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무아지경에 빠지게 하는 풀베기, 톨스토이와 난 친구?

중앙일보 2019.07.28 09:00

[더,오래] 권대욱의 산막일기(34)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상대의 절실함을 이해하는 일로부터 시작한다. 그 절실함을 알면 커피 한 잔 값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살 수 있다. [사진 pixabay]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상대의 절실함을 이해하는 일로부터 시작한다. 그 절실함을 알면 커피 한 잔 값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살 수 있다. [사진 pixabay]

 
득도다조(得道多助)와 역지사지(易地思之)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자성어 중 하나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요, 상대방의 입장에서 모든 사안과 현상을 살필 줄 아는 사람이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는 말이다.
 
사람의 마음이라, 그걸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살필 수 있는가? 한마디로 그것은 그 사람의 절실함을 이해하는 일로부터 시작한다. 그 사람의 입장이 돼 그 사람이 지금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살피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그 절실함을 알면 말 한마디로, 하잘것없는 커피 한 잔 값으로도 그 사람의 마음을 살 수 있는 것이다.
 

득도다조와 역지사지

그 절실함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수천금을 쓰고도 수많은 나날을 보내고도 그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사람들이 책을 왜 쓰겠으며, 가게를 왜 내겠으며, 창업은 왜 하겠는가? 그러니 책을 내는 사람에겐 책을 사주고 그 책이 잘 팔리도록 널리 알려줘야 하는 것이요, 가게 내는 사람에겐 친구들 많이 데려가 많이 팔아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 사람들의 절실함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 사람의 절실함은 그 사람의 얼굴과 글과 말과 행동에 숨어있다. 숨겨진 절실함을 보는 것. 그것이 득도다조와 역지사지의 첫걸음이라 믿는다. 나도 노력은 하지만 잘하지 못하고 있다. 그걸 알기에 더 노력하고 더 노력할 것이다. 그래야 그나마 자그마한 이름 하나는 보전하고 살 것이라 믿는다. 지금 내게 가장 절실한 것은 청춘합창단의 안정이다.
 
오늘 이 귀한 하루. 잔디를 깎고 풀을 벨 것이며 넘어가는 석양을 볼 것이다. 그리고 나를 돌아볼 것이다. [사진 권대욱]

오늘 이 귀한 하루. 잔디를 깎고 풀을 벨 것이며 넘어가는 석양을 볼 것이다. 그리고 나를 돌아볼 것이다. [사진 권대욱]

 
송구스럽기도 하고, 그리고 절대 부담 드리고 싶지 않지만 이 말 한마디는 하고 싶다. 좋은 친구와 좋은 이웃들은 지금 이대로가 가장 좋다. 서로 부담 없고 마음으로 잘되기를 바라는 상태. 그것으로 충분히 고맙고 또 감사하지만 적어도 내게 무얼 부탁하러 오거나 도움을 원하는 분들은 이점을 유념해주면 좋겠다.
 
마음을 사면 단돈 만금에도 십만금의 밥을 살 수 있고 조건 없는 도움을 줄 수 있다. 절실함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다른 분들에게 무얼 부탁하면서 과연 나는 그분들의 절실함을 이해했던가 반성하며 이 글을 쓴다. 많이 부족한 나요, 우리들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하고, 내가 할 수 없거나 하기 싫은 일은 남이 한다. 정 박사가 그중 한 명.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사진 권대욱]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하고, 내가 할 수 없거나 하기 싫은 일은 남이 한다. 정 박사가 그중 한 명.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사진 권대욱]

 
연못물 흐름을 보고 개울물 높이를 짐작하듯, 사람의 글로 그 마음의 깊이를 짐작한다. 이 정도면 건너기 지장 없겠구나. 이 정도면 마음 나누어도 괜찮겠구나. 손으로 찍어 맛을 봐야 된장인 줄 아는 건 아니다. 색도 있고 냄새도 있다. 나는 어떤 냄새, 어떤 색일까? 비 내리는 산막은 고즈넉하다. 비 오는 세상에 비 맞지 않는 안온함. 산막은 내게 늘 그런 곳이다.
 
톨스토이가 레빈을 통해 느끼는 무아의 몰입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곳이다. 풀 베기를 하고 잔디를 깎아보시라! 거기에 온 마음과 몸을 던져보라! 시공도 정지되고 몰입이 있고 자신을 잊는다. 레빈이 풀을 베는 것이 아니라 낫이 스스로 풀을 베는 느낌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느낌을 기록하고 나와 너로 소통하는 것, 그리고 죽음의 존재를 늘 잊지 않는 것. 이것이 톨스토이를 관통하는 사상의 주류였다면 그와 나는 150여 년의 시공을 뛰어넘는 친구인 것이다.
 
