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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한반도 포기, 제주로 가라" 트루먼 전문에 드러났던 美 속내

중앙일보 2019.07.28 05:00
“만일 한국의 주요 지역을 방어하는 것이 불가능해질 경우 제주도 같은 한국 연안의 섬에서 지속적인 저항을 함으로써 지지를 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27일 정전 66주년…동맹 의미 살피는 사료
51년 1월 13일 트루먼, 맥아더에 보낸 전문
만주 폭격해 중국에 대항하자는 건의에 답장
매티스 전 국방 추천 『이런 전쟁』에서 밝혀
“장군의 군대는 일본과 그 밖의 지역을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도구로 보존돼야”
유럽우선주의 맞춰 한반도 포기 속마음
이승만, 한미동맹으로 미국 계속 주둔
전면전 막고 경제발전…동맹 성공 평가

미국의 해리 트루먼(1884~1972년, 재임 45~53년) 대통령이 (만일의 경우) 한반도를 포기하고 한국 정부를 제주도로 옮겨 저항을 계속하는 구상을 적은 내용이다. 1951년 1월 13일 더글러스 맥아더(1880~1964년) 유엔군 사령관에게 보낸 전문의 일부다. 제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 참전용사인 미국 저술가 시어도어 리드 페렌바크(1925~2013년)의 저서 『이런 전쟁(This Kind of War)』에 수록됐다. 1963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돼 미국 육군사관학교와 육군지휘참모대학의 필독서로 지정됐던 책이다. 한국에선 지난 6월 뒤늦게『이런 전쟁』(플래닛 미디어)이라는 이름으로 번역 출간됐다.  
 
1945년 9월 미군 점령군 사령관인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왼쪽)이 당시 히로히토 일왕을 만나고 있다. 군국주의자듫이 신적인 존재로 우상화했던 일왕의 평범한 모습에 당시 일본인의 상당수는 충격을 받았다. 점령군의 힘과 맥아더의 카리스마를 보여준 사진으로 평가된다. 맥아더의 카리스마는 6.25전쟁에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권위와 충돌했다. [중앙포토]

1945년 9월 미군 점령군 사령관인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왼쪽)이 당시 히로히토 일왕을 만나고 있다. 군국주의자듫이 신적인 존재로 우상화했던 일왕의 평범한 모습에 당시 일본인의 상당수는 충격을 받았다. 점령군의 힘과 맥아더의 카리스마를 보여준 사진으로 평가된다. 맥아더의 카리스마는 6.25전쟁에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권위와 충돌했다. [중앙포토]

6·25전쟁 중에 일본·서유럽 우려한 미국

트루먼은 전문에서 “장군의 군대는 일본과 그 밖의 지역을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도구로 보존돼야 한다”고 적시했다. 그러면서 “한국서 벌이는 전쟁으로 일본·서유럽이 대규모 적대 행위에 연루된다면 유익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정책의 최우선 순위가 1949년 자신의 주도로 설립된 서유럽과 북미의 집단 방위체제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일본의 안보이며 한반도 방위는 이를 위해 기능해야 한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한반도에서의 전쟁 때문에 일본이나 서유럽으로 전선이 확장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한반도를 공산주의로부터 일본을 지키는 최전선으로 여기는 미국의 지정학적 시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6ㆍ25 전쟁 당시의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더글러스 맥아더 연합군 총사령관. 트루먼은 중국 해안을 봉쇄하고 만주의 비행장을 폭격하자는 맥아더의 확전 방안을 놓고 대립했다. [중앙포토]

6ㆍ25 전쟁 당시의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더글러스 맥아더 연합군 총사령관. 트루먼은 중국 해안을 봉쇄하고 만주의 비행장을 폭격하자는 맥아더의 확전 방안을 놓고 대립했다. [중앙포토]

 

미 국방부 ‘명예롭게’ 전쟁 끝낼 방법 논의  

이 전문은 맥아더 장군이 1950년 10월에 참전한 중국을 상대로 전선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보낸 전문에 대한 답변으로 작성됐다. 트루먼은 전문을 보내기 하루 전인 1월 12일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해 이 문제를 논의했다. 당시 한반도 정책에 대한 트루먼 행정부의 공식 의견으로 볼 수 있다.  
트루먼이 맥아더에게 이런 전문을 보낸 배경을 살펴보자. 1950년 북한군의 남침으로 시작한 6·25전쟁에 미국은 유엔 결의를 바탕으로 영국·프랑스 등 동맹국과 함께 병력을 파견해 공산군에 대항해 싸웠다. 미군은 그해 9월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역전했지만, 10월 중공군이 참전하면서 전황은 불투명해졌다. 이 책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는 한국 포기는 아시아에서 바로 잡을 수 없는 정치적 실수라고 주장했지만, 국방부는 유럽에 집중할 것을 주장하며 ‘명예롭게’ 전쟁을 끝낼 방법을 이야기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침공으로 시작된 6.25전쟁 초기 북한군 전차가 서울에 진입하고 있다. [중앙포토]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침공으로 시작된 6.25전쟁 초기 북한군 전차가 서울에 진입하고 있다. [중앙포토]

