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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트렌드] 남들은 편해졌다는데 내 마음은 왜 불편한가

중앙일보 2019.07.30 00:03 1면
디지털 비대면 시대의 그림자

e쿠폰 선물 받아도 본심은 몰라
무인 판매대선 뒷사람 눈치 봐
‘앱맹’은 예약·주문 선수 빼앗겨

디지털 비대면 시대. 기술의 발전으로 더 나은 소통을 꿈꿨지만 대화는 줄고, 더욱 친절한 서비스를 기대했지만 점원은 사라져가고 있다.
눈치 볼 일 없어 편하다지만 인간관계는 불편하다. 디지털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멀미를 느끼는 사람도 많아졌다.
이들은 사람 상대가 어려워 온라인 밖으로 나가길 망설인다. 더욱 벌어진 정보 격차에 심지어 자신을 낙오자로 여긴다.
비대면 서비스의 편리함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를 들여다봤다.
 
‘카톡카톡’, 생일이면 쉴 새 없이 메신저 알람이 울린다. 축하 메시지는 물론 ‘카카오톡 선물하기’ ‘온라인 상품권’ 등 e쿠폰 선물도 다수 포함된다. 하지만 시끌벅적한 생일파티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사람들의 축하는 메시지로 끝났기 때문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e쿠폰을 통한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두 배가량 늘었다, e쿠폰을 애용하는 박해인(32)씨는 “직접 만나서 선물을 줄 만큼 친하진 않지만 인간관계는 유지해야 할 때 e쿠폰을 전달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온라인에서는 서로를 살뜰히 챙기지만 현실에선 심리적으로 거리가 먼 관계가 적지 않다. 최근엔 집들이를 온라인으로 치르는 문화까지 생겼다. 그러다 보니 온·오프라인에서의 대인관계 온도차에 괴리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가령 온라인에서는 친구가 많은 ‘인싸(인사이더)’지만 오프라인에서는 속마음을 털어놓을 친구 하나 없는 경우다. 특히 디지털 환경에서 나고 자란 청소년, 밀레니얼 세대가 그렇다.
 
 

속마음 털어놓을 친구 없는 ‘인싸’ 

남기숙 서울시립청소년미디어센터 미디어보호팀장은 “청소년은 게임 등 온라인 세계에서 스킬이나 레벨이 높아 리더 역할을 하다가 오프라인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을 때 더 큰 고통을 느낀다”며 “이들은 비언어적인 메시지(표정이나 눈빛)를 해석하지 못해 친구와의 갈등 상황에 대한 대처능력이 부족해지고 결국 자아정체성에 혼란을 겪는다”고 진단했다.
 
이들이 성장해 사회생활에 뛰어들면 문제는 심화된다. 현장에서 밀레니얼 세대와 부딪히고 있는 지도교수나 회사의 팀장들은 “협업할 때도 다른 팀원과 의사소통 하지 않고 자기 할 일만 하는 직원이 많아졌다”고 입을 모은다.
 
온라인에 익숙한 세대가 주소비층으로 떠오르면서 소비산업 전반에 ‘온라인 서비스’, 즉 비대면(언택트) 서비스가 속속 도입되고 있다. 패스트푸드점 맥도날드는 2016년부터 각 지점에 키오스크(무인계산대)를 배치하기 시작했다. 현재 전국 420여 개 매장 중 절반이 넘는 260여 곳에서 키오스크를 가동하고 있다. 이 밖에도 영화관 매점이나 공항, 병원 등에서도 점원 대신 기계에게 서비스 받는 일이 흔해졌다. 하지만 아직 도입단계여서 곳곳에서 불만의 목소리는 계속되고 있다.
 
직장인 이동주(33)씨는 최근 영화관에서 팝콘을 구매하려다 씁쓸한 경험을 당했다. 점원에게 주문했지만 카드 결제는 키오스크에서 해야 한다는 안내를 받았다. 키오스크 기계 앞에서 긴 줄을 기다려 드디어 온 차례. 메뉴를 고르고 할인 카드를 선택하려는 순간 ‘취소’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결국 초기 화면으로 돌아갔고 뒷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에 다시 시도하지 못했다. 옆 기계를 이용 중인 중년 부부는 팝콘 선택부터 헤매고 있었다.
 