그의 글이 없다면 내가 어찌 그와 친구임을 알겠는가? 글이 없다면 어찌 사람들이 내 마음의 지향과 이상을 알겠는가? 글은 이처럼 위대하다.
 
산막엔 잔디가 무성할 것이다. 누구 도와줄 사람 없나 살피다가 그냥 내가 하자로 결론 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겠다는 손님 있으면 반가이 맞으리라. '朋自遠方來不亦樂乎(유붕자원방래불역락호)'의 기쁨을 기대한다.
 
분수대의 부활. 노즐 바꾸고 높이 좀 올리고, 문짝도 부활. 향기 좋은 편백나무로 하여 경칩 박고 문고리 달고. 곡우초당이 살아나네. 멋지다. [사진 권대욱]

분수대의 부활. 노즐 바꾸고 높이 좀 올리고, 문짝도 부활. 향기 좋은 편백나무로 하여 경칩 박고 문고리 달고. 곡우초당이 살아나네. 멋지다. [사진 권대욱]

 
산막에는 늘 일이 많다. 정 박사가 인근에 살고 있어 자주 도움은 받는데 대저 그와 이곳에서 일하는 방식이 이러하다. 여기저기 고치고 보완하고 보강할 곳이 있으면 문자든 톡이든 유선이든 말해 놓고 필요한 경비를 보내준다.
 
그러면 언제 와라, 어떻게 하라 하지 않아도 시간 날 때 와서 한다. 할 만큼만 한다. 서두르지 않는다. 오면 오나보다, 가면 가나보다 따따부따 잔소리 안 하고 기다리다 보면 어느 날 그가 짠 나타나서 그날 할 만큼 일하고 밥도 먹고 놀다 가는 것이다.
 
오늘도 소식도 없이 불쑥 나타나서는 데크 보강용 각 관 용접에 페인트 작업하고, 연못 주변 대리석 부침 작업하며, 데크 교체 및 수리, 그리고 테이블 상판 보강작업까지 잘 마쳤다. 나는 용접봉 달라 하면 용접봉 건네주고, 강관 잡으라 하면 잡아주고, 때로는 그거 말고 이거 하며 훈수도 두고 그렇게 일하며 하루를 보낸다. 그러면 어느새 이만큼 일이 되어 있고 나는 그만큼 걱정의 무게를 더는 것이다.
 
“이제 다 됐지요” 물으면 “이 사람아 다되긴 뭐가 다 돼? 독서당도 바로 세워야 하고, 그 앞 난간 건들거리는 것도 보강해야 하고, 데크 목 오일 스텐도 칠해야 하고, 할 일이 태산이야”라며 히죽거리고 있다.
 

스토리가 생긴 산막스쿨 교장 10년

정말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산막이다. 좋아하지 않는다면 누가 이 짓을 하겠는가? 사장 30년, 청춘합창단 단장 6년, 산막 스쿨 교장 10년. 이 모두가 내가 좋았기에 가능했었다. 그럴 생각으로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나, 그러다 보니 스토리가 생기고 브랜드가 생기게 되었다. 박종윤의 말처럼 이런 스토리와 브랜드와 세월을 가지고도 그 무언가를 성공시키지 못한다면 나는 그냥 바보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그가 궁금하고 만나고 싶은 것이다.

 
권대욱 ㈜휴넷 회장·청춘합장단 단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권대욱 권대욱 ㈜휴넷 회장·청춘합장단 단장 필진

[권대욱의 산막일기] 45년 차 직장인이자 32년 차 사장이니 직업이 사장인 셈이다. 일밖에 모르던 치열한 워커홀릭의 시간을 보내다 '이건 아니지' 싶어 일과 삶의 조화도 추구해 봤지만 결국 일과 삶은 그렇게 확실히 구분되는 것도 아니고 애써 구분할 필요도 없음을 깨달았다. 삶 속에 일이 있고 일속에 삶이 있는 무경계의 삶을 지향하며 쓰고 말하고 노래하는 삶을 살고 있다. 강원도 문막 산골에 산막을 지어 전원생활의 꿈을 이뤄가고 있다. 60이 넘어서야 깨닫게 된 귀중한 삶과 행복의 교훈을 공유한다.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