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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죽은 대통령들과의 대화

중앙일보 2019.07.26 00:22 종합 31면 지면보기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지난 20일 토요일 오후, 서울 동작동 현충원은 무더웠지만 고즈넉했다. 시대착오적 친일 논쟁과 구한말을 닮은 우리 처지에 울적하던 시간, 문득 “이 혼돈의 시대에 그들이라면…” 하는 생각에 저세상의 대통령들을 만나러 갔다.
 

현충원에 잠든 네 명의 대통령들
일본과 불행한 과거 청산에 노력
일본 사죄·배상만 매달리지 말고
우리가 책임지는 발상 전환 조언

‘대통령 묘소’라고 적힌 안내판을 따라 해발 175m 공작봉에 이르면 박정희를 먼저 만난다. 봉분 앞에 ‘박정희 대통령 각하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리본을 단 하얀 서양란 화분이 놓여 있다. ‘오천년 이 겨레의 찌든 가난 몰아내고(…) 세계의 한국으로 큰 발자국 내디뎠기…’라는 이은상의 헌시비(獻詩碑)가 그의 업적을 기린다.
 
그 ‘찌든 가난’을 탈피하려고 박정희가 한 게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이다. 강제징용 배상 문제로 한일 갈등의 빌미를 준 협정이다. 박정희는 협정 체결과 국교정상화 직후 담화에서 말했다 “과거만 따진다면 우리의 사무친 감정은 불구대천(不俱戴天)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제의 원수라 하더라도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위해 필요하다면 그들과도 손을 잡아야 하는 것이 국리민복을 도모하는 현명한 대처가 아니겠습니까”라고. 65년 우리의 1인당 GDP(국민총생산)는 108 달러. 잘살아 보기 위해선 원수와도 손을 잡겠다는 집념이었다.
 
박정희 묘소에서 150m쯤 내려가면 김대중(DJ) 묘소가 나타난다. 박정희보다 작고 단아한 봉분이다. “당신은 민주주의입니다. 어둠의 날들 몰아치는 눈보라 견디고 피어나는 의지입니다…”라는 고은의 헌시가 인동초(忍冬草)를 떠올린다. DJ가 98년 10월 일본 국회에서 한 연설은 역사의식을 보여준다. “일본과 한국의 관계가 불행했던 것은 약 400년 전 일본이 한국을 침략한 7년간과 금세기 초 식민지배 35년간입니다. 50년도 안 되는 불행한 역사 때문에 1500년에 걸친 교류와 협력의 역사 전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런 냉철한 판단이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천명한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끌어냈다.
 
DJ 묘에서 150m를 더 내려가면 ‘우남 이승만 박사 내외분의 묘’가 기다린다. 7월 19일은 서거 54주기, ‘대통령 문재인’의 조화가 눈에 띈다. ‘대마도 반환’을 요구했고, “일본에 강도당한 것은 반드시 반환받겠다”며 청구권협상을 시작한 이승만의 기운이 느껴진다.
 
김영삼(YS)은 세 대통령 묘역과 조금 떨어진 능선에 잠들어 있다. DJ와 같은 크기의 묏자리다. “나는 잠시 살기 위해 영원히 죽는 길을 택하지 않고 잠시 죽는 것 같지만 영원히 살길을 선택할 것입니다”는  그의 어록이 적힌 ‘김영삼 민주주의 기념비’가 곁을 지킨다. YS는 대일 외교에서 파격적 노선을 취했다. 취임 직후인 93년 3월 “위안부 문제에 대해 물질적 보상을 일본에 요구하지 않고 정부 예산으로 피해자를 구제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런저런 반대로 실행에 실패했지만 그의 독자적인 자구 조치 시도는 의미가 크다.
 
‘현충원 대통령’들은 일본과의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노력했다. 위안부, 독도, 역사 왜곡, 망언, 강제징용 문제들에서 번번이 충돌했지만 일보 전진했다. 이승만의 결기, 박정희의 실용, 김영삼의 자구, 김대중의 미래 지향은 값진 유산이다. 이승만처럼 일본의 침략 근성을 경계하면서, 박정희처럼 일본의 실체를 쿨하게 인정하고, YS처럼 구차하게 손 벌리는 거 접고, DJ처럼 미래에 무게 둔 대일 외교를 해보라고 죽은 대통령들은 속삭인다.
 
48년 정부 수립 당시 한국은 세계 117위의 최빈국이었다. 50 달러 수준이던 한국의 1인당 GDP는 2018년 3만 달러를 넘어 600배가 늘었고, 3만9000 달러의 일본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한국(1조6200억 달러)과 일본(4조9700억 달러)의 GDP 격차도 3분의 1로 좁혀졌다. 전 세계 7개국뿐인 30-50클럽에 진입한 선진국이 됐다. 일본의 사죄와 배상에만 매달리지 말고 우리가 주체적으로 책임지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징용·위안부 피해자의 땀과 피눈물을 어떻게 돈으로 어떻게 환산할 수 있겠나. 하지만 일본의 도덕적 책임을 묻되 우리 돈으로 피해자들의 고통과 희생에 대해 보상과 명예 회복을 해주는 YS식 방법이 있다. 일본의 억지처럼 개인 배상이 소멸했다거나, 한국 대법원 판결을 부정하거나, 일본의 비겁한 경제 보복에 굴복하자는 것이 아니다. 민족적 자존심과 도덕적 우위를 바탕으로 식민 지배의 긴 악몽을 끊는 길이다.
 
우리는 지정학적으로 고달픈 나라다. 핵을 보유한 북한, 우리를 조공국으로 여기는 중국, 독도까지 온  러시아라는 적대적 이웃이 위협한다. 친일로 기운 트럼프의 미국은 으르렁대는 한·일 사이에서 누구 편을 들지 의문이다. 이런 마당에 일본과도 척지려 한다. “쫄지 말자”고 거품 물며 죽창 들고 의병 일으키자는 관제 애국 선동은 자기비하일 뿐이다.
 
2019년 기해년(己亥年)이 일본의 보복에 꼼짝없이 당한 ‘기해왜란’이 될지, 과거사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원년이 될지 기로에 섰다. 미우나 고우나 일본을 품으려 했던 현충원 대통령들의 고뇌와 지혜를 이 정부 사람들이 새겨봐야 한다.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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