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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몸속에 6개의 피가 흐른다…존슨 총리의 브렉시트 역설

중앙일보 2019.07.30 06:00
흔히 미국을 ‘인종의 용광로’라고 부른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융합하면서 산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24일 취임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개인 용광로’로 불릴 만큼 조상의 혈통의 다양하다. '다문화 영국'을 반영한다. 
우선 그의 증조부는 터키인이다.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언론인, 시인, 자유주의적 정치인인 알리 케말(1867~1922년)이다. 알리 케말은 오스만 튀르크 제국 말기에 3개월간 내무장관을 지냈는데, 터키 공화국이 들어서는 과정에서 정치적 테러로 목숨을 잃었다. 

글로벌 혈통으로 다문화 영국 반영
증조부는 영국서 활동 터키 무슬림
러시아 유대인에 독일·프랑스 조상
뉴욕서 태어나 3년 전까지 이중국적
주요 각료에 파키스탄, 유대, 인도계
민족주의·배타주의와는 거리 멀어
EU엔 회의주의-브렉시트 강력 추진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지난 24일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 앞에서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지난 24일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 앞에서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증조부는 영국에 살았던 터키 언론인

알리 케말은 영국에서 언론인 활동을 하면서 영국·스위스 핏줄의 아이린 윌리엄스와 결혼해 살았는데 1909년 아들 오스만 윌프리드 케말이 태어나는 과정에서 부인을 잃었다. 알리 케말은 1912년 딸 셀마와 아들 오스만을 장모인 마거릿 브룬에게 맡기고 터키로 돌아갔다. 브룬은 자신이 기르던 외손주들에게 결혼 전에 사용하던 ‘존슨’이란 성을 붙였다. 존슨 총리의 할아버지인 오스만 윌프리드 케말은 윌프리드 존슨이란 영국식 이름을 얻고 영국인으로 성장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왼쪽)가 지난 24일 형식적인 총리 지명을 받기 위해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을 만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왼쪽)가 지난 24일 형식적인 총리 지명을 받기 위해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을 만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할머니 쪽으로  영국·프랑스 혈통

윌프리드 존슨은 아이린 윌리엄스와 결혼했는데 바로 존슨 총리의 할머니다. 아이린은 스탠리 윌리엄스와 마리루이즈 폰 페펠 사이에서 태어났다. 마리루이즈는 독일 귀족 휴베르트 폰 페펠 남작(1943년 독일 뮌헨 출생)과 프랑스 여성 엘렌 아르뮈리베에르(1862년 파리 태생) 사이에서 태어났다. 엘렌은 19세기 유럽 체스 챔피언인 쥘스아르뮈리베에르(1830~1905년)의 딸이다. 존슨 총리의 정식 이름인 알렉산더 보리스 드 페펠 존슨에 있는 ‘ 드 페펠’은 그의 독일 혈통을 드러낸다.    

윌프리드 존슨과 아이인 윌리엄스 사이에서 1940년 아들 스탠리 존슨(79)이 태어났다. 존슨 총리의 아버지인 스탠리 존슨은 옥스퍼드대 엑스터 칼리지를 졸업하고 작가, 행정가, 정치인으로 일했다. 1979~84년 유럽의회의원(MEP)을 지냈으며 세계은행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서도 근무했다. 존슨 총리와 달리 브렉시트에 반대하고 영국의 EU 잔류를 지지한다.  
 

외가쪽으로 유대·러시아 핏줄

스탠리 존슨은 샤를로트포셋(77)과 결혼했는데 바로 존슨 총리의 어머니다. 샤를로트는 옥스퍼드대 레이디 매거릿 홀 칼리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화가로 활동했다. 1979년 스탠리 존슨과 이혼하고 1988년 미국인 역사학자 니컬러스 월과 재혼했으나 1996년 사별했다. 샤를로트는 전 남편 두 사람의 성을 모두 붙여 존슨 월이라는 성을 쓴다.  
샤를로트의 아버지, 즉 존슨 총리의 외할아버지인 제임스 포셋(1913~1991년)은 옥스퍼드대를 졸업하고 변호사로 일했으며 미국인 프랜시스 레비와 결혼했다. 프랜시스의 아버지인 엘리아스 애버리레비(1879~1969년)는 유대계 러시아인으로 1892년 미국에 이민을 떠났으며 1900년 미국 시민이 됐다. 엘리아스는 독일 뮌헨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고문서학 교수로 1913년에서 1936년까지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1936년 이후에는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교수로 일했다. 존슨 총리의 ‘보리스’라는 러시아풍 이름은 부모가 만난 적이 있는 러시아 이민자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영국의 브렉시트 반대파들이 지난 20일 런던 하늘에 띄운 보리스 존슨 총리 모습의 풍선. [로이터=연합뉴스]

영국의 브렉시트 반대파들이 지난 20일 런던 하늘에 띄운 보리스 존슨 총리 모습의 풍선. [로이터=연합뉴스]

뉴욕서 출생해 한동안 영국·미국 이중국적

존슨 총리의 몸에는 영국인과 함께 터키 무슬림, 유대인, 러시아인, 독일인, 프랑스인의 피가 모두 흐르는 셈이다. 어머니 샤를로트는 가톨릭 신자인데, 존슨 총리는 대학 시절 영국 국교회 교회를 다녔다. 존슨 총리는 1964년 6월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미국과 영국 국적을 동시에 얻었으나 2016년 미국 국적은 버렸다.

