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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각시는 왜 죽은 신랑 만나려고 저승까지 갔을까

중앙일보 2019.07.26 07:00

[더,오래] 권도영의 구비구비옛이야기(38)

최근 발생한 한국인 남편의 동남아 부인 폭행 사건은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샀다. 사진은 베트남 출신 아내를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남편이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뒤 돌아가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최근 발생한 한국인 남편의 동남아 부인 폭행 사건은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샀다. 사진은 베트남 출신 아내를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남편이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뒤 돌아가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최근 동남아 결혼 이주 여성에 대한 폭력 사건이 새삼스럽게 문제가 됐다. 상습적인 폭행에 시달리다 못한 여성이 스마트폰으로 몰래 남편의 폭행 장면을 촬영한 뒤 인터넷에 공개한 것인데, 이 남편이 붙잡혀 가면서도 다른 남자들 운운하는 바람에 여성들의 분노를 자극하기도 했다.
 
농촌총각 살리기 운동이라며 해외에서 신붓감을 찾는 일에 대해 마치 노예 수입이라도 하듯이 ‘밭일시키려고 데려왔다’는 표현을 공공연히 쓰는 것은 충격적이다. 그러다 보니 성인이 되었을 때 남성이든 여성이든 정말 그저 혼자 살면 안 되는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을 자꾸 더 하게 되는 것 같다.
 
어떻게든 짝을 맺어 가족을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제 나이에 제 짝을 찾지 못한 남성이 함께 살 여성을 구하는 방법으로 급기야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됐다. 이런 현상을 이해하려면 우리 사회의 여러 분야를 두루 살펴야 하므로 꽤 지난한 작업을 거쳐야 할 것이다.
 
신화학자 캠벨에 의하면 결혼은 분리되어 있던 한 쌍이 재회하는 것이다. 원래는 하나였던 둘이 각자 존재하다 결혼으로써 다시 만나 함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영적인 동일성을 인식하는 방식으로 결혼을 사유하다 보면 결혼에 대해 ‘왜 해야 하나’ 보다는 ‘어떻게 관계를 유지할 것인가’ 하는 데 좀 더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다. 그보다 앞서 평생을 함께할 만한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나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된다. 그래야 육화(肉化)한 신의 이미지를 재건할 수 있다는 것이 캠벨의 설명이다.
 

인간 내부에 존재하는 수성과 신성

육화한 신의 이미지란 인간의 육체에 신의 이미지를 드러낸다는 말이다. 우리의 전통적 신화 사유방식에 따르자면 이는 곧 우리 안에 잠재해 있던 신성을 발현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인간은 오로지 인성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안에는 수성과 신성이 모두 잠재해 있다. 때에 따라서 수성에 이끌려 ‘짐승 같은’ 혹은 ‘짐승만도 못한’ 행동을 하기도 하고, 수성과 인성도 넘어선 신성을 발현하게 될 때는 ‘보통의 평범한 인간으로서 감히 상상도 못 할’ 엄청난 일을 겪어내고 성취하기도 한다.
 
부부들이 수많은 고난을 겪으면서 가족을 지켜내기 위해 애쓰며 산다. 단지 결혼 제도에 복무하느라 지난한 세월을 견뎌낸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 뒤에는 부부관계에 대한 뼈저린 성찰과 관계 지속을 위한 노력이 있었다. [사진 pixabay]

부부들이 수많은 고난을 겪으면서 가족을 지켜내기 위해 애쓰며 산다. 단지 결혼 제도에 복무하느라 지난한 세월을 견뎌낸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 뒤에는 부부관계에 대한 뼈저린 성찰과 관계 지속을 위한 노력이 있었다. [사진 pixabay]

 
성실하고 반듯한 사람들은 수많은 고난 속에서도 결혼생활과 가족을 지켜내기 위해 애쓰며 살았고, 그런 분들을 위해 결혼 25주년이면 은혼식, 50주년이면 금혼식을 올려주며 축하하기도 한다. 참 많이도 힘든 일을 잘해냈음을, 그리고 그때까지 부부가 함께 건강하게 삶을 영위하고 있음을 축복하는 절차라고 할 것이다.
 
이들이 단지 결혼 제도에 복무하느라 그 지난한 세월을 견뎌낸 것만은 아닐 것이다. 부부 관계에 대한 뼈저린 성찰과 관계 지속을 위한 노력 등이 뒷받침되었을 것이다. 물론 말할 것도 없이 서로를 향한 사랑도.
 

세상 떠난 신랑을 만나려 스스로 목숨 버린 신부 

우리 신화 중 ‘도랑선비 청정각시’ 이야기는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말도 못할 고난을 겪는 부인의 여정을 통해 부부 관계 지속의 어려움을 생생하게 형상화해 낸다. 도랑선비가 결혼식을 위해 청정각시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뒷꼭지를 내리누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는 쓰러져 버렸다.
 