 

제한전쟁·확전·휴전협상 방안 놓고 대립

이런 상황에서 트루먼 대통령은 1950년 12월 로튼 콜린스 육군참모총장을 극동에 보내 더글러스 맥아더의 견해를 들었다.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세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제한전쟁’이었다. 유엔군의 대규모 증원이 없고 만주에 있는 기지를 폭격하거나 해상을 봉쇄하거나 대만 군대를 사용하는 것 같은 (중국에 대한) 보복 수단이 없다는 뜻이었다. 둘째는 ‘확전’이었다. 중국 본토를 폭격하고 중국의 해안선을 봉쇄하며, 미국의 지원으로 대만의 장제스(莊介石)를 자유롭게 해 한국과 남중국에서 싸우도록 해 중공이 예상한 것보다 분쟁을 더 크게 확대하는 것이었다. 셋째는 ‘휴전’이었다. 중공군이 38도선 북쪽에 머무는 것에 동의하고 이를 기초로 유엔 감독 아래 휴전하는 것이었다.  
지은이에 따르면 맥아더는 개인적으로 확전을 선호했으며, 제한전은 그에게 항복이나 마찬가지였다. 콜린스는 맥아더가 관리할 수 있다면 휴전에도 동의할 것으로 봤다. 트루먼은 확전이 중공뿐 아니라 소련까지 상대하는 전면전으로 이어질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제한전과 휴전을 조합하기를 원했다.  
 
워싱턴에 있는 한국전쟁 참전공원 기념비와 참전용사 조각상.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글이 새겨졌다. [중앙포토]

워싱턴에 있는 한국전쟁 참전공원 기념비와 참전용사 조각상.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글이 새겨졌다. [중앙포토]

맥아더, 중국 해안봉쇄, 만주 비행장 폭격 주장

그래서 맥아더는 12월 29일 중국 해안을 봉쇄하고 만주의 비행장들에 대한 공격 허가를 요청하는 전문을 미국 합동참모본부로 보냈다. 맥아더는 중국인을 자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요청이 승인되지 않으면 한반도에서 철수해야 한다고 했다.  
1951년 1월 9일 트루먼 대통령과 면밀히 검토한 뒤 합참은 맥아더에게 이런 지침을 내렸다. “한국을 계속해서 방어하고, 중공군에게 계속 손실을 입히며, 사령부를 구하는 데 꼭 필요한 경우에만 철수할 것.”
이에 대해 맥아더는 그렇게 해서는 한국을 지키는 동시에 일본을 방어할 수 없으며, 만일 국제정치적인 이유로 지금의 조건이 계속된다면 합참과 대통령은 심각한 결과를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는 전문을 보냈다. 이는 즉시 합참과 트루먼의 반발을 불렀다.  
1월 12일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한 트루먼은 다음날 맥아더에게 장문의 전문을 보냈다.  
“그 자체로 완전히 정당하고 한국에서 벌이는 전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조치라도 만일 일본이나 서유럽이 대규모 적대행위에 연루된다면 유익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제한된 군대로 대규모 중공군과 계속 맞서는 것이 군사적으로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물론 알고 있습니다. 현재 세계 상황에서 장군의 군대는 일본과 그 밖의 지역을 방어하는 효과적인 도구로서 보존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 중요한 목적은, 물론 장군이 실현 가능하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야 하겠지만, 만일 한국의 주요 지역을 방어하는 것이 불가능해질 경우 제주도 같은 한국 연안의 섬에서 지속적인 저항을 함으로써 지지를 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최악의 경우 한국에서 철수해야 한다면 군사적 필요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철수하는 것이고, 침략을 바로 잡을 때까지는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우리가 이 결과를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을 전 세계에 분명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토 로고. [나토 홈패이지]

나토 로고. [나토 홈패이지]

트루먼, 나토 통한 서유럽 집단안보에 무게

당시 미국은 1949년 4월 4일 창설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통해 서유럽에 집단안전보장체제를 구축하는 데 신경을 쏟고 있었다. 지은이에 따르면 당시 트루먼은 (미국의) 잠재적인 주적은 여전히 소련이었고, 유럽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유럽에 대한 미국의 지원과 힘을 감소시킨다면 주한미군을 돕는 어떤 방책도 현명하지 않은 일로 간주했다. 트루먼의 ‘유럽 제일주의’와 한반도에서 ‘제한전’ 주장은 맥아더와 정면으로 부딪쳤다.  
지은이는 “맥아더는 적을 상대로 승리를 기피하는 미국 정부의 방침이 비도덕적이라고 강하게 여겼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반대했다”라고 평가했다. 그 결과는 1951년 4월 9일 트루먼이 맥아더를 모든 지휘관 직에서 해임하는 명령에 서명한 일이었다. 맥아더는 전문으로 자신의 해임 소식을 들었다. 미국인들은 이 사건을 ‘인기 없는 정치인이 인기 있는 장군을 해임한 사건’으로 여긴다. 서유럽 국가들은 맥아더 해임에 환호했다. 한국에 배치된 영국군 대대는 즉석 파티를 열었고, 다른 유엔군 부대는 공중으로 총을 쏘아대기도 했다.  
맥아더가 물러난 뒤에도 전쟁은 2년 3개월을 더 끌었다. 유엔군 측과 공산군 측이 벌인 휴전회담은 1951년 7월 10일 시작됐지만, 회담이 지루하게 시간을 끌면서 희생자는 계속 발생했다. 1953년 7월 27일 양측이 ‘군사 정전에 관한 협정’에 서명하면서 비로소 총성이 멎었다.  
1972년 12월 26일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이 별세하자 국내에서도 추모식이 열렸다. 6.25참전을 결정한 미국 대통령이다. [중앙포토]

