 10:32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면서 반도체 업계는 2차 충격을 우려하고 있다. [중앙포토]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면서 반도체 업계는 2차 충격을 우려하고 있다. [중앙포토]

일본이 한국을 이른바 화이트리스트(안보상 수출심사 우대국가)에서 제외하면서 산업용 핵심 소재와 부품, 기계 등을 일본에서 수입하는 국내 기업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달 일본의 무역보복이 시작되면서 재고 관리와 대체재 마련에 나서 왔지만 당분간 생산 차질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내 영향 어떻게 되나

이번 조치로 1112개 품목이 수출규제 영향권에 들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화이트리스트에서 빠지더라도 당장 수출규제가 이뤄질지는 알 수 없다. 산업계는 어떤 품목이 규제될 것인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한편, 일본 수입의존도가 높은 품목을 중심으로 대체품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반도체, 1차 수출규제 때보단 여유 있어
 
지난달 4일 포토레지스트(감광액)·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3개 품목에 대해 수출규제를 겪은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는 수출규제 확대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도입중인 EUV 공정에서 포토마스크는 일본 수입의존도가 높은 품목으로 꼽힌다. 삼성전자 화성 반도체 공장에서 기술자가 작업에 앞서 회로가 새겨진 포토마스크를 확인하는 모습. [중앙포토]

삼성전자가 도입중인 EUV 공정에서 포토마스크는 일본 수입의존도가 높은 품목으로 꼽힌다. 삼성전자 화성 반도체 공장에서 기술자가 작업에 앞서 회로가 새겨진 포토마스크를 확인하는 모습. [중앙포토]

반도체 분야는 1차 무역보복에 이어 추가 피해 가능성이 크다. 파운드리(수탁생산) 시장 확대를 노리는 삼성전자는 올해부터 극자외선(EUV·Extreme UltraViolet) 공정을 도입 중이다. EUV용 감광액이 이미 수출규제 대상이 됐고, EUV용 블랭크마스크 역시 일본 광학업체 호야(HOYA)가 독점 공급한다.
 
EUV 공정은 기존 불화아르곤(ArF) 노광 공정에 비해 짧은 파장으로 미세한 반도체 회로를 그릴 수 있다. 웨이퍼당 생산효율과 제품성능을 높일 수 있다. 블랭크마스크는 유리기판 위에 반도체의 미세회로를 형상화하는 포토마스크의 원재료다. 국내에서도 에스앤에스텍이 블랭크마스크를 생산하지만 호야가 세계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고, 기술격차도 꽤 크다.
 
하지만 에칭가스·포토레지스트보다는 대체 가능성이 크다는 게 국내 반도체 업계의 설명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블랭크마스크의 일본 수입의존도가 높긴 하지만 지난달 1차 수출규제 품목들에 비하면 재고도 충분히 확보돼 있고, 대체 가능성도 큰 편”이라고 말했다.
실리콘 웨이퍼 분야에서도 국내 기업인 SK실트론이 고품질 제품을 만들고 있어 대체가 불가능하지 않다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딜라이트에서 어린이들이 반도체 웨이퍼를 구경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리콘 웨이퍼 분야에서도 국내 기업인 SK실트론이 고품질 제품을 만들고 있어 대체가 불가능하지 않다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딜라이트에서 어린이들이 반도체 웨이퍼를 구경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도체의 바탕이 되는 실리콘 웨이퍼도 일본 수입의존도가 높지만, 대체가 불가능하지 않다는 게 관련 업계의 설명이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미세공정 웨이퍼 시장점유율은 일본 신에츠·섬코 등이 50% 넘게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웨이퍼 업체인 SK실트론의 기술 수준이 높아 일본산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포토마스크의 오염을 막아주는 펠리클, 웨이퍼 연마장비인 CMP 등 반도체 제조 장비 역시 일본 의존도가 높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핵심 소재의 대체품을 개발하고 기존 장비의 성능을 높이는 등 일본 수출규제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 배터리, 분리막 日의존도 높지만 대체 가능
 
산업계에선 한국의 핵심 수출 품목인 자동차 분야의 타격 역시 우려하고 있다. 우선 피해가 예상되는 분야는 전기차용 배터리와 수소전기차의 수소연료저장용기를 만드는 탄소섬유 분야다.
 
