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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영공 침입 잡아 떼는 러, 소련 땐 자국 영공 들어온 외국기 줄줄이 격추

중앙일보 2019.07.26 05:00
러시아가 지난 23일 독도 상공의 대한민국 영공을 침범하고도 딱 잡아떼고 있다. 이날 러시아의 전략폭격기 투폴레프 Tu-95MS 2대와 조기경보통제기인 A-50 1대는 중국 전략폭격기 시안(西安) H-6K 2대와 함께 동해와 남해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한 데 이어 A-50기가 독도 상공의 대한민국 영공을 두 차례나 침범했다. 정부는 25일 주한 러시아 대사관 무관들에게 증거를 제시했지만, 이들은 본국에 전달하겠다는 말만 했을 뿐이다.  

러, 2차대전 종전 뒤 미군기만 40여대 격추
영공 침범 당하면 전투기 출격, 발포가 원칙
일본 홋카이도 근처에서 미군기 줄줄이 당해
2006년 러, 일본 어선에 총격 가해 어부 사망
소련·러시아, 영토·영공·영해에 편집증적 집착
한국도 영토 주권에 대한 대응 원칙 강화해야

독도 상공을 F-15K 편대가 비행하고 있다. 영공 수호는 주권 국가의 기본이다. [사진 대한민국 공군]

독도 상공을 F-15K 편대가 비행하고 있다. 영공 수호는 주권 국가의 기본이다. [사진 대한민국 공군]

 

러시아 전신 소련, 편집증적인 영공 관리

이런 러시아는 전신인 소련 시절부터 자국 영공에 대해선 편집증적인 집착을 보여 왔다. 다른 나라의 항공기가 헬기가 허가 없이 영공에 들어오면 전투기를 보내거나, 지대공 미사일을 발사해 격추하거나, 경고 사격을 한 다음 강제 착륙을 시켜왔다. 그냥 보내는 법이 없었다. 냉전 시기에 소련과 맞서던 미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영토와 영공, 영해에 대한 철저한 집착이다. 달리 말하면 수호 의지다. 사진 촬영이나 신호정보 수집을 비롯한 스파이 활동이 아니라면 영공을 침입할 이유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1957년 도입된 미국의 고공정찰기인 록히드마틴 U-2기. 미군이 아직도 운용한다. [사진=록히드마틴]

1957년 도입된 미국의 고공정찰기인 록히드마틴 U-2기. 미군이 아직도 운용한다. [사진=록히드마틴]

 

냉전 시기 미국, 고공에서 소련 정찰

러시아 전신인 소련의 영공에 대한 편집증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이 시작되면서 극에 달했다. 소련은 냉전이 시작된 1946년부터 1960년까지 자국을 상대로 고공 정찰 활동에 나선 미국에 강력히 대응했다. 미군 정찰기는 소련 영공에 들어가 고공에서 소련군의 규모와 구성, 배치와 이동, 무기체계와 훈련, 그리고 핵무기와 미사일 기지를 촬영했다. 처음에는 보잉 B-47 전략폭격기를 정찰용으로 개조해 사용하다 1957년부터 새로운 록히드마틴 U-2기를 동원했다. U-2기는 한번 이륙하며 1만1000㎞ 이상을 비행하며 2만4000m 상공에서 소련과 중국, 베트남 쿠바의 지상 목표물을 촬영해 스파이 항공기의 대명사로 불렸다.  
지난 23일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무단 진입한 러시아의 전략폭격기 Tu-95. [AP=연합뉴스]

지난 23일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무단 진입한 러시아의 전략폭격기 Tu-95. [AP=연합뉴스]

 

소련, 영공 지나는 미국 정찰기 미사일로 잡아

소련은 1960년 5월 1일 자국 영공을 날던 U2기에 지대공 미사일을 발사해 격추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소속의 조종사 게리 파워스를 잡았다가 1962년 2월 10일 자국 첩보 요원과 교환했다. 소련은 U-2기 격추 당시 14발 이상의 미사일을 발사했으며 그중 한 발은 요격에 나섰던 소련 공군의 미그기를 추락시켰다. 소련은 영공에 들어온 미군 정찰기를 잡기 위해 그야말로 악착같이 미사일을 발사한 셈이다.   
1962년 쿠바 위기 때도 쿠바 상공에서 정찰 임무를 수행하던 U-2기가 소련이 쿠바에 제공한 지대공 미사일에 맞아 격추됐으며 조종사 루돌프 앤더슨은 숨졌다. 앤더슨이 정찰기를 몰고 촬영한 사진은 소련이 쿠바에 중거리 핵미사일 배치를 추진 중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소련과 그 동맹국들은 자국 영공에서 촬영하거나 정보를 수집하는 항공기를 격추하는 것을 당연시했다. 이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부엉이가 아무것도 노리지 않고 민가에 내려올 리가 없다’는 옛말이 있듯이 타국 군용기가 영공에 무단으로 들어오는 것 자체가 나중에 등을 찌르기 위한 도발이기 때문이다.  
지난 23일 독도 인근의 대한민국 영공을 두 차례 침범한 러시아 조기경보통제기 A-50' . 조기경보통제기의 특성상 영공 침범 과정에서 국군의 신호 정보를 수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합뉴스]

