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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중앙정부는 싸워도 지자체·민간 교류는 이어져야

중앙일보 2019.07.29 00:33 종합 27면 지면보기
염태정 내셔널팀장

염태정 내셔널팀장

지난 26일 오후 경북 문경시 마성면 샘골길44 박열 의사 기념관. 기념관 왼쪽 산자락 아래에 아담한 무덤이 하나 있다. 식민지 조선의 항일투사 박열(1902~1974)의 부인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 1903~1926)의 묘다. 안내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일본인으로서 일제의 멸망과 일왕 폭살의 필연성을 주장한 아나키스트 (…) 박열을 만난 뒤 재일 조선인 아나키즘 항일 운동에 투신, 독립운동을 옹호하고 일제의 탄압정책을 비판하였다….’
 
이날 찾은 가네코의 무덤 앞에는 국화가 놓여 있었다. 앞서 23일 이곳에서는 일본 가네코 후미코 연구회 회원들, 박열 기념사업회 관계자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93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박열·가네코 연구자들의 세미나도 있었다. 가네코는 박열 의사와 함께 왕세자 폭탄테러를 모의했다는 죄로 붙잡혀 옥살이하다 1926년 7월 23일 숨졌다. 이후 남편의 고향 문경에 안장됐다. 가네코의 삶은 영화 ‘박열’(2017)에 잘 담겨 있다. 추도식은 2003년부터 매년 문경과 가네코의 외가가 있는 일본 야마나시(山梨)현에서 번갈아 열린다. 요즘 같은 분위기라면 앞으로도 계속 잘 될까 의문이 든다.
 
일본의 경제보복 이후 한·일 관계가 악화하면서 지자체의 교류 중단이 속출하고 있다. 부산시는 최근 교류사업 전면 재검토 입장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2006년부터 열려온 부산·후쿠오카 포럼(9월)이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매년 봄 열리던 조선통신사 교류 행사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강원도와 일본 돗토리현이 해온 수산세미나도 연기됐다.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공동대표인 황명선 논산시장은 2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초 지방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일본과의 교류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회견에는 염태영 수원시장, 정천석 울산 동구청장, 원창묵 원주시장 등이 같이 참석했다.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에 따르면 7월 현재 전국 130여개 광역·기초단체가 일본과 210여건의 우호·자매 교류를 맺고 다양한 행사를 하고 있다. 일본에 갔다가 여론의 뭇매를 받고 일정을 취소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청주교육지원청 직원 2명은 지역 중학교 배구부 학생 등과 함께 23일 일본에 갔다가 ‘매국노’ ‘어이가 없다’는 비난이 쏟아지자 하루 만에 부랴부랴 귀국했다.
 
지자체의 교류 중단은 일본의 경제보복에 전 국민이 한마음으로 단호히 대응한다는 측면에서 필요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교류 중단만이 능사인지 생각해 볼 문제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지자체·민간의 교류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분노가 하늘을 찌르지만 상호의존적인 양국 관계를 볼 때 현 상태로 계속 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시도지사협의회 관계자는 이런 말을 했다. “나중에 관계 회복을 위해 출구가 필요할 거다. 그 출구 역할은 지자체나 민간이 해야 한다. 급을 낮춰서라도 교류는 이어가는 게 좋다.” 지자체·민간 교류는 소중한 자산이다. 한번 끊어지면 회복이 쉽지 않다. 정부의 한 일본 전문가도 “지자체 교류 중단은 단기적으론 대일 압박을 높이는 효과가 있으나 중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우리에게도 타격이다. 지역의 교류는 중앙의 정치·외교와 다르게 가는 게 좋다”고 말했다.
 
출구 전략 때문만이 아니라 보통의 일본인에게 한국이 왜 이렇게 화나 있는지, 일본이 뭘 잘못하고 있는지 이해시키기 위해서라도 교류는 이어지는 게 좋다. 일본 지벤학원(智辯學園)은 45년째 한국에 수학여행을 온다. 올해도 왔다. 이를 통해 서로의 이해를 높인다. 요즘 거리에서 ‘경제왜란’(經濟倭亂) 현수막을 심심찮게 본다. 하지만, 전쟁 때도 대화 통로는 열어둔다. 중앙정부는 싸우더라도 지자체·민간 교류는 계속되는 게 필요하다.
 
염태정 내셔널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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