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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세가 대기업 투자 발목 잡자…文정부 첫 세금 줄여준다

중앙일보 2019.07.25 14:00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으로 대기업의 세금을 줄여주는 쪽으로 세법을 개정한다. 경제활력을 높이기 위해 대기업의 투자를 유도하고,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비해 연구개발(R&D)을 촉진하겠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정부는 25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세제발전심의위원회'를 열고 이런 내용을 담은 ‘2019년 세법개정안’을 의결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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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르면 설비투자의 80% 가까이를 차지하는 대기업의 생산성향상시설 투자에 대한 투자세액공제율과 적용 대상을 늘린다. 공정 개선 설비나 반도체 제조 첨단설비 등 특정 설비에 투자하면 투자액의 일정 비율을 법인세 등에서 공제해주는 것이다. 대기업 공제율은 현 1%에서 2%로 2배 높이고 중견(3%→5%)과 중소(7%→10%)기업 공제율도 상향 조정한다. 생산성향상시설 투자세액공제 대상에는 의약품 제조 첨단설비, 물류산업 첨단설비 등이 추가된다. 이 혜택은 개정안 통과일로부터 1년간 한시적으로 적용한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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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세입기반 확충’을 이유로 정부가 축소했던 세제 혜택이다. 당시 기재부는 “공제액 측면에서 소수 제조 대기업에 특혜가 집중되고 있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초기 투자단계에서 법인세 납부연기 혜택을 주는 가속상각특례 적용기한도 내년 6월 말까지 6개월 연장한다. 내용연수를 50%까지 축소, 자산을 취득한 초기에 감가상각을 크게 적용해 세금을 덜 내면서 투자금액을 조기에 회수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대상도 늘린다. 대기업의 경우 연말까지 투자하는 생산성향상시설, 에너지절약시설에 대해서도 가속상각 제도를 적용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연구ㆍ인력 개발 시설, 신성장기술 사업화 시설 등 혁신성장 투자자산만 가속상각을 허용했다. 중소ㆍ중견 기업은 가속상각 허용 한도가 50%에서 75%로 한시적으로 늘어난다.
자료: 기획재정부

자료: 기획재정부

예컨대 1200억원짜리 자산의 내용연수가 6년이라면 매년 200억원씩 감가상각을 하며 비용으로 처리한다. 그러나 50% 가속상각을 하면 내용연수가 3년으로 단축된다. 첫 3년간 매년 400억원씩 감가상각을 하며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어 초기에 이익이 적게 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같은 세제 인센티브 제공은 투자 부진 타개를 위해 기업들의 투자를 올해 하반기 이내로 당기도록 유도하려는 취지다. 기재부 관계자는 “경제가 어려우니 기업이 준비한 투자조차 뒤로 미루는 경향이 많은데, 예정된 투자를 더 뒤로 미루지 않고 앞으로 당기도록 한시적으로 세제 지원을 해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신산업 R&D를 위한 다양한 세제 인센티브도 마련했다. 우선 최대 40%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 ‘신성장동력ㆍ원천기술 연구개발비’ 대상이 넓어진다. 시스템반도체 설계ㆍ제조기술, 바이오베터기술 등과 관련된 소재ㆍ부품ㆍ장비 분야를 대거 포함한다. 구체적인 기술범위는 시행령으로 규정할 계획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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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인 세액공제 이월 기간은 10년으로 연장된다. 세액공제 한도를 넘겼더라도 다음 해로 이월하면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간이 길어지는 것이라 R&D를 확대하는 기업들은 법인세 절감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이와 함께 신성장기술 R&D 위탁연구개발비 인정 범위를 확대한다. 그간 신성장 R&D 세액공제 대상 위탁ㆍ공동연구개발 기관의 범위가 국내 소재 기관으로 한정돼 있었는데, 해외 자회사를 포함하기로 했다.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를 줄이고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선진국과의 직접적인 기술 협력이 필요하다는 기업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기업 최대주주의 상속세 부담을 완화하는 안도 담겼다. 현재 한국의 상속세 최고 세율은 50%다. 최대 주주가 지분을 팔거나 상속할 때는 ‘경영권 프리미엄의 대가’로 최고 세율에 일반기업은 20~30%, 중소기업은 10~15%의 할증률이 붙는다. 기업 오너가 가업을 물려줄 때 지분 가치의 최대 65%만큼 상속세를 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할증률은 일반 기업은 20%, 중소기업은 0%를 적용해 상속세 부담을 줄여준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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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업상속 지원 세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가업상속공제 제도로 혜택을 받는 사람이 고용ㆍ자산ㆍ종사 업종을 유지해야 하는 기간이 현행 10년에서 7년으로 줄어든다. 업종 변경 및 자산 매각 허용범위도 확대한다. 이 제도는 가업을 이어가는 것을 돕고자 상속세 납부를 최대 500억원 한도에서 면제해주는 제도다. 이와 함께 상속세를 나눠 내는 연부연납 특례를 받을 수 있는 중견기업은 기존에는 ‘매출액 3000억원 이하’라는 조건이 붙었지만, 이번에 이를 없앴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유지돼 온 대기업 증세 흐름이 부분적으로나마 감세 기조로 돌아선 것은 그간 대기업 증세 카드의 효과가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되려 2017년 세법을 바꾸자 설비투자 감소라는 부작용이 나왔다. 2018년 1분기 10.2% 증가했던 설비투자는 그해 2분기 마이너스(―)로 돌아선 뒤 4분기 연속 내리막이었다. 올해 1분기엔 17.4% 감소했는데, 이는 2009년 1분기(―19.0%) 이후 가장 큰 낙폭이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사실상 한시적 대책에 그치는 게 많은 만큼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를 끌어내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며  “세계 경제 둔화에 일본의 경제 보복까지 겹쳐 상황이 엄중한 만큼, 세제 정책도 법인세율을 내리는 등의 과감한 방향전환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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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서민 감세 기조는 계속 유지하기로 했다. 중소기업에 취업한 청년, 60세 이상자, 장애인 등에 대해 3년간 소득세를 연간 150만원 한도로 연간 70%(청년은 5년간 90%)까지 감면해준다. 야간근로수당 등이 비과세되는 생산직 근로자의 총급여액 기준을 올리고(2500만원→3000만원), 일하는 저소득층을 지원하기 위해 근로장려금 최소지급액도 상향 조정(3만원→10만원)한다. 15년 이상 된 휘발유나 경유차ㆍLPG 차를 폐차하고 새 승용차(경유차 제외)로 교체하면 개소세율을 현행 5%에서 1.5%로 70% 인하(100만원 한도)해준다. 신용카드 등 사용금액 소득공제, 주택청약종합저축 소득공제는 일몰 기한이 다시 연장(3년)된다.  

자료: 기획재정부

자료: 기획재정부

아울러 정규직 전환기업에 대한 세액공제(전환 인원 1인당 중소기업 1000만원, 중견기업 700만원) 적용기한을 연장하고, 상생형 지역일자리 기업 투자세액공제율을 높이며, 중소기업 청년 등 취업자 소득세 감면대상 서비스업종을 확대하는 등 일자리 관련 세제지원도 늘리기로 했다.
 
그러나 정부는 '부자 증세' 기조는 계속 유지하는 모양새다. 2021년부터 소형주택 임대사업자에 대한 세제 감면 혜택을 최대 75%에서 50%로 낮추고, 9억원 이상 상가주택 거래시 양도소득 과세특례도 줄어든다. 올해 대비 향후 5년간 고소득층의 세부담은 3773억원 늘어난다. 
 
세종=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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