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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천역 폭발사고에 놀란 北…화웨이로 간부 180명 감청"

중앙일보 2019.07.27 06:00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8월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장과 양덕군의 온천지구를 각각 시찰했다. 그가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모습이 북한 매체에 공개된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8월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장과 양덕군의 온천지구를 각각 시찰했다. 그가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모습이 북한 매체에 공개된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연합뉴스]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가 2016년 상반기까지 8년간 비밀리에 북한의 3G 이동통신망 구축과 유지를 도왔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지난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후 러시아 전투기의 독도 영공 침공,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 등이 불거지며 이슈가 사그라들었지만 북·중 간 은밀한 정보기술(IT) 협력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어서 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WP 등 관련 후속 보도와 통일연구원 보고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의 북한 정보화 동향 보고서 등을 토대로 화웨이의 북한 3G 이동통신 구축 경위와 북한 이동통신 현황, 중국의 대북제재 위반 가능성을 짚어봤다.

[뉴스따라잡기]
美 “中화웨이 北 이동통신망 구축 비밀리 구축”
北 주민 대상 휴대전화 대규모 도청 탄로나
미·중 무역전쟁 와중에 中 압박 포석

北 3G망 구축때 고위층 도청 계획…화웨이 도왔나

 WP의 보도는 2008년 이집트 통신회사 오라스콤 텔레콤이 북한 당국과 지분합작 형태로 무선통신업체 ‘고려링크’를 설립해 제3세대 방식의 이동통신망(3G)을 구축할 때 화웨이와 중국 국영기업 판다 국제정보기술이 네트워크 장비 등을 제공하는 형태로 깊게 관여했다는 것이다.   
 WP 보도 직후 북한 전문매체 38노스는 2008년 5월 북한 당국과 오라스콤 관계자들의 회의록을 단독 입수했다며 3G 이동통신망 구축 과정을 좀 더 상세하게 보도했다.  
 우선, 북한 당국인 조선우편통신공사(KPTC) 측과 오라스콤 관계자들 간 회의가 열린 때는 2008년 5월 28일. 북한에서 3G 이동통신 서비스가 재개된 2008년 12월보다 6개월 앞선 시점이었다. 당시 양측 기술진이 참석한 회의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렸다. 당시 주제네바 유엔대표부 이수용 상임대표가 참석할 정도로 북한에겐 중요한 회의였다.  
 38노스는 “당시 북한 당국은 이동통신망을 구축하는 데 도청과 보안 문제를 중대하게 고려했다”며 “북한 내 고위층 이용자들의 휴대전화 통화를 감시하는 시스템 마련이 주된 주제였다”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가 입수한 화웨이 내부 문건. 해당 계약서에는 화웨이가 중국 국영기업 판다국제정보통기술과 협력해 북한의 통신업체에 협력한 정황이 나와 있다. [사진 워싱턴포스트 폭로 문건 캡처]

워싱턴포스트가 입수한 화웨이 내부 문건. 해당 계약서에는 화웨이가 중국 국영기업 판다국제정보통기술과 협력해 북한의 통신업체에 협력한 정황이 나와 있다. [사진 워싱턴포스트 폭로 문건 캡처]

 38노스가 보도한 회의록에 따르면 북한은 고위층 인사들에게 도청 장치를 갖춘 단말기를 지급하고, 이들 2500명을 대상으로 동시에 300통화를 모니터링할 계획을 세웠다. 화웨이 문건엔 1200명을 대상으로 240통화를 모니터링하는 것으로 나왔다. 결국엔 180명의 이용자를 모니터링하는 것으로 감시 시스템이 구축됐다. 특정 인사들의 전화통화, 텍스트 메시지 등을 가로챌 수 있게 설계하면서다.
 회의록에는 “화웨이는 북한 당국이 직접 개발한 암호화 알고리즘이 통신망 성능에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시험 절차를 개발할 것”이라고 나와 있다. 또 판다 국제정보기술은 북한 당국 감시 시스템의 소프트웨어 기능에 관여하며, 김일성·김정일 시대 때부터 북한과 거래해온 회사여서 북한 당국의 신임이 상당하다고 소개됐다.  

