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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줘도, 일본행 보이콧…제주 갈까했더니 갈치조림 6만원

중앙일보 2019.07.30 05:00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기자는 지난 5월 가족 여행으로 일본 시즈오카 현을 다녀왔다. 실마리는 시즈오카에 새로 취항한 제주항공의 '가성비' 항공권이었다. 세 식구 합해 32만원으로 제주 왕복 항공권 30만원(29일·8월 2일 왕복 일정, 29일 오후 5시 홈페이지 최저가 기준)과 비슷하다.
 

[현장에서] 어쩌다 한해 2800만명이 해외로 나가게 됐을까

5일간의 일정 중 1순위 여행지는 산골 마을 기차역 센즈였다. 세 살 아들이 너무나 가보고 싶어하는 '토마스 기차'를 운행하는 역이다. 시즈오카 공항서 52km 떨어진 곳으로 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대중교통은 버스와 기차를 두 번 갈아타야 하고, 차로 가면 구불구불한 산길을 1시간 반 달려야 한다.
 
그래도 수고스럽지 않았다. 동화책에서 본 토마스 기차가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아들은 좋아 자지러질 정도였다. 비행기 값을 두배로 지불한다 해도 아깝지 않은 경험이었다. 여행 마지막 날 시즈오카 현으로부터 받은 현금 3000엔(약 3만3000원)도 인상적이었다. 공항서 렌터카를 이용하고, 시즈오카에서 1박을 한 모든 일본·외국인에게 현금으로 지급한다.
 
지난해 봄, 세 식구는 제주도로 1주일간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주중이라 호텔은 비교적 저렴했다. 문제는 밥값이었다. 제주 특산물인 오분자기뚝배기 1인분에 2만원, 갈치조림·고등어구이는 보통 5만~6만원이었다. 가족 여행객이 감당하기엔 버거운 한 끼 식사가 거기 있었다. 총 경비도 제주가 시즈오카보다 더 들었다.
 
이달 초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촉발한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조치가 한국인의 일본여행을 강타했다. 거의 모든 여행사의 이달 예약률(예약 시점 기준)이 반 토막 났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7월 들어 점차 줄어 넷째 주 예약률은 평소의 30% 수준"이라고 했다. 아베의 강공이 점쳐지면서 앞으로 일본여행 보이콧은 갈수록 위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하나투어는 "일본여행 가지 말자" 이후 중국·동남아 노선 예약률이 20% 이상 증가했다고 지난 26일 밝혔다. 반면 이달(1~27일) 제주 입도객은 97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95만명)보다 2.5% 늘었다는 데 그쳤다. 두 경우로 단정 짓기는 이르지만, 일본 보이콧 움직임이 아직 "국내 여행 가자"로 나타나고 있지 않다는 방증이다.
 
지난해 해외로 나간 한국인은 2869만명(누적)이다. 이 중 26%가 일본을 택했다. 반년 지난해 방한 외국인은 1534만명이었다. 이재성 서울관광재단 대표는 "한해 3000만명 가까이 외국을 찾은 건 이유가 있지 않겠나. 가까운 일본보다 한국이 수용태세가 턱없이 부족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연택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일본 여행이 주유형이라면 한국은 지나가는 여행"이라며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창조적 공간 조성이 돼 있지 않다. 구호가 아닌 디테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지역 관광이 지자체장의 선거 홍보용으로 쓰이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정부는 2017년부터 이낙연 총리 주재로 국가관광전략회의를 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지난 4월엔 "지역관광"이 주제였다. 2022년까지 지역관광을 육성해 방한 외국인을 2300만명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다. 
 
국가관광전략회의는 일본의 ‘관광입국 추진 각료회의’를 모방한 정책이다. 일본이 '비지트 재팬'을 표방하기 전인 2002년 방일 외국인 여행객(523만명)은 한국(534만명)보다 적었다. 이때 일본에선 "한국을 배우자"는 각성이 일었고, 이후 태동했다. 입장이 바뀌어 역수입한 지 3년째 됐지만, 구체적인 성과는 커녕 존재감조차 모호하다.  
 
애니메이션 '토마스와 친구들'의 원조는 일본이 아닌 영국이다. 시즈오카의 작은 철도회사 '오이가와'가 저작권료를 내고 기관차에 '토마스' 얼굴만 씌웠다. 기업과 지자체가 손잡고 뛴다면 당장 한국에도 '토마스 기차역'과 같은 '히트 상품'을 만들 수 있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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