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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법인가”…1일 시행 강사법에 강사·대학·학생 모두 혼란

중앙일보 2019.08.01 16:08
지난 3월 23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강사 구조조정 저지와 학습권 보장 결의대회에서 한 참가자가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월 23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강사 구조조정 저지와 학습권 보장 결의대회에서 한 참가자가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대학 시간강사 A씨(37)는 최근 서울의 한 사립대의 강사 채용에 지원하면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서류심사에 통과해 면접까지 진행한 후 합격 여부를 확인했는데, 대학의 전공 교수가 해당 과목을 맡는 것으로 돼 있어서다. A씨는 “해당 대학은 처음부터 공개채용을 할 계획이 없었던 것 같다”며 “3~4일 동안 수십장씩 서류를 준비하고, 면접을 위해 메이크업까지 받았는데 이런 결과가 나와 정말 황당하다”고 말했다. 이어 “대학에 전화해 항의할까 생각도 했지만, 나중에라도 불이익받을 게 우려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대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할까 봐 걱정된다”고 털어놨다.
 
2014년부터 서울의 한 사립대에서 시간강사로 일하고 있는 B씨(36)도 상황이 어렵긴 마찬가지다. 원래 다니던 대학의 공개 채용에 응시해 절차를 진행 중이지만 합격이 보장돼 있진 않아서다. B씨는 “올해 합격하는 사람은 3년 정도 안정적으로 생활하는 게 가능하겠지만 떨어지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냐”며 “대학원에 진학한 게 후회되고, 부모님께도 죄송하다. 누구를 위한 강사법인지 모르겠다”고 답답해했다.
 
시간강사의 처우 개선을 위한 강사법(고등교육법 일부개정안)이 오랜 논란 끝에 1일부터 시행된 가운데 강사들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시간강사 중에 당장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놓인 사람이 적지 않아서다. 교육부에서는 올해 1학기에만 약 1만개의 강의 자리가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강사법은 2010년 조선대 한 시간강사가 자살한 사건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처음 논의가 시작됐다. 이듬해 시간강사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고등교육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그 뒤로 8년간 4차례 유예됐다. “법 취지와 달리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대량해고 사태를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1일부터 시행된 강사법은 시간강사에게 법적으로 교원 지위를 부여하고 1년 이상 임용기간을 보장한다. 3년까지는 재임용이 가능하고 방학기간에도 강사에게 임금을 지급하도록 했다.
 
또 강사 일자리가 지도교수와 선배 등의 학연을 이용해 알음알음 채용되는 일을 막겠다는 취지로 공개채용도 의무화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대학이 수강신청 전까지 채용 절차를 마무리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다 보니 대학에서도 강사 채용을 완료하지 못해 학생들은 강의계획서도 보지 못한 채 수강신청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교육부에 따르면 1일 기준 신규 채용 절차를 끝낸 학교는 전국 대학 328곳(4년제 대학 191곳, 전문대 137곳)의 30%가 조금 넘는 106곳이었다. 나머지 200여 곳(67.7%)은 신규 채용 계획이 없거나 추가 모집 공고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 관계자는 “대학이 강사법에 따라 처음으로 공개 채용을 해 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조금 늦어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시간강사 처우를 개선하는 '강사법'의 8월 시행을 앞두고 지난달 24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본관 앞에서 고려대 총학생회와 고대 강사법공동대책위가 고려대 비정규직교수협의회의 요구사항과 강사법의 온전한 시행 및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을 촉구하는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시간강사 처우를 개선하는 '강사법'의 8월 시행을 앞두고 지난달 24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본관 앞에서 고려대 총학생회와 고대 강사법공동대책위가 고려대 비정규직교수협의회의 요구사항과 강사법의 온전한 시행 및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을 촉구하는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2학기 수강신청을 앞두고 강사 채용이 늦어지면서 피해는 학생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서울대 학생회가 지난달 30일 예비수강신청 기간에 개설된 3661개 강의를 조사한 결과 약 10%에 해당하는 강의에 강사가 배정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20% 강의는 강의계획서도 게재되지 않았다. 이달 5일부터 수강신청을 시작하는 한국외대는 당일까지 959개 강좌의 담당 강사와 강의계획서가 확정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학교는 현재 약 700명의 강사를 공개 채용하는 절차를 진행 중이다.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는 전날 발표한 성명에서 “많은 대학에서 수강신청을 앞두고도 강사나 강의계획안이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대학 본부와 교육부가 학생 수업권 보장과 강사법 실현에 책임지고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공개채용 준비에 대한 부담이 늘면서 강사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고려대·연세대 등 대부분 대학이 학력·경력·강의계획안뿐 아니라 최근 3년간의 연구실적을 요구하는 등 자격 기준을 높였기 때문에다. 대학들은 “공개 채용을 하게 되면 여러 사람 중 일부를 선발해야 하므로 전문성을 판단하기 위한 기준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강사들은 “강좌 1개 지원하는데 A4 용지 수십장을 준비해야 한다. 전임교원 수준을 갖춘 강사만 뽑겠다는 의도로밖에 안 보인다”고 반발했다.
 
공개채용 방식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기도에 있는 대학 등에서 시간강사로 일하는 B씨(35)는 “학력·경력 등을 알리지 않고 이뤄지는 게 아닌 이상 출신학교 지원자를 채용할 가능성이 높다”며 “결국 여러 대학에 지원하느라 강사들의 고생은 늘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지난 6월 마련한 강사제도 안착방안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방학 중 임금과 퇴직금을 지원하는 게 핵심인데, 지금까지 교육부가 확보한 예산은 288억뿐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강사법 시행에 필요하다고 추산한 금액(2965억원)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해당 금액은 방학 전체 기간에 대해 임금을 지급하고 강사에게 적용되지 않는 직장 건강보험료 등을 포함해 과다하게 산정한 것”이라며 “강사제도 관련 예산을 지속적으로 확보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청한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10년 동안 대학 등록금이 동결돼 재정이 열악한 상황에서 강사법까지 시행되니 정말 어렵다”며 “정부가 예산을 더 늘리는 것 외에는 별 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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