전기차 배터리는 LG화학·삼성SDI·SK이노베이션 등 국내 업체들이 세계 최고의 제조 기술력을 갖고 있다. 문제는 핵심소재를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기차 배터리는 양극재·음극재·전해액·분리막 등 4대 핵심소재로 이뤄지는데, 일본 업체는 분리막의 시장점유율이 높다. 도레이·아사히카세이 등 업체가 삼성SDI와 LG화학에 분리막을 공급한다.
지난달 24일 SK아이테크놀로지 충북 증평 공장에서 리튬이온 배터리 분리막((LiBS) 생산라인 시험 가동을 하고 있다. [사진 SK이노베이션]

지난달 24일 SK아이테크놀로지 충북 증평 공장에서 리튬이온 배터리 분리막((LiBS) 생산라인 시험 가동을 하고 있다. [사진 SK이노베이션]

 
국내에선 SK이노베이션 자회사인 SK아이이테크놀로지가 고품질 분리막을 생산한다. SK이노베이션은 일본 분리막 업체가 한국 수출을 제한할 경우, 경쟁사에 분리막을 공급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경쟁사이긴 하지만 한국 배터리 업체에 분리막을 공급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술 유출 건을 놓고 LG화학과 소송을 벌이고 있지만 국익 차원에서 LG화학에도 분리막을 공급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탄소섬유, “6개월 내 대체할 수 있다”
 
탄소섬유의 경우 일본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60%가 넘지만 6개월 이내에 국산 제품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게 관련 업계의 분석이다. 탄소섬유는 현대자동차의 수소전기차 넥쏘에 들어가는 수소연료 저장용기와 수소충전소용 저장용기 등에 사용한다.
 
현재 넥쏘에 들어가는 수소연료 저장용기는 국내 기업인 일진복합소재에서 만든다. 이 용기의 소재로 쓰이는 고강도 탄소섬유는 일본 도레이의 국내 투자법인인 도레이첨단소재 구미공장에서 생산해 공급한다.  
 
핵심 중간재인 프리커서(Precursor·원료섬유)는 일본에서 들여오고 국내에선 이를 탄화(炭化)해 탄소섬유를 생산하는데, 프리커서 자체는 전략물자에 속하지 않는다. 다만, 전략물자인 탄소섬유의 원료나 설비를 전략물자로 간주할 경우 수출이 규제될 수 있다.
 
일진복합소재가 만드는 현대차의 수소전기차 넥쏘용 수소연료 저장용기. 현재는 일본 도레이에서 탄소섬유를 공급받아 만들지만, 국내 기술로 대체 가능하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사진 일진복합소재]

일진복합소재가 만드는 현대차의 수소전기차 넥쏘용 수소연료 저장용기. 현재는 일본 도레이에서 탄소섬유를 공급받아 만들지만, 국내 기술로 대체 가능하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사진 일진복합소재]

일진복합소재는 일본의 무역보복 이전부터 현대자동차, 국내 탄소섬유 생산업체인 효성첨단소재 등과 대체재 연구를 해 왔다. 현대차 측은 “이미 연구가 거의 끝난 상태여서 인증 절차만 밟으면 당장에도 국산 제품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시간이다. 인증 절차에 최소 6개월이 걸리고, 대체재의 물성(物性)시험, 양산 테스트 등이 필요하다. 물론 수소전기차·충전소용 물량이 아직 많지 않고 재고가 충분해 당장 생산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국내 탄소섬유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방윤혁 한국탄소융합기술원장은 “한국의 탄소섬유 기술은 선진국을 거의 따라잡았다”며 “이번 기회에 산업의 기반 경쟁력이 되는 소재 분야 투자를 늘려야 미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석유화학, 국내 생산 여력 충분해
 
