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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즘 뒤에 숨은 열등감, 그리고 착한여자 콤플렉스

중앙일보 2019.08.01 13:00

[더,오래] 윤경재의 나도 시인(40)

캠프파이어의 모닥불. [사진 pixabay]

캠프파이어의 모닥불. [사진 pixabay]

 
이런 사랑
어둠을 기다렸다가 반갑게 맞이하는 모닥불
땔나무가 묵었는지 젖었는지 묻지 않는다
한 둘레의 땅에서
쓸모없을 허공 속으로 자신을 태워
사랑을 한 자리에 모으려 할 뿐
어디서 왔는지
가물거리듯 흔들리는 불꽃 
푸른빛 붉은빛이 자주 주황빛으로 혀처럼 바뀐다
 
저편으로 날아가는 것도
여기서 머뭇거리는 것도
뒤돌아보는 것도
모닥불의 사랑은 아니다
 
하늘의 짙푸름과 별들의 엷은 미소를
한 줄에 꿰어 술래처럼 목걸이 건다
눈물이 흘러내려도 연기 탓이라고 둘러대면서
춤추듯 둘러앉아
너의 그는 나의 당신일지도 모른다며
일렁이는 현현*의 모습을 몸에 새긴다
 
*현현: BTS의 노래제목 '에피파니(Epiphany)'에서 따옴
 
해설
지난주에 중앙일보 ‘더 오래’ 필진 모임에서 1박 2일 행사를 개최하였다. 강원도 문막에 자리한 산막에서 실로 오랜만에 모닥불의 정취에 빠져보았다. 두 아들의 초등학교 시절에 세 가족이 모여 동해안 민박집에서 캠프파이어를 열고 추억을 심어준 게 마지막인 듯하다.
 
인류는 구석기 시대부터 모닥불을 삶의 다양한 부분에 이용해왔다. [사진 pixabay]

인류는 구석기 시대부터 모닥불을 삶의 다양한 부분에 이용해왔다. [사진 pixabay]

 
인간에게 모닥불에 대한 향수는 유전자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인류의 조상은 구석기 시대부터 사냥을 마치고 동굴로 돌아와 공동체 한가운데에 모닥불을 피우고 몸을 녹이면서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불가에 둘러앉아 이글거리는 불꽃을 바라보면서 군무를 췄다. 사냥에서 승리한 기분을 만끽했고, 실패한 기억을 되새기며 상처 입은 친구들을 위로했다. 불꽃을 통해 승리의 기쁨과 실패의 아픔이라는 상반된 감정을 통합하고 승화했다.
 
불규칙하게 이글거리며 춤추는 모닥불의 불꽃은 인간에게 시각적 마취 효과를 준다. 또 옛 기억을 통합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꿈꾸게 한다. 솟아오르는 불꽃과 연기의 색깔과 형태를 통해 내일의 일을 짐작해보는 일도 했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숨은그림찾기와 상징화’ 같은 두뇌의 특징이 모닥불을 통해 강화됐다. 갓난아이도 누워서 반짝이며 움직이는 모빌을 쳐다보며 대뇌의 시청각통합영역을 활성화한다.
 
인간의 감정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과도한 감정의 혹사가 사람을 지치게 한다. 감정에는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인 면이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다닌다. 동일한 감정에도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공존한다. 기쁨과 즐거움 같이 긍정적인 감정도 지나치면 자신의 기운을 낭비해 피로하게 된다. 공포와 슬픔, 우울과 분노 같은 부정적 감정이 꼭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다. 생명이 위기에 처했을 때 빠르게 벗어나게 한다.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 공포, 미움, 놀람, 질투, 시기 등의 감정은 어느 정상범위 안에서 온전히 표출되는 게 좋다. 유아시기에 부모나 형제 등 외부 사람과 환경에서 받은 상처로 그런 감정을 억눌러 왔다면 도리어 그것을 감추는 데 커다란 에너지가 소모된다. 소위 마음을 끓인다는 표현이 여기서 나왔다. 애간장이 녹는다는 말도 표출할 수 없어 억눌린 감정 손상으로 내장이 다 녹아내렸다는 뜻이다.
 
감정은 흐름에 따라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고,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 적용되기도 한다. [중앙포토]

감정은 흐름에 따라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고,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 적용되기도 한다. [중앙포토]

 
감정은 기(氣) 즉, 에너지이기에 어떤 흐름이 있다. 마치 열처럼 퍼지고 전달된다. 그래서 기가 드센 사람 곁에서는 기가 약한 사람이 피해를 본다. 어린아이는 아직 기가 약하기 때문에 조그만 자극에도 평생의 상처가 남는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각자 내면에 ‘상처받은 어린아이’가 남아 있게 마련이다.
 
또 관성의 법칙과 작용 반작용의 물리법칙이 고스란히 적용된다. 자기를 제일로 아는 나르시시즘 이면에는 자기 비하감, 열등감이 숨어 있는 것도 이런 원리다.
 