그리고 사흘 안에 저세상 사람이 되어 버렸다. 혼인식 날 신랑이 대문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그리되어 버렸으니 청정각시는 그만 혼절할 듯 통곡을 했다. 도랑선비를 장사지내고도 밤낮으로 울기만 하더니 그 울음소리가 하늘의 옥황상제에게까지 이르렀다. 옥황상제가 보낸 황금산 성인은 아무쪼록 남편을 한 번만 만나게 해달라며 비는 청정각시에게 방도를 알려줬다. (대사 등 자료 출처: 신동흔, 『살아 있는 한국신화』, 한겨레출판, 2014(개정판1쇄), 224-234.)
 
우리 신화 '도랑선비 청정각시' 이야기는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말도 못할 고난을 겪는 부인의 여정을 통해 부부 관계 지속의 어려움을 생생하게 형상화해 낸다. [사진 pxhere]

우리 신화 '도랑선비 청정각시' 이야기는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말도 못할 고난을 겪는 부인의 여정을 통해 부부 관계 지속의 어려움을 생생하게 형상화해 낸다. [사진 pxhere]

 
“정화수를 길어 묘 앞으로 가서 첫날밤 이부자리를 거기 펴고 첫날밤 입던 옷을 입고 혼자서 사흘간 기도를 하시오.”

“머리카락을 한 올씩 뽑아서 삼천 발 삼천 마디가 되게 노끈을 고아 안내산 금상절에 가서 한끝은 법당에 걸고 또 한끝은 공중에 걸고 두 손바닥에 구멍을 뚫어서 그 줄에 손바닥을 꿴 다음 삼천 동녀가 힘을 다해 올려 훑고 내리훑어도 아프다는 소리를 안 하면 만날 수 있으리라.”

“참깨 닷 말 들깨 닷 말 아주까리 닷 말로 기름을 짜서 그 기름을 손에 적셔 찍어 말리고 찍어 말리고 해서 기름이 없어지거든 열 손가락에 불을 붙여 그 불로 부처님 앞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지리라.”
 
정화수 길어 사흘 정성 들이는 것부터 시작해 청정각시는 황금산성인이 시키는 대로 다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홀연히 남편 모습이 보일라치면 사라지고, 각시가 손 내밀어 잡으려 하면 또 사라지기를 반복하니 아무리 해도 만날 수가 없었다. 이 상황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각시에게 주어진 마지막 방법은 맨손으로 길을 닦으라는 것이었다.
 
아무 도구도 없이 맨손으로 흙을 고르고 풀을 뽑고 돌을 치우면서 길을 닦다 보니 저쪽 끝에서 도랑선비가 역시 길을 닦으며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도랑선비는 부처님이 이 길을 다 닦으면 인간 세상에 재생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며 이제 함께 살자고 했다. 그러나 함께 길을 가다 다리를 건너던 중 홀연 불어온 큰바람 때문에 도랑선비가 물속에 빠졌다.
 
“나와 함께 살려거든 집에 돌아가서 석 자 세 치 명주실을 조상님이 심은 향나무에 한끝을 걸고 한끝은 그대 목에 걸고 죽으시오. 죽어 저승에서라야 우리 둘이 잘살 것입니다.”
 
청정각시는 비로소 죽는 법을 알게 되자 크게 기뻐하며 시킨 대로 하였고, 저승에 이르러 도랑선비와 재회하였다. 이렇게 어렵게 어렵게 만난 두 사람은 저승에서 큰 즐거움을 누리며 살았다.
 
혼인식도 치르지 못하고 신랑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이며, 그런 신랑을 한 번이라도 만나게 해 달라며 온갖 고행을 마다치 않는 것이며, 그 고난을 겪고도 끝내는 스스로 목숨을 버린 후에야 저승에서 신랑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며, 모두 평범한 사고로는 납득하기 힘든 이야기이다.
 