용천역 폭발사고 ‘김정일 암살’ 트라우마

 38노스는 북한 당국이 3G 이동통신망을 도입하며, 고위층의 휴대전화 통화를 감시하려는 배경엔 2004년 4월 22일 평안북도 용천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폭발사고가 있다고 짚었다. 당시 북한 당국은 “질산 비료를 적재한 화차가 전기선과 접촉해 사고가 발생했다”고 발표했지만,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노린 암살 기도라는 의혹이 강하게 일었다. 폭발 사고가 있기 수 시간 전 김 국방위원장이 탄 열차가 용천역을 지나갔고, 근처에서 휴대전화가 발견됐다는 내용이었다. 실제 북한은 폭발 사고가 있고 난 뒤 북한 전역에 휴대전화 서비스를 4년간 중단했다. 38노스는 “북한 당국은 2008년 4년 만에 이동통신 서비스를 재개하면서 보안 문제에 그토록 집착한 이유가 있었다”고 전했다. 
대한적십자사 자원봉사자들이 2004년 5월 서울 성동구 마장동 서울지사에서 북한 용천 폭발사고 현장에 보낼 구호품을 트럭에 올리고 있다.오종택 기자

대한적십자사 자원봉사자들이 2004년 5월 서울 성동구 마장동 서울지사에서 북한 용천 폭발사고 현장에 보낼 구호품을 트럭에 올리고 있다.오종택 기자

北휴대전화 사용자 600만 명…철저한 감시·통제 

 고위층·주민에 대한 도청 등 치밀한 계획에 따라 3G 이동통신 서비스가 2008년 재개된 후 북한에서는 휴대전화 사용자가 급격히 증가한다.  
 정은미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이 최근 펴낸 ‘김정은 정권의 정보화 실태와 특징’ 보고서에 따르면 고려링크는 중국의 화웨이 장비를 사용해 사업 시작 후 3년 만에 평양 및 14개 주요 도시와 86개 군소 도시, 22개 고속도로에 453개 기지국을 설치하는 등 북한 지역의 13.6%, 인구 대비 92%가 서비스 가능 지역이 되도록 통신망을 구축했다. 정 부연구위원은 “2004년 용천역 폭발 사고로 중단된 이동통신 서비스에 대한 억눌린 수요가 서비스 재개로 급증한 측면이 있고, 중단된 기간 시장의 성장으로 일반 주민의 소득과 구매력이 크게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2004년 이전까진 일반 주민이 아닌 당·정 관료, 평양 주재 외교관 등 특수집단 구성원들만 제한적으로 이동통신 서비스를 이용했다”면서다.
평양의 한 휴대전화 매장에 진열된 스마트폰을 둘러보는 시민들. 이용에 제약이 있는 자체 생산제품 외에 중국서 들여온 중고 기기도 암암리에 거래된다. [사진출처·북한 대외선전매체 웹사이트]

평양의 한 휴대전화 매장에 진열된 스마트폰을 둘러보는 시민들. 이용에 제약이 있는 자체 생산제품 외에 중국서 들여온 중고 기기도 암암리에 거래된다. [사진출처·북한 대외선전매체 웹사이트]

 코트라에 따르면 북한의 휴대전화 사용자 수는 2009년 10만명에서 2012년과 2013년 각각 100만명, 200만명에 도달했다. 또 2016년에는 361만명으로 늘었고, 현재는 600만명 수준일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 인구 2500만명의 4분의 1 수준이다. 특히 최근엔 휴대전화로 금융 거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IT 인프라 구축과 정보화가 진전된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휴대전화 사용은 북한 당국의 철저한 감시하에 놓여 있다고 한다. 2008년 도청 시스템 구축에서 알 수 있듯 당국이 휴대전화 사용자 내역, 통화내용 등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고, 국경 지역에선 전파 차단 및 방해를 하기 때문에 휴대전화로 급격한 사회변화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란 것이다. 북한은 남한 사람들과 휴대전화 통화를 한 게 적발되면 ‘반국가범죄’로 무기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형법을 바꾼 것으로도 알려졌다.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붉은 원)이 휴대전화로 김 위원장의 시찰 모습을 촬영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연합뉴스]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붉은 원)이 휴대전화로 김 위원장의 시찰 모습을 촬영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연합뉴스]