인간은 자기가 받은 상처를 감추기 위해 비슷한 상황이 오면 자동반사적인 행동을 취한다. 자동반사는 매번 어떤 상황을 해석하고 저항하느니 숫제 에너지 소모라도 줄이자는 방편이었다. 그러다가 적당한 기회가 오면 화산이 폭발하듯이 다른 곳에서 감정 폭발이 일어난다.
 
간혹 환자들에게 마음을 비우라고 말하면 어떻게 하는 건지 묻곤 한다. 흔히 마음을 비우는 걸 욕심을 내려놓는 것쯤으로 이해한다. 물론 옳은 말이다. 그러나 좀 더 정확한 해석은 자신에게 상처받고 억눌린 감정이 있어서 자신을 자동인형처럼 조정한다는 걸 깨닫고 그런 감정을 수긍해 다시는 자신을 강제로 조정하지 못하게 컨트롤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해결되지 않아 무엇이든 자랑하려는 욕구가 있다면 자신의 ‘상처받은 어린아이’를 보듬어 주는 게 효과적인 방법이다. 대개 어린아이가 받는 상처는 거세불안, 분리불안, 초자아 불안 등에서 온다고 한다. 그래서 과도한 의존성이 생기거나 사랑의 결핍을 채우려는 정신적·물질적 요동이 마음을 가득 채우게 된다. 그런 마음의 표현이 화와 분노, 인색함과 교만, 고집과 어리석음으로 나타난다.
 
라캉은 “대개 남성은 복종의 어려움이 있고, 여성에게는 뭔지 모를 결핍이 있다”라고 말했다.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 지배된 여성이 마음을 비우는 일이란 여기서 벗어나 도리어 결핍된 자존감을 채우는 일이다. 남성은 ‘사회적 아버지’를 만들어 닮아보려고 노력하는 게 마음을 비우는 실전적 방법이 된다.
 
사람에게는 드러난 감정과 억눌린 감정이 묘하게 얽혀 있는데 이를 양가감정이라 부른다. 감정에는 건강한 감정과 병적 감정이 있는데 이를 이해해 잘 통합하는 것이 성숙한 사람이 되는 길이다.
 
인류의 조상들은 원시시대부터 이런 복잡한 감정을 통합하는 법을 깨달아 실천했다. 그것이 바로 공동체가 모닥불 주변에 모여 춤을 추고 그림이나 노래를 통한 상징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의사들에게 종종 오래 담당하던 환자의 병에 동조되는 일이 생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투사적 동일시라고 한다. [사진 pxhere]

의사들에게 종종 오래 담당하던 환자의 병에 동조되는 일이 생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투사적 동일시라고 한다. [사진 pxhere]

 
환자를 오래 치료하다 보면 의사의 몸이 환자의 병증에 동조되는 현상이 생긴다. 마치 달의 변화에 따라 지구에 밀물과 썰물이 생기는 이치와 같다. 이런 현상을 지구과학에서는 기조력이라 말하고 심리학에서는 투사적 동일시라고 말한다. 특히 가까운 친척이나 친지를 치료할 때 이런 동일시가 뚜렷해진다. 그래서 뜻하지 않은 실수도 간혹 유발된다. 의사의 기 손상이 심해지기 때문이다.
 
최근에 오래 터전을 잡았던 한의원을 이전하고 새로 열었다. 그러다 보니 인테리어를 새로 꾸미고 홍보하며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적응하느냐 체력과 감정소모가 심했다. 환자들이 보내는 ‘투사적 동일시’ 현상과 내가 느끼는 ‘역전이 반응’이 갑자기 늘어났다. 그 결과 내 몸에서 억눌린 자동화 현상이 스멀스멀 솟아올랐다. 심리적 갈등이 온몸을 녹초로 만들고 있었다.
 
이번 필진 모임에서 각자 살아온 이야기며 미래에 대한 꿈을 발표하면서 생활의 지혜를 나눴다. 좌절과 실패를 경험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떻게 헤쳐 나왔으며 현재의 아픔이 무엇인지 눈에 선했다. 실생활과 연결돼 하나같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
 
대담을 마치고 모닥불 주변에 모여 기타반주와 함께 노래를 목청껏 불렀다. 그러자 내 몸에 치유반응이 솟아났다. 치유(healing)는 내 몸 안의 능력이 정상화해 건강을 회복하는 걸 말한다. 치료(therapy)는 약물이나 수술처럼 외부의 도움을 받아 병을 낫게 하는 것이다. 모닥불과 이런 자리를 베풀어준 모든 분에게 감사드린다.
 
윤경재 한의원 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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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재 윤경재 윤경재 한의원 원장 필진

[윤경재의 나도 시인] 시를 시인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시쓰기를 어려워들 합니다. 그러나 시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작품이든 아니든 시를 쓰면 모두 시인입니다. 누구나 그저 그런 일상을 살다가 문득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오래 기억에 남는 특별한 체험이라면 감정을 입혀 쓰는 것이 바로 시입니다. 시인으로 등단한 한의사가 연재하는 시를 보며 시인이 되는 길을 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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