지난 23일 독도 인근의 대한민국 영공을 두 차례 침범한 러시아 조기경보통제기 A-50' . 조기경보통제기의 특성상 영공 침범 과정에서 국군의 신호 정보를 수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합뉴스]

 

소련 영공 침범했다가 격추 미군기 40대 넘어  

소련군은 냉전 당시 수색 임무를 수행한 미군이나 중앙정보국 소속 정찰기 40대 이상을 영공에서 격추했다. 러시아의 전신인 소련이 영공을 관리하는 방식이다. 이런 원칙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어야 할 것이다.  
소련 전투기는 1950년부터 1960년까지 발트해, 북극해, 일본 홋카이도(北海道)와 쿠릴 제도 사이의 바다에서만 10여 대의 미군기를 격추했다. 동독에 주둔한 소련군 전투기가 미군 정찰기나 훈련기를 격추한 적도 있다. 소련 전투기들은 블라디보스토크 인근 상공에서 1950년과 1952년 미군기를 공격하려다 거꾸로 격추되기도 했다.  
냉전 당시엔 소련 국경 주변에서 활동하던 미군 정찰기가 격추되기도 했다. 1958년 9월 2일 소련 공군의 미그-17기들은 나토 회원국인 터키와 소련 공화국이던 아르메니아 경계를 비행하던 미군의 C-130 정찰기가 자국 영공을 침범했다며 격추했다. 정찰기에는 승무원 6명과 정보 요원 11명이 타고 있었는데 소련은 승무원 6명의 유해만 돌려줬다. 1992년 소련이 무너진 뒤 미군 유해 발굴팀이 추락 지점에서 발굴 작업을 벌여 수백 개의 뼛조각을 발견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2명의 사망자 신원을 확인했다.  
2015년에는 나토 회원국인 터키가 국경을 맞댄 시리아에서 작전하다 영공을 잠시 침범한 러시아 전투기를 격추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러시아는 터키와 무역을 중단하는 등 격렬하게 대응했지만, 지금은 미국이 우려할 정도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 영공 침범한 중국 군용기 'H-6'   (서울=연합뉴스) 23일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중국 H-6 폭격기와 러시아 TU-95 폭격기 및 A-50 조기경보통제기 등 군용기 5대가 동해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무단 진입했으며, 이 과정에서 러시아 A-50 1대는 독도 인근 한국 영공을 두 차례 7분간 침범했다. 사진은 중국 H-6 폭격기 모습. [연합뉴스]

우리 영공 침범한 중국 군용기 'H-6' (서울=연합뉴스) 23일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중국 H-6 폭격기와 러시아 TU-95 폭격기 및 A-50 조기경보통제기 등 군용기 5대가 동해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무단 진입했으며, 이 과정에서 러시아 A-50 1대는 독도 인근 한국 영공을 두 차례 7분간 침범했다. 사진은 중국 H-6 폭격기 모습. [연합뉴스]

소련, 국경 근처에서 이란 헬기도 떨어뜨려

소련은 1978년 7월 21일 소련 공화국인 투르크메니스탄과 이란 국경 인근을 비행하던 이란 공군의 CH-47 치누크 수송 헬기 4대가 영공을 침범했다며 미그-23기를 동원해 공격했다. 치누크 1대는 미그기의 미사일을 맞고 격추돼 탑승자 8명 전원이 사망했다. 다른 한 대는 미그기로부터 72발의 기총 사격을 받고 엔진이 파괴되면서 불시착해 전원이 소련 국경 경비대에 붙잡혔다. 그 사이 다른 2대의 이란 치누크는 간신히 귀환했다. 
이란은 자국 헬기 추락과 항공요원 사망을 문제 삼지 못했으며, 소련은 억류한 이란 군인들이 치누크를 수리한 뒤 이를 타고 귀국하도록 허용했다. 사고 15년 전에도 이란 육군 소속 경비행기가 영공 침범을 이유로 소련 공군의 미그-17기에 격추되는 일이 있었다. 당시 이란은 친미 샤(페르시아 군주)가 지배하고 있었지만, 소련에 항의하지 못했다.  
반미 이슬람 정권 시절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1980년 이슬람 혁명으로 군주제가 무너지고 혁명 정부가 들어선 뒤 8년이 지난 1988년 이란의 AH-1 코브라 헬기가 아프가니스탄과 경계 지역에서 소련군의 공격으로 격추됐다. 당시 아프가니스탄은 소련군 점령(1979~89년) 상태였으며, 이란은 이란-이라크전쟁(1980~88년)으로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베트남 파병 미군 실은 전세기, 소련에 억류

