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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연장된 60대 날벼락 "연금이 절반이나 깎였다"

중앙일보 2019.07.30 00:02 종합 1면 지면보기

정년 연장의 복병 <상> 연금 삭감

충남의 한 버스회사 운전기사 박모(65)씨는 60세 정년을 마치고 재고용돼 지금도 운전대를 잡고 있다. 노사가 정년 연장을 논의 중이지만 박씨는 사실상 정년이 연장된 것과 다름없다. 가장으로서 자랑스럽다. 그런데 이런 자부심에 상처가 났다. 바로 국민연금 삭감이다. 지난해 10월 국민연금공단에서 삭감 안내서를 받았다. 2017년 소득이 기준을 초과해 국민연금 279만8320원을 깎겠다는 것이었다. 그해 1032만여원(월 86만원)의 연금을 받았는데, 여기서 27.1% 깎였다.
 

월급 235만원 이상 국민연금 깎아
정년 마친 뒤 근무 5년 동안 해당
“일 안하면 다 줘, 일 하는 사람 손해”

더 화가 난 것은 삭감 기준이었다. 박씨의 소득공제 후 과세소득은 월 217만7230원. 국민연금 전체 가입자의 3년치 평균소득(217만6483원, 2017년)보다 747원 많다고 연금의 20%를 깎았다. 박씨는 2014년 같은 이유로 50%(월 42만5000원) 삭감됐고, 2015년 40%(월 34만여원), 2016년 30%(월 26만여원) 줄었다. 올해도 10% 감액된다. 5년간 1551만원 깎인다. 박씨는 월 20일 근무하면 기준을 넘지 않아서 연금이 줄지 않는다. 그런데 버스를 세울 수 없어 20일 넘게 일한다. 그러면 일당이 배로 늘면서 연금이 삭감된다.
 
박씨는 “피땀 흘려 일하면서 차곡차곡 보험료를 부어 연금을 만들었는데, 이걸 깎는 게 잘못된 거지”라며 “아내도 삭감된 것을 보고 화를 낸다. 그렇다고 집에 들어가서 놀 수도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버스를 41년째 몰고 있는데 이걸로 큰돈 버는 사람 있어? 없잖아. 애들 키우고 하루 벌어 쓰는데 연금을 깎으면 되나. 연금 갖고 그렇게 박하게 하는 건 서민을 가지고 노는 거야, 그렇잖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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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법정 정년(60세) 연장을 논의하고 있는 가운데 이미 정년을 61~65세로 연장한 기업들이 있다. 지난 5월 파업 직전까지 갔던 버스회사가 대표적이다. 그 전에 이미 61세 또는 62세로 늦췄고, 이번 노사 협상에서 상당수가 63세로 늦췄다. 박씨 회사에는 60세 넘은 계약직 운전기사가 83명(전체 기사 390명)이다. 중앙일보가 정년을 연장했거나 연장을 논의 중인 7개 회사, 11명의 근로자를 인터뷰했더니 연금이 삭감된 근로자가 더러 있었다. 앞으로 정년 연장 논의에 연금 삭감 문제가 복병으로 떠올랐다.
 
현행 국민연금법은 연금 수령자의 월 소득(과세소득)이 일정액(올해 235만원)을 넘으면 연금을 삭감하게 돼 있다(재직자 노령연금 제도).  
 
“OECD, 고령자 근로장려 위해 연금 삭감제 폐지 권고”
 
최저 5%, 최고 50%를 최대 5년 삭감한다. 2015년 7월까지 박씨처럼 나이에 따라 깎았으나 그 이후 소득에 따라 깎는다. 종전보다 삭감 폭이 다소 줄긴 했으나 불만이 여전하다. 2017년 6만4474명의 국민연금이 깎였고, 올 3월 4만6628명이 삭감됐다. 이 중 일부는 정년 연장 근로자일 것으로 추정된다.
 
1999년 이후 한 번이라도 삭감된 사람은 31만6390명에 달한다. 5년 내내 삭감된 사람이 4만3374명이다. 김모(66)씨는 2014년 4월 첫 연금부터 삭감되기 시작해 올 3월까지 2635만원이 깎였다. 대전의 운전기사 김모(62)씨는 “한 달 근무일수가 이틀만 늘어도 월급이 올라가서 연금이 30% 정도 줄어든다. 정년이 연장돼서 세금을 내는데 왜 국민연금을 깎느냐”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 이모(70·버스기사)씨도 2011년 1년간 270만원 줄었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깎였다. 이씨는 “일하지 않으면 연금을 100% 다 주고 근로소득이 있으면 삭감하니,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공무원·사학·군인 연금도 최대 50% 삭감된다.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은 지난 1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질의서에서 “노인들이 소득이 부족해서 국민연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쓰는 사람이 늘고 있는데 일하는 노인의 연금을 감액하면 근로 의욕을 꺾게 된다”며 삭감제도 폐지를 촉구했다. 윤석명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년을 연장해 국민연금 수령 개시 연령(현재 62세)과 퇴직연령을 일치시켜야 한다. 그래야 소득 공백 기간이 생기지 않는다”며 “고령자 근로를 장려하기 위해 재직자 연금 삭감 제도를 폐지하는 게 맞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00년대 초반부터 폐지를 권고해 왔다”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신성식 복지전문기자,
박형수·김태호·신진호·김윤호·이은지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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