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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포경선 위의 광기 어린 살인극

중앙선데이 2019.07.27 00:20 646호 21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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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해

극해

극해
임성순 지음
 
여름은 전통적으로 추리소설과 스릴러소설 성수기다. 기발한 상상력, 극강의 몰입감, 한여름 더위를 잊게 해줄 긴장감. 잠 못 이루는 밤, 재미 못지않게 의미도 추구하는 까다로운 독자라면 임성순의 장편 『극해』를 추천한다.
 
임성순의 소설은 냉소적이다 못해 서늘하다. 신랄한 풍자, 블랙코미디, 오컬트와 디스토피아를 넘나들며 성역 없는 참신한 문학적 테마를 탐사하던 그가 등단 전 영화판에서 쌓아온 묵직한 서사의 내공을 유감없이 발휘한 작품이 『극해』다.
 
살아남기 위해 모두 야수가 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 포경선 유키마루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폭력과 연쇄살인을 그린 이 소설은 첫 장부터 독자들을 공포와 광기로 밀어 넣는다. 일본의 비인간적인 차별과 만행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고래에 맞서 함께 사투를 벌이며 펄떡이던 뜨거운 동지애는, 굶주림과 추위에 표류하던 배가 극해에 다다른 순간 생존과 복수를 향한 냉혹한 악의로 돌변한다. 얼음장처럼 차가웠던 그 밤, 어린 조선인 선원이 보았던 어두운 진실은 무엇일까?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모멸을 견디는지, 인간이 인간다움을 포기할 때 어떤 비극을 초래하는지, 폭풍우 같은 감정의 격랑을 맞게 될 독자와는 별개로 작가는 시종일관 냉정하게 거리를 유지한 채 이야기를 힘 있게 끌고 나간다.
 
한 달 전, 등단 10주기를 자축하기 위해 오토바이 한 대로 횡단 여행을 떠났던 작가는, 달리는 중에 마주친 아름다운 일몰을 휴대폰 영상으로 담아 보내왔다. 이런 다정함을 한 번쯤 엿본 사람이라면 그의 소설 속 인물들 내면에 깃든 인간다움이 작가 자신과 무척 닮아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진희 은행나무출판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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