그런데 잠시만 생각해 보면 서로 완전히 다른 세상에 속해 있던 두 존재가 만나 하나가 되고, 그 관계를 50년, 심지어는 80년씩 이어가기도 하는 것을 보면 분명 낭만적인 사랑 정도의 급을 넘어서는 좀 더 신성한 경지의 무엇이 작동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청정각시가 손바닥에 구멍을 뚫고 줄을 꿰어 기도를 올리는 장면에서 한 수강생은 배우자가 사고를 당했을 때 구급차 안에서 온 마음을 다해 기도했던 경험을 떠올렸다고 한다. [연합뉴스]

청정각시가 손바닥에 구멍을 뚫고 줄을 꿰어 기도를 올리는 장면에서 한 수강생은 배우자가 사고를 당했을 때 구급차 안에서 온 마음을 다해 기도했던 경험을 떠올렸다고 한다. [연합뉴스]

 
한 수강생은 청정각시가 손바닥에 구멍을 뚫고 줄을 꿰어 기도를 올리는 장면에서 배우자가 사고를 당했을 때 구급차 안에서 온 마음을 다해 기도했던 경험을 떠올리기도 했다. 어찌나 간절하게 빌었던지 손바닥에서 찐득한 땀이 배어 나올 지경이었다고 한다. 그런 삶의 경험이 이야기에서는 손바닥에 구멍을 뚫고 줄을 꿰는 장면으로 형상화하는 것은 아닐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성격과 행동 때문에 크게 싸우기도 하고 심각하게 사이가 틀어지기도 했다가 비로소 마음을 받아들이고 사랑을 확인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중년 이상 부부에게 물어보면 그냥 정으로 산다고 하고, 혹은 전우애를 느끼는 동지처럼 산다고도 한다. 청정각시가 겪어낸 일들이 그런 과정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 왜 그 일을 청정각시만 겪을까. 도랑선비는 결혼 문턱도 제대로 넘지 못하고 지레 쓰러져 버렸다. 이야기 속에서는 도랑선비의 조상이 잘못을 저질러서 그 탓에 자신이 이렇게 되었다고 한탄하기도 한다. 핑계 대기 좋은 게 조상 탓이라고, 그저 자신이 용기 내지 못했던 것, 혹은 설명할 겨를 없이 급작스럽게 일어난 사고 같은 일을 그렇게 둘러댄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우리 옛이야기에서 첫날밤을 제대로 넘기지 못하는 신랑들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 것을 보면, 가장이라는 책임감을 떠안아야 하는 결혼이라는 것이 남자 입장에서는 그렇게도 힘든 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망자의 넋 위로라는 해석도

함경도지방에서 전승되어온 죽은 사람의 넋을 천도하는 굿(위). 집터신에게 굿하는 사유를 알리고 부정굿을 끝낸 다음, 제상을 차려 놓고 장구를 치며 굿을 행한다. 1981년 12월9일부터 10일까지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있었던 함경도 망묵굿 현장(아래).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문화콘텐츠닷컴]

함경도지방에서 전승되어온 죽은 사람의 넋을 천도하는 굿(위). 집터신에게 굿하는 사유를 알리고 부정굿을 끝낸 다음, 제상을 차려 놓고 장구를 치며 굿을 행한다. 1981년 12월9일부터 10일까지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있었던 함경도 망묵굿 현장(아래).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문화콘텐츠닷컴]

 
다만, 이 이야기가 함경도 지방에서 전해지는 ‘망묵굿’에서 구송되는 것임을 잠시 상기해 본다. ‘망묵굿’은 말하자면 ‘망자천도굿’이다. 이 세상을 떠난 분들을 좋은 곳으로 인도하기 위해 행하는 굿이라는 말이다.
 
굳이 부부 사이로 한정하지 않더라도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남아 있는 이들이 한 번이라도 만나봤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을 갖지만, 떠난 이는 떠나보낼 수도 있어야 할 것이다. 청정각시의 기도 끝에 잠시 희미하게 나타났던 도랑선비는 “나는 인간과 다른데 어찌 이러오?” 하고는 사라져 버렸다. 떠난 이도 나름대로 길을 닦으며 갈 곳이 있고, 남은 이도 떠난 이를 잘 보내주어야 할 것이다.
 
“이만큼 정성으로 길을 닦았으니 망자들이여 편히 가소서. 우리도 곧 그곳에 가서 그토록 보고팠던 당신을 만날 것입니다. 이 노래를 듣고 알아주소서.”
 
망자의 넋을 위로하는 제의에서 불렸다면 ‘도랑선비 청정각시’ 이야기는 이 같은 기원을 담은 것은 아닐까 헤아려 본다. 그리고 결혼생활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든 이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 결혼은 남성에게나 여성에게나 이전에 자신이 가졌던 거의 모든 것을 벗어내 던지고 새로  거듭나는 신성을 발휘하도록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권도영 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연구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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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영 권도영 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필진

[권도영의 구비구비 옛이야기] 우리 옛이야기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 신화, 전설, 민담에는 현대에도 적용 가능한 인간관계의 진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관계에서 생기는 갈등은 어느 무엇보다도 우리를 지치게 한다. 나 하나를 둘러싼 인간관계는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계의 갈등을 심도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가 옛이야기이다. 우리 옛이야기를 통해 내 안에 숨어 있는 치유의 힘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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