1987년 알레그라 모스틴오웬과 결혼했지만 1993년 이혼했다. 같은 해 영국 변호사, 작가, 칼럼니스트인 마리나 휠러와 재혼했지만 2018년 별거에 들어갔으며 이혼 절차가 마무리 단계다. 마리나 윌러는 영국인 BBC 특파원 출신의 찰스 휠러외 인도 시크교도인 딥 싱 사이에서 태어났다. 존슨 총리는 현재 24세 연하의 캐리 시먼즈(31)와 함께 살고 있는데 총리 관저인 다우닝가 10번지에서 입주한 첫 '퍼스트 여자친구'가 됐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결혼식 [사진_아이비브라이드 홈페이지]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결혼식 [사진_아이비브라이드 홈페이지]

 

영국 왕실도 독일 혈통

이처럼 존슨 총리보다 더 국제적이고 범유럽적인 혈통은 영국은 물론 유럽 정치인 중에서도 찾기 힘들 것이다. 그런 인물이 영국 총리를 맡아 브렉시트, 즉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주도하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영국의 윈저 왕실도 부계를 따지면 독일 하노버 왕조와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인 앨버트의 독일 작세코부르크고타 가문의 피가 함께 흐른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싸우면서 작세코부르크고타라는 왕실 이름을 영국식인 윈저로 고쳤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지난 25일 하원에서 자신이 조각한 내각 핵심 인물과 나란히 앉아 있다. 왼쪽부터 제이콥 리스모그, 하원원내총무, 유대계인 도미니크 랍 외교장관, 존슨 총리, 파키스탄계인 사이드 자비드 재무장관,, 인도계 프리티 파텔 내무장관, 안드레아 레드섬 에너지부 장관. [AP=연합뉴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지난 25일 하원에서 자신이 조각한 내각 핵심 인물과 나란히 앉아 있다. 왼쪽부터 제이콥 리스모그, 하원원내총무, 유대계인 도미니크 랍 외교장관, 존슨 총리, 파키스탄계인 사이드 자비드 재무장관,, 인도계 프리티 파텔 내무장관, 안드레아 레드섬 에너지부 장관. [AP=연합뉴스

 

다문화 영국 반영한 내각 구성

이런 존슨 총리는 지난 24일 총리에 오른 뒤 실시한 조각에서 글로벌한 인물에게 요직을 맡겼다. 예산과 재정을 담당해 내각에서 총리에 이어 막강한 권한을 보유한 재무장관은 사지드 자비드 전 내무장관이 맡았다. 자비드는 파키스탄 무슬림 이민자의 아들로 영국에서 태어났으며 보수당 대표 경선에도 나선 적이 있다. 외교장관은 대표적인 강경 브렉시트주의자인 도미니크 랍 전 브렉시트부 장관이 맡았는데, 아버지가 유대인이다. 유대 사회는 모계전통이 있어 유대교 신앙과 함께 어머니가 유대인이어야 유대인으로 인정하는데, 이 기준에 따르면 랍은 유대인은 아니고 유대 혈통을 가진 것으로 분류한다. 내무장관을 맡은 프리티 파텔 전 국제개발부 장관은 인도 출신으로 우간다를 거쳐 영국으로 이주한 부모 사이에서 런던에서 태어났다. 파텔은 브렉시트 강경파로 “영국인 노동자들이 게으르다”는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존슨은 이 같은 조각을 통해 편협한 민족주의나 배타주의를 따르지 않고 ‘다문화 영국’의 현실을 존중하고 반영하는 정책을 펴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인종차별적 발언 트럼프와 차별화 

그런 점에서 최근 인종차별적인 발언으로 구설에 오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확실한 차이를 보인다. 트럼프는 자신에 대한 비판을 주도하는 푸에르토리코·소말리아·팔레스타인·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비롯한 소수계 여성 하원의원들에게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발언을 하면서 인종차별 논란에 휘말렸다. 이 가운데 두 사람은 난민 출신으로 어려서 미국에 입국했으며 나머지는 미국에서 태어났다. 
영국에서 총리는 하원 집권당 벤치의 가장 앞에 앉아 건너편에 앉은 야당 의원들을 직접 상대한다. 좌우로 소수계 정치인과 함께 앉아 있는 존슨의 모습은 트럼프와 확실히 구분된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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