1972년 12월 26일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이 별세하자 국내에서도 추모식이 열렸다. 6.25참전을 결정한 미국 대통령이다. [중앙포토]

 

이승만, 상호방위조약 체결해 ‘한미동맹’

당시 정전협정 체결을 앞두고 한국의 이승만 대통령은 한 나라가 공격받으면 다른 나라가 자동으로 개입하는 내용의 상호방위조약을 1953년 6월 미국에 제안했다. 한국의 안보를 한미동맹을 통해 보장받으려고 한 것이다. 미국이 정치적인 상황에 따라 한반도에서 발을 빼지 못 하게 하는 의도가 있었다.    
한국과 미국은 1953년 10월 1일 워싱턴에서 한미동맹과 미군 주둔의 근거가 되는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서명했으며, 1954년 11월 18일 정식으로 발효됐다. 한미동맹은 대한민국이 생존을 위해 주체적으로 선택한 군사외교의 개가로 볼 수 있다. 미국이 한반도를 포기하고 떠나는 것을 막는 효과적인 외교 전략이었다. 60년이 넘게 유지된 한미동맹은 동아시아에서 평화를 보장하고 안정을 추구하는 기본 체계로 자리 잡고 있다.    
한미동맹 체제는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재발하지 않고 있으며, 안보를 보장받은 한국에서 성공적인 경제발전이 이뤄졌다는 것이 근거다.  
이는 동아시아에서 공산주의의 확대를 막는 효과도 거뒀다. 한국이 방파제 역할을 함으로써 일본이 공산화되거나 러시아의 세력권에 편입되는 일을 막은 효과도 있다. 일본이 6·25전쟁 경제효과의 수혜자가 돼 경제부흥을 이뤘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전쟁과 동족상잔이라는 한국의 불행이 일본엔 ‘하늘이 준 기회’로 작용했다.  
 

트럼프 시대 안보 전략에도 참조해야

오늘날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제일주의’를 내세우며 나토에 대해 ‘안보 무임승차론’을 제기하고 분담금 의무를 강조하는 등 기존의 글로벌 안보 동맹체제를 뒤흔들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6·25전쟁 당시 ‘정치적으로 인기 없는 전쟁’에서 발을 빼고 제주도 등 연안 도서로 옮기려고 시도했던 트루먼 대통령의 전문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1951년 트루먼 전문의 교훈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아무리 미국이라도 국익에 따라 어제든 한반도를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럴수록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아울러 한미동맹을 맺게 된 근본적인 배경을 떠올리며 한반도 안보전략을 설계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안보는 우리가 지킨다는 강력한 국방 의지, 그리고 한미동맹을 활용해 북한은 물론 중국·러시아의 세력 확대를 견제하는 글로벌 지혜일 것이다.  
제임스 매티스 전 미국 국방부 장관. [로이터=연합뉴스]

제임스 매티스 전 미국 국방부 장관. [로이터=연합뉴스]

 

‘군사충돌 낮추려면 읽어라’ 매티스 추천

이 책은 미국의 안보 관련 주요 인사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행정부에서 국방 초대 국방부 장관을 지낸 제임스 매티스 장군(2017년 1월~2018년 12월 재임)이 “한반도에서 군사 충돌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미군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려면 페렌바크의 『이런 전쟁』을 읽어라‘는 추천을 하면서 유명해졌다. 2008년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를 지낸 존 매케인 상원의원(1936~2018년)도 생전에 “오늘날에도 여전히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한국전쟁을 다룬 최고의 책”이라고 평가했다. 육군 대장 출신인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은 “두 세대의 미군은 이 책을 연구했다…이 책은 정치적 실수와 군사적 실수를 파고들며 이렇게 만들어진 실수 때문에 피 흘리고 죽어가야 하는 용감한 영혼을 가진 군인을 그대로 보여준다”라고 이 책을 추천했다. 한반도의 지속적인 평화를 위해 6·25전쟁을 정치적·외교적·군사적으로 진지하게 복기할 필요가 있다. 옛것을 익히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안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정신이 필요할 때다. 27일로 정전협정 66주년을 맞았다. 내년은 6·25전쟁 발발 70주년이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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