화웨이가 北 도청할 가능성은

 WP 등의 보도로 중국 화웨이가 북한의 이동통신 서비스 구축에 관여한 것이 확인되면서 역으로 북한 고위층의 전화통화를 중국이 도청할 가능성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3G 이동통신망 구축에 관여하면서 백도어(운영체계 등 프로그램 설계·개발 단계에서 보안 구멍을 심는 것)를 했다면 기술적으로 도청도 가능하다는 게 IT 전문가들의 견해다. 
 정은미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북한은 이동통신 서비스를 재개하면서 중국의 감시 시스템 노하우를 이용하기 위해 화웨이 등을 택한 측면이 있었을 것”이라며 “동시에 북한 지도부에선 중국과의 정보기술 협력이 역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불신감도 팽배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 부연구위원은 “38노스 보도를 보면 감시 알고리즘 프로그램은 북한이 자체 개발했고, 하드웨어적인 부분에서 화웨이의 도움을 받은듯하다”며 “2004년 용천역 사고 뒤 4년간 감시 프로그램 개발에 집중했고, 이를 완성한 뒤 이동통신 서비스를 재개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용천역 사고 트라우마에도 불구하고, 자체 감시 프로그램 구축을 토대로 효과적인 검열과 감시 수단으로서 이동통신 서비스 본격화에 나섰다는 것이다. 이어 “북한은 2015년을 기점으로 이동통신 국산화를 상당 부분 이뤘다”며 “휴대전화도 우리가 011에서 010으로 넘어갔듯 북한도 화웨이 통신망에서 지금은 자체 강성네트망으로 옮겨가 중국을 통한 도청 가능성은 작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광둥성에 위치한 화웨이 리서치개발센터. [AP=연합뉴스]

중국 광둥성에 위치한 화웨이 리서치개발센터. [AP=연합뉴스]

美, 화웨이-북한 연계 왜 문제 삼나

 그러면 미국은 왜 이 시점에 화웨이를 거론하며 대북 제재 위반 가능성을 시사한 걸까. WP가 미국산 부품을 사용한 화웨이가 북한의 이동통신망 구축 과정에서 장비 제공으로 미국의 수출규제를 위반했을 가능성을 제기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보도 직후 “조사해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의 대북 제재 강화법은 2016년 2월 나왔고, 화웨이의 북한 이동통신망 구축은 그 이전의 일이어서 제재 위반 설득력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화웨이와 북한 연계성을 부각한 건 미·중 무역 전쟁 와중에 협상 카드로 활용하려는 의도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임수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화웨이는 미·중 간 기술분쟁의 핵심 소재로 무역 전쟁에서 여전히 뜨거운 감자”라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가운데)이 19일 3차 방중을 통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전쟁 국면을 활용해 제재 완화와 경제 원조를 노린다는 분석이 나온다.[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가운데)이 19일 3차 방중을 통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전쟁 국면을 활용해 제재 완화와 경제 원조를 노린다는 분석이 나온다.[연합뉴스]

 아울러 화웨이가 전 세계 5G 이동통신 시장 장악에 나서는 상황에서 북한 선점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목적도 있다는 지적이다. 정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북한이 5G로 넘어갈 땐 다시금 화웨이의 정보기술에 기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화웨이의 과거 북한 이동통신망 구축을 몰랐을 리 없는 미국이 화웨이의 불법성을 이 시점에 불쑥 부각한 건 정치적 목적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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