일본 수입의존도가 높은 일부 석유화학제품 역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전망이 있다. 하지만 국내 유화업계에선 국내 생산 여력이 충분하고, 공급선이 다양해 버틸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일본 수입의존도가 높은 품목으론 자일렌과 톨루엔 등이 있다. 자일렌은 페트(PET)병과 합성섬유를 만드는 테레프탈산(TPA)의 원료인 파라자일렌(PX)을 합성하는 데 쓰인다. 톨루엔 역시 파라자일렌을 만들거나 시너 등 도료를 만드는 데 쓰인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자일렌을 10억8500만 달러(한화 약 1조 2908억원)어치 수입했다. 일본 수입 비중은 95.4%나 된다. 톨루엔의 경우 4억7500만 달러(약 5651억원)어치를 일본에서 사들였다. 톨루엔 역시 일본 수입 비중이 79.3%에 달한다.  
 
석유화학 제품의 경우 국내 생산 여력이 크고 공급선 다변화가 가능해 일본 수출규제의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충남 서산의 현대케미칼 혼합자일렌 생산공장 전경. [사진 현대오일뱅크]

석유화학 제품의 경우 국내 생산 여력이 크고 공급선 다변화가 가능해 일본 수출규제의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충남 서산의 현대케미칼 혼합자일렌 생산공장 전경. [사진 현대오일뱅크]

유화업계는 한국의 생산능력이 수입물량을 대체하고 남는다고 말한다. 파라자일렌 생산업체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자일렌·톨루엔을 일본에서 수입하지만, 이보다 몇 배 더 많은 양을 생산해 수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애초에 일본이 석유화학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강행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현재 현대코스모 등 업체가 일본으로부터 자일렌과 같은 석유화학 품목을 들여오고 있는데, 현대코스모는 현대오일뱅크와 일본의 코스모오일의 합작사다. 업계에선 합작사가 수입하는 품목에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를 적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본다.  
 
석유화학 원료를 꼭 일본에서만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업계 관계자는 “물리적 거리가 가깝기도 하고, 일시적으로 일본산 제품의 가격이 낮은 경우나 물량을 맞춰야 하는 상황에는 일본에서 수입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서도 충분히 구할 수 있는 품목”이라고 설명했다.  
 
체력 부족한 중소기업 피해 우려
 
반도체·자동차 등 대기업 분야에 관심이 쏠리고 있지만 실제 피해가 커질 수 있는 분야는 중소기업 업종이란 우려도 있다. 특히 각종 공작기계나 수치제어반의 경우 일본 제품의 대체재가 있더라도 가격이 비싸거나 운용 노하우가 없어 바꾸기 어렵단 주장이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한국 중소기업들에 더 큰 타격이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지난 3월 독일 하노버 산업박람회에 출품된 일본 화낙의 산업용 로봇. [EPA=연합뉴스]

일본의 수출규제가 한국 중소기업들에 더 큰 타격이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지난 3월 독일 하노버 산업박람회에 출품된 일본 화낙의 산업용 로봇. [EPA=연합뉴스]

최근 인건비 상승 등으로 스마트공장 등 자동화 비율을 높인 제조업체의 경우 타격이 크다. 스마트공장에 많이 쓰이는 ‘로봇 팔’은 일본 가와사키중공업의 시장점유율이 높다. 공작기계 소프트웨어 역시 일본 화낙 제품이 시장을 장악하다시피 하고 있다. 로봇이나 공작기계 소프트웨어는 일본산 제품의 가격경쟁력과 품질이 뛰어나 다른 제품으로 대체가 쉽지 않다는 게 관련 기업의 설명이다.
 
기계공작업체 관계자는 “일본산 공작기계나 소형로봇 등이 국내에서 애프터세일즈도 편리하고 가격 면에서도 저렴하다”며 “대체품으로 바꾸면 수지타산을 맞추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성철 단국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공작기계의 핵심부품인 수치제어장치(CNC)의 경우 대부분 일본산 제품을 쓰기 때문에 일본이 수출을 제한할 경우 기계산업 전반에 타격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일본 제품에 익숙한 현장 기술자가 많고 성능대비 가격경쟁력이 높아 대체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동현·임성빈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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