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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화·고노 무거웠던 45분···'방콕담판' 빈손으로 끝났다

중앙일보 2019.08.01 12:53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차 태국을 방문중인 강경화 외교부장관과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1일 오전(현지시간) 방콕 센타라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양자회담에서 악수한뒤 각자의 자리로 향하고 있다. [뉴스1]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차 태국을 방문중인 강경화 외교부장관과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1일 오전(현지시간) 방콕 센타라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양자회담에서 악수한뒤 각자의 자리로 향하고 있다. [뉴스1]

일본 정부의 화이트 국가 결정을 하루 앞둔 1일 태국 방콕에서 한ㆍ일 외교장관회담이 열렸지만, 양국은 입장 차이를 전혀 좁히지 못했다. 외교적 저지선은 힘을 쓰지 못했고, 일본은 예상대로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에서 배제하는 결정을 2일 강행할 전망이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 동남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에 참석중인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날 오전 행사장인 센터라 그랜드 컨벤션 센터 양자회담장에서 고노 다로( 河野太郞) 일본 외상과 만난 뒤 “그것(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결정)이 만약에 내려진다면 양국 관계에 미칠 엄중한 파장에 대해서 우려했다. 일본 측은 그에 대해서는 특별히 반응이 없었다”고 밝혔다.

강경화 "시간과 여지 필요"   

미국 측이 휴전 합의(standstill agreement)를 제안하며 중재를 시도했다는 언론 보도와 관련해서는 “보도를 알고 있다. 그런 중재 이전에 수출 규제 문제나 강제징용 판결 문제에 대해 협의를 하고 만들어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고, 통상적으로 문제가 있는 국가 간에는 결국 협의를 통해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데 그런 노력을 할 수 있는 시간과 여지가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이야기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외교부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나 “기본적으로 우리는 강력하게 수출 규제 조치의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특히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방안 고려를 중단하라고 강하게 촉구했다. 일본 반응은 기존 입장에서 큰 변화가 있지는 않았고, 양측 간 간극이 아직 상당하다”고 말했다. “보도에 나온 미국의 중재안과 관련해 특별한 논의는 없었다”면서다. 강 장관이 언급한 ‘시간과 여지’는 우선 화이트 국가 결정 등 추가 조치를 중단해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뜻으로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휴전 합의 제안의 취지와 큰 틀에서 일맥상통하지만, 일본 측은 이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고노, 기존 입장 앵무새 반복

실제 고노 외상은 회담 내내 기존 일본 입장을 반복했다. 수출 규제 조치가 강제징용 문제 때문이 아니라 자국의 안보를 위한 결정이라고 주장하면서도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을 또 문제삼았다는 것이다. 한국에 ‘1+1(일본 기업과 한국 기업이 자발적으로 출연한 기금으로 피해자 배상)’ 방안 이외의 제안을 가져오라는 주장도 되풀이하면서다.  
이번 회담이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에 있어 전환점이 될 지 관심을 모았지만, 이처럼 양측 모두 기존 입장을 반복하면서 결국 일본의 화이트 국가 결정을 막기 위한 마지막 담판도 성과를 내지 못했다. 정부는 일본이 화이트 국가 결정을 강행할 경우 한ㆍ일 간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파기를 포함해 모든 옵션을 열어놓고 추가 대응을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1일 오전(현지시간) 태국 방콕 센타라 그랜드호텔에서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과 양자회담을 하기에 앞서 취재진의 철수를 기다리고 있다.[연합뉴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1일 오전(현지시간) 태국 방콕 센타라 그랜드호텔에서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과 양자회담을 하기에 앞서 취재진의 철수를 기다리고 있다.[연합뉴스]

"한ㆍ일 안보 틀 검토할 수밖에"

이와 관련, 강 장관은 “내일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하는)각의 결정이 나온다면 우리로서도 필요한 대응조치를 강구할 수밖에 없다”며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원인이 안보상의 이유라는 것이었는데, 우리도 여러 가지 한ㆍ일 안보의 틀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지소미아 연장을 재검토할 수 있냐고 다시 묻자 “한ㆍ일 안보협력의 틀에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며 지소미아 파기 검토 가능성을 시사했다.
결국 실질적 성과를 내지 못한 채 한ㆍ일 외교 수장 간 회담이 끝난 데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엄중한 메시지를 다시 한번 전달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보고, 결과와 별도로 외교 사안이란 것은 과정도 중요하다고 본다”며 “그에 따라 나오는 결과에 대한 책임은 저희 쪽이 아니라 상대편 쪽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외교가에선 한·일 대립의 선봉에 일본 총리관저와 청와대가 서있기 때문에 외교당국의 협의 권한은 애초에 매우 제한적이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날 저녁 갈라만찬에서 강 장관과 고노 외상,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한 데 모일 기회가 있었지만, 이 역시 무산됐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폼페이오 장관은 갈라만찬에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오후 불참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한다. 정확한 이유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처럼 한·일 장관회담에서 양국이 입장 차를 전혀 좁히지 못하면서 2일로 오후 예정된 한·미·일 3국 외교장관 회담에서도 실질적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졌다. 다만 3국 장관이 만나기 전 한·미 및 미·일 장관 회담이 진행된다. 폼페이오 장관이 강 장관과 고노 외상을 만나 양국 간 갈등 완화를 위한 중재안을 직접 제안할지 주목된다. 한·미 및 미·일 장관 회담 결과에 따라 한·미·일 장관회담에서 3국이 발신한 메시지의 내용과 수준이 달라질 수 있다.  

실제 45분 회담…실질 성과 못내

심상치 않은 기류는 회담 시작 때부터 감지됐다. 강 장관과 고노 외상은 휴대전화로도 가끔 통화할 만큼 친분이 두터운 사이이지만, 이날은 달랐다. 회담장에 먼저 도착한 강 장관이 굳은 표정으로 고노 외상을 맞았고, 고노 외상도 한국 측을 향해 가볍게 목례를 했을 뿐이다. 자리에 착석하고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13초 동안 두 장관은 인사는 커녕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당초 회담은 오전 8시40분부터 9시25분까지 45분으로 예정돼 있었지만, 사안의 무게감을 고려했을 때 이를 훌쩍 넘길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두 장관은 8시44분에 회담장에 들어왔고, 55분만인 9시39분에 회담이 종료됐다.  
하지만 사실 본격적인 회담은 이보다 짧았다. 회담을 시작할 때는 양측에서 각기 당국자 6명씩 배석했는데, 8시54분에 장관과 통역, 한ㆍ일 관계 주무 당국자(한국측은 김정한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 일본 측은 가나스기 겐지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 등 세명만 남기고 다른 배석자들은 모두 퇴장했다. 본격적이고 집중적인 회담은 8시54분부터 9시39분까지 사실상 45분 이뤄진 셈이다. 순차통역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회담 시간은 20분 남짓이다. 실질적 협의가 아니라 양측의 입장교환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방콕=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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