소련은 1968년 7월 1일 전세기인 시보드 월드 에어라인 253A편 더글러스 DC-8 여객기가  비행 중 자국 영공을 침범했다는 이유로 쿠릴 열도의 이투루프 섬에 강제로 착륙시켰다. 남베트남으로 가는 파병군인 214명과 승무원 24명 등 238명이 태우고 경유지인 일본으로 향하던 이 이 미군 전세기는 출동한 소련 공군의 전투기 2대의 경고 사격을 받은 뒤 강제로 섬에 내렸다. 미국은 영공 침범을 인정한 뒤 국제정세를 이용한 외교적 해결을 추구했다. 미국 정보당국은 소련과 접촉했다. 당시 중국과 격렬하게 대립하던 소련은 중국의 동맹인 북베트남과 싸우기 위해 남베트남으로 향하던 군인과 승무원을 이틀 뒤 전원 풀어줬다. 미국이 군사력과 외교력을 동시에 갖췄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25일 서울 용산의 국방부에서 열린 러시아 공군기의 영공 침범 관련 실무협의회에 참석하는 주한 러시아 대사관의 공군과 해군 무관들. [연합뉴스]

25일 서울 용산의 국방부에서 열린 러시아 공군기의 영공 침범 관련 실무협의회에 참석하는 주한 러시아 대사관의 공군과 해군 무관들. [연합뉴스]

동시베리아에서 날아온 러시아 전략폭격기

정황상 러시아 공군기들은 동시베리아의 극동 아무르주 벨로고르스크 북쪽 28㎞에 위치한 우크라인카 공군기지에서 이륙했을 것이다. 3500m의 활주로를 갖춘 이곳은 러시아가 현재 운용하는 3개의 장거리 핵 폭격기 기지 중 하나다.  
러시아는 1992년 소련이 무너지고 각 공화국이 독립하자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의 돌론 기지에 있던 장거리 전략폭격기 부대들을 이곳으로 옮겼다. 2009년 러시아 공군이 구조조정을 하는 과정에서 전략폭격기 부대는 3개로 줄었으며 이곳은 제6952 공군기지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러 폭격기, 순항미사일 장착 핵 폭격 능력 강화  

러시아의 전략폭격기 투폴레프 Tu-95MS는 기존의 Tu-95를 순항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도록 개조한 것이다. 순항미사일 발사 전략폭격기는 폭격 지점까지 비행하지 않고도 순항미사일 사거리만큼 떨어진 곳에서 핵 공격을 가할 수 있다.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러시아는 사정거리 3000㎞에 재래식 탄두와 핵탄두를 달 수 있는 Kh-55 공중발사 순항미사일을 6발 장착하는 Tu-95MS6 32대와 함께 16기를 장착하는 Tu-95MS16 56대를 보유하고 있다.  
 

핵탄두 장착 스텔스 순항미사일 장착 기종일까  

러시아는 이중 21대를 대상으로 ‘스텔스 순항미사일’인 Kh-101과 102를 장착할 수 있도록 개조하는 현대화 작업을 마쳤다. 이번에 동해를 지난 Tu-95 계열의 전략폭격기가 어떤 종류인지 분석 결과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스텔스 핵미사일을 장착한 현대화 기종을 동해에서 시험 비행했다면 앞으로 상당한 국제정치적인 파장을 예상할 수 있다. 이번 사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큰 이유다.  
 

러, 일본 어선에 총격…어부 사망하기도

러시아는 2006년엔 일본 북부 홋카이도(北海道) 북쪽의 쿠릴열도 근해에서 조업하던 일본 민간 어선이 영해를 침입했다고 총격을 가했다. 이 사고로 홋카이도에서 빤히 보이는 바다에서 어부 1명이 목숨을 잃었어도 일본은 아무런 조처를 하지 못했다. 영토, 영공, 영해에 대한 소련과 러시아의 편집증적 집착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런 강경 대응이 영토 주권에 대한 국가의 기본적인 자세일 것이다. 한국도 영토 주권에 대한 명확한 대응 원칙을 세워야 할 때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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