편의를 위해 들여온 키오스크인데 비교적 젊은 이씨도 사용하기 어려웠다. 대기시간도 그닥 빠르지 않았다. 이씨는 “몇 번 해보면 금방 익숙해지겠지만 점원이 응대하는 게 더 빠르고 편리한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이외에도 ‘얼음양 조절’ ‘포인트 적립’ 등 세부 기능이 빠져 있는 키오스크가 있어 맞춤형 서비스를 원하는 소비자의 불만도 크다. 기업들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시스템을 계속 개선해 가고 있지만 불만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다.
 
장고은 한국맥도날드 홍보팀장은 “키오스크는 식사시간처럼 주문이 몰릴 때 대기시간을 줄이기 위해 도입했다”며 “하지만 모든 매장에서 직원에게 직접 주문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영화업계도 마찬가지다. 김대희 CGV 홍보팀 부장은 “직원에게 직접 구매도 가능하다”며 “서비스를 키오스크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판매 채널을 다양화하는 차원이라 편한 방법으로 구매하면 된다”고 말했다.
 

정보 홍수 속 소외된 ‘디지털 문맹’

문제는 애플리케이션에서만 이뤄지는 서비스다. 모든 예약과 주문이 시공간을 초월해 앱에서 이뤄져 이를 잘 모르는 사람은 원하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기대하기 힘들다. 대표적인 예가 공항의 사전좌석 지정, 영화·기차 예매, 은행 계좌 개설, 상품 가입 서비스다. 현장 결제만 할 줄 아는 세대는 젊은이들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난 뒤에야 선택권이 생긴다.

 
은행 또한 같은 상품이라도 모바일 뱅킹(앱)에서 가입하는 게 더 이득이다. 많은 은행이 모바일 뱅킹용으로만 고금리 상품을 내놓고 있어서다. 요즘 ‘핫’한 인터넷은행인 카카오뱅크도 계좌 개설 1000만 건을 돌파한 기념으로 연 5%(세전) 이자를 주는 정기예금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1초’ 만에 모두 팔려 나갔다. 하지만 이는 중장년·노년층에겐 남의 나라 이야기다. 정보를 알아도 가입·사용 방법이 복잡해 참여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이런 정보의 비대칭성, 정보 격차는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의 ‘2018 디지털 정보 격차 실태조사 보고서’에서는 제품 구매, 예약·예매, 금융거래 서비스를 PC나 모바일 같은 디지털 기기로 이용하는 장노년층(50대 이상) 비율은 69.8%에 그쳤다. 이에 서울시는 ‘디지털 문맹’이 된 노인을 돕기 위해 향후 4년간 찾아가는 디지털 교육을 할 계획이다. 앱으로 기차표 예매, 택시 호출, 모바일 뱅킹 이용 방법, 키오스크 사용법을 담은 교육 콘텐트를 개발해 교육하는 것이다.
 
비대면 서비스가 발달하는 만큼 보안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회원가입 시 마케팅 이용 동의 등 이용자가 원치 않는 항목에 반강제적인 동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2008년 국내 산업 전반에서 일어난 개인정보유출 사건 이후 국가 차원에서 보호 장치와 손해배상제도·과징금·과태료 등을 다른 나라보다 더 엄격하게 강화했지만 소비자의 불안을 불식시키기엔 여전히 역부족이다. 이후에도 2012년 KT와 EBS, 2013년 신용카드 3사(KB국민카드·NH농협카드·롯데카드), 2017년 하나투어 등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최근엔 디지털 기업의 총아라는 페이스북도 회원 개인정보를 유출해 과징금 5조9000억원을 받았다. 비대면 기술이 발전하면서 디지털 기술에 대한 불신도 더욱 커지고 있는 것이다.
 
 
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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