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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 문 대통령이라면 두견새 울릴 수 있다

중앙일보 2019.07.30 00:12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한·일 관계가 걱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휴가까지 취소했다. 수교 이후 순탄한 적이 없었지만, 청와대에서 ‘매국’이니 ‘죽창’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니 예삿일이 아니다.
 

외교는 현실, 냉정하고 치밀해야
명분 위해 국민 고생시켜선 안 돼
초당적 대응 위해 책임도 공유
외교 합의 정권 바뀌어도 지켜야

김영삼 전 대통령 때도 큰 고비가 있었다. 1995년 한·중 정상회담 후 김 전 대통령이 “이번 기회에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말했다. 91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처음 제기돼 여론이 들끓었으니 이해가 간다. 국민은 속이 후련했다. 그러나 그 대가는 혹독했다. 한·일 어업협정이 파기되고, 외환위기를 불러온 한 가지 원인이 됐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27일 “정치를 하려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50.1%의 시장점유율을 갖기 위한 싸움”이라서 “사람들이 옳다고 믿는 걸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큰 정치 지도자라면 그것마저 극복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정치는 왜 하나? 집권하기 위해서? 권력을 누리기 위해서? 정치인들이 말하는 대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려면, 사람들이 옳다고 믿어도 국익에 도움이 안 되는 일은 말려야 한다. 비난받을 각오도 해야 한다. 심지어 국민의 이익을 위해서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죽창가’를 부르고 싶어도 참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는 유 이사장의 지적이 적절하다.
 
김종필 전 총리는 62년 오히라 마사요시 외상에게 ‘울지 않는 두견새’를 울리는 일본 고사를 인용했다. 오다 노부나가는 “울지 않거든 죽여버려라”고 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울지 않거든 울려보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울 때까지 기다려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는 새를 죽이는 것도, 마냥 기다리는 것도 답이 아니라고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감정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대책 없이 기다린다고 시간과 국제 질서가 우리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으로 얼어붙은 관계를 풀었다. 65년 합의에서 빠진 과거 문제를 완전히 정리하고, 미래를 위해 협력하는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오부치 총리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받아들이며 사죄하고, 김대중 대통령은 오부치 총리의 역사 인식 표명을 평가하고 양국 관계를 미래 지향적 관계로 발전시키기 위해 서로 노력한다고 표명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독도를 방문해 불을 질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진정한 사과’를 받기 전에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나지 않겠다며 고개를 돌렸다. 양국 관계는 점점 악화돼 갔다. 임기 말에 가서야 ‘화해·치유재단’을 만들었다. 두견새의 목을 부러뜨려버린 대통령도 있었고, 하염없이 울기를 기다린 대통령도 있었다.
 
일본 정부가 시원하게 사과한 일이 없다. 나라를 뺏겼던 우리로서는 가슴을 칠 일이다. 아베 총리는 ‘징용문제에 진전이 없는 한 한·일 정상회담에 응하지 않겠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이 한 일을 문 대통령이 고스란히 돌려받는 셈이다.
 
그러나 외교는 현실이다. 미국처럼 강대국도 마음대로 안 된다. 하물며 우리는 더욱 냉정하고 치밀해야 한다. 명분과 감정을 앞세워 국민을 고생시키는 ‘주자학의 나라’는 조선으로 족하다. 외교는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이번 싸움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상대를 훈계해 도덕 국가로 만들자는 건가.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상대에게 확실하게 보복하겠다는 건가.
 
정부는 초당적 대응을 요구한다. 맞는 말이다. 외교는 정권이 바뀐다고 달라질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책임도 공유해야 한다. 국가 간 합의는 정권이 바뀌어도 지켜져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를 뒤집었다. 화해·치유재단을 해체했다. 그렇다고 새로운 해법을 내놓은 것도 아니다. 강제징용 관련 재판은 ‘사법 농단’으로 규정해 전직 대통령과 대법원장을 법정에 세웠다. 사드 배치는 중단한 뒤 대책도 없이 민간기업이 두들겨 맞는 시간만 늘리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정치인과 언론인들이 “아무 대책도 없이 (북한에 대한) 정서적 반감과 증오만 생산”한다며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어떻게 만들겠다는 것인지…”라고 개탄했다. 6·25를 거치며 형성된 북한·중국에 대한 적개심이나 식민지를 통치에 대한 반감이 다르지 않다. 그럴수록 지도자는 냉정해야 한다. 한·일 협정이나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그 결과물이다.
 
정상이 손을 잡지 않고는 해결되지 않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니까 영호남 화해, 광주 문제를 풀 수 있었다. 문 대통령의 진정성은 우리 피해자들에게도 통해 있다. 문 대통령이라면 한·일 갈등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지 않을까. 휴가마저 포기한 고민의 시간에 근본적인 타개책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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