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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적군 잔당 '할배 테러범' 7명, 나이에 맞춰 새 몽타주 배포

중앙일보 2019.07.26 14:21
국제수배 중인 일본적군 잔당 7명의 몽타주 포스터. 이들은 이제 70대로 접어들었다. [사진 일본 경시청]

국제수배 중인 일본적군 잔당 7명의 몽타주 포스터. 이들은 이제 70대로 접어들었다. [사진 일본 경시청]

일본 경시청이 31일부터 배포할 예정인 일본적군 잔당 7명의 새 몽타주 포스터. 나이에 맞게 컴퓨터그래픽으로 이미지 처리했다. [사진 일본 경시청]

일본 경시청이 31일부터 배포할 예정인 일본적군 잔당 7명의 새 몽타주 포스터. 나이에 맞게 컴퓨터그래픽으로 이미지 처리했다. [사진 일본 경시청]

일본 경찰이 이제 70대가 된 왕년의 거물 테러리스트들을 찾기 위해 새 몽타주를 작성했다. 26일 NHK 등에 따르면 일본 경시청은 국제테러조직 일본적군의 멤버였던 국제수배범 7명의 얼굴을 현재 나이에 맞게 컴퓨터그래픽으로 이미지 처리한 몽타주를 이달 말부터 배포한다. 경시청 관계자는 “일본적군을 모르는 세대가 늘어나고 수배범들의 연령이 높아져 20년 만에 새 몽타주를 만들었다”고 마이니치신문에 말했다.    
 

컴퓨터그래픽으로 70대 얼굴로 변신

적군파 계보 잇는 국제테러집단  

이들은 1970~80년대 각종 테러사건에 가담했던 인물들이다. 일본적군은 텔아비브 공항 난사사건(72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미국대사관 점거사건(75년), 인도 상공에서의 일본항공기 납치사건(77년) 등 각종 테러를 자행했던 테러조직이지만 현재는 와해된 상태다.  
 
일본적군은 일본항공 여객기를 납치해 북한으로 갔던 ‘요도호 납치사건(70년 3월)’으로 유명한 적군파의 계보를 잇는다. 적군파 출신인 시게노부 후사코(重信房子)와 교토대 학생운동 그룹이었던 교토파르티잔의 핵심 멤버인 오쿠다이라 쓰요시(奥平剛士)가 71년 2월 창설했다. 이들은 “해외에 운동거점과 동맹군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일본을 떠났다. 일본 내 적군파들은 72년 2월 ‘아사마산장 사건’으로 궤멸됐다. 
 
일본적군은 무장혁명과 세계동시혁명, 반시온주의를 내걸고 중동으로 건너가 레바논 베커고원을 근거지로 활동했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군사조직인 팔레스타인인민해방전선(PFLP)과 손을 잡고 활동했는데 시리아 아사드 정권과 리비아 카다피 정권도 이들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텔아비브 공항테러로 '아랍 영웅' 대우  

이들은 첫 테러로 국제사회를 경악케 했다. 일본적군 3명이 72년 5월 30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로드 국제공항(현 벤구리온 국제공항)에 난입해 수류탄을 던지고 자동소총으로 무차별 난사했다. 그 결과 24명이 숨지는 등 1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대부분 민간인이었다. 테러범 중 2명은 현장에서 자폭했고, 1명은 도망쳤는데 그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이 사건으로 일본적군은 반이스라엘 정서가 강했던 당시 아랍 국가들로부터 영웅 취급을 받았다.
 
1972년 5월 30일 일본적군 3명이 이스라엘 텔아비브 로드 국제공항(현 벤구리온 국제공항)에 난입해 수류탄을 던지고 자동소총을 난사해 1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중앙포토]

1972년 5월 30일 일본적군 3명이 이스라엘 텔아비브 로드 국제공항(현 벤구리온 국제공항)에 난입해 수류탄을 던지고 자동소총을 난사해 1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중앙포토]

이때까지만 해도 이들은 아랍적군 또는 적군파 아랍위원회 등으로 불렸는데, 74년부터 일본적군이란 명칭을 쓰기 시작했다. .
 
75년 8월에는 쿠알라룸푸르의 미국대사관과 스웨덴대사관을 동시에 급습해 인질극을 벌였다. 일본에서 복역 중이던 대원 5명을 석방시키라는 것이 요구 조건이었는데, 일본 정부가 이를 수용했다. 이어 77년 9월 이른바 ‘다카 사건’으로 불리는 일본항공 여객기 하이재킹도 했다. 이들은 인질인 승객과 600만 달러를 대가로 일본에 요구했다.    
 

자금줄 막히며 쇠락…잔당들 고령화 

그러나 80년대 중반부터 아랍국가로부터 지원이 줄고, 서방권의 제재에 따라 자금줄이 막히면서 일본적군은 서서히 힘을 잃게 된다. 그사이 핵심 멤버들도 차례차례 검거돼 90년대 들어서선 거의 활동을 하지 않았다.  
 
20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인 일본적군의 최고지도자 시게노부 후사코가 2012년 12월 옥중 출간한 저서 『혁명의 계절-팔레스티나의 전장에서』의 표지. [아마존재팬 캡처]

20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인 일본적군의 최고지도자 시게노부 후사코가 2012년 12월 옥중 출간한 저서 『혁명의 계절-팔레스티나의 전장에서』의 표지. [아마존재팬 캡처]

창설자이자 최고지도자였던 시게노부도 2000년 11월 오사카(大阪)부 다카쓰키(高槻)시에서 은신 중 여권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적발됐다. 당시 인터폴 수배 대상인 일본적군 잔당은 불법여권을 사용해 세계 도처를 떠돌고 있었다. 97년 레바논에서 체포된 한 대원은 납북 일본인인 이시오카 도오루(石岡亨)의 여권을 소지하고 있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경찰 조사 결과 시게노부는 사실상 일본적군이 와해된 91년부터 일본에서 인민혁명당이란 명칭의 새 무장혁명 조직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법정에서 20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인 그는 2001년 4월엔 일본적군의 해산을 선언했다. 그러나 숨어 지내던 잔당들은 “일본적군 해산 선언은 무효다”는 입장을 언론사에 보내 발표하도록 했다. 
 
그러나 일본 공안은 이들 테러리스트와 지원자 그룹 모두 고령화로 인해 더 이상 실질적인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태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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