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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민심 못이겨 일본 떠난 지 하루만에 귀국한 교육청 직원

중앙일보 2019.07.25 11:51
25일 청주교육지원청이 일본 돗토리시 학생 방문 지원과 관련 사과문을 게시했다. [사진 청주교육지원청]

25일 청주교육지원청이 일본 돗토리시 학생 방문 지원과 관련 사과문을 게시했다. [사진 청주교육지원청]

 
일본과 민간교류를 해 온 단체가 주관하는 행사에 청주교육지원청이 직원을 보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일본에 갔던 교육청 직원 두 명은 하루 만에 조기 귀국했다. 

청주교육지원청 일행 지난 23일 일본 돗토리시 방문
중학교 배구부 24명 친선 경기…직원 24일 조기 귀국
교육청 "한일 관계 두루 살피지 못해" 사과문 게시
일선 학교 일본 체험학습·수학여행 취소 잇따라

 
25일 청주교육지원청에 따르면 지난 23일 민간단체인 청주국제교류회가 주관한 ‘국제교육문화교류 일본 돗토리시 방문’에 청주 소재 중학교 두 곳의 배구부 24명과 학생 인솔자 6명, 청주교육청 직원 2명 등 32명이 3박 4일 일정으로 출국했다. 전체 방문단 규모는 청주국제교류회 회원 8명을 더해 40명이다. 이들은 일본 돗토리시를 방문해 친선 배구대회를 하고 박물관 방문과 소감 발표회, 역사 유적지 탐방 등 일정을 짰다.
 
그러나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청주교육지원청 홈페이지에는 일본 방문을 비난하는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매국노’, ‘어이가 없다’, ‘제정신인지 의심이 든다’ 등 원색적인 비난 글들이 게시판을 채웠다. 또 충북도교육청을 비롯한 각 지역 교육지원청에는 시민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최근 일본의 경제보복 여파로 일본 방문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확산하는 시기에 교육청이 일본 방문을 강행한 것은 적절치 않았다는 게 비판 내용이다.
 
이러자 청주교육청은 지난 23일 긴급회의를 통해 일본 민간교류단에 포함된 교육청 직원 2명을 일본 돗토리시 교육위원회와의 업무협약 논의 일정을 전면 취소하고 조기 귀국하도록 결정했다. 교육청 직원 2명은 24일 오후 10시쯤 청주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여행 경비 일부를 자부담 한 학생들과 교직원은 배구 교류 등 향후 일정 등을 고려해 예정된 일정을 소화하는 쪽으로 방침을 정했다.
지난 23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평택교육지원청 앞에서 평택시 청소년교육의회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일본의 부당한 경제적 보복조치에 대한 사회참여를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지난 23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평택교육지원청 앞에서 평택시 청소년교육의회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일본의 부당한 경제적 보복조치에 대한 사회참여를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청주교육청은 학생 24명의 여행경비 중 3분의 1가량인 585만 원과 공무원여비규정에 따라 인솔자 2명, 교육청 인원 2명의 비용을 지원했다. 자부담이 없는 교육청 직원 등은 1인당 120여만 원을 지원했다. 청주교육청 관계자는 “한일 관계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교육청의 후원을 통해 일본을 방문했다는 여론을 고려해 직원 2명만 조기 귀국하는 것으로 결정했다”며 “시기가 적절치 못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학생들의 견문을 넓혀주려는 취지였다는 점을 이해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청주교육청은 25일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려 “최근 한일 양국의 정치·경제적 상황을 두루 살피지 못하고 학생 교류를 추진해 걱정을 끼치게 된 데 대해 사과드린다”고 했다. 청주국제교류회는 1990년부터 일본 돗토리시와 민간교류를 하고 있다. 학생 배구 친선교류는 2017년부터 시작해 올해 3년째다.
 
일본의 경제 보복에 따른 한일 갈등으로 일선 학교에서는 이미 예정된 일본 교류 활동과 수학여행을 취소하거나 변경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강원 양양군의 양양중은 오는 9월 16일~19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계획한 일본 체험 학습을 취소했다. 이 학교 전교생 391명이 일본 오사카와 쿄토 등을 방문하는 일정이다. 이번 체험학습은 1인당 100만원씩 4억원가량의 예산이 소요되는 대규모 행사였다. 체험학습 경비는 지난 3월부터 양양중과 양양여중이 통합되면서 교육부로부터 받게 된 통합 지원 자금으로 충당하기로 했다.
25일 강원 원주시가 일본정부의 수출규제 철회를 요구하며 공공부문부터 일본제품 불매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시가 제작해 각종 민간단체, 시민들에게 배포할 일본제품 불매' 스티커. [뉴스1]

25일 강원 원주시가 일본정부의 수출규제 철회를 요구하며 공공부문부터 일본제품 불매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시가 제작해 각종 민간단체, 시민들에게 배포할 일본제품 불매' 스티커. [뉴스1]

 
하지만 학교 측은 일본 불매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하자 4300만원에 달하는 위약금 발생에도 체험학습을 취소하기로 했다. 다행히 학교 측과 계약한 3개 항공사와 여행사에서 현재 상황을 고려해 경비를 전액 반환해주기도 결정했다. 권순길 교감은 “4000만원이 넘는 위약금을 내는 게 큰 부담이었는데 항공사 등에서 배려해줘 다행”이라며 “학생들과 교직원, 학부모 의견을 모아 일본이 아닌 다른 곳으로 체험학습을 떠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남교육청은 최근 산하 기관과 각급 학교에 공문을 보내 일본 공무출장과 현장 체험학습 자제를 권고했다. 도교육청이 추진하는 청소년 미래 도전 프로젝트에서 국외 활동 28개 팀 중 일본 방문을 계획한 6개 팀이 현지 활동을 취소했다. 5개 초·중·고교는 2학기에 예정된 일본 수학여행을 취소하거나 장소를 변경했다. 충남 부여교육지원청은 오는 30일부터 나흘간 예정된 일본 후쿠오카를 방문을 보류했다. 공주사대부고 등 공주·부여지역 5개 고교는 일본 수학여행을 다른 지역으로 바꿀 계획이다.
 
엄태석 서원대 교수(행정학과)는 “한일 양국의 정치·경제 갈등으로 민간단체 차원의 교류나 방문까지 단절돼 가는 양상”이라며 “정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통상적인 문화·체육 교류 활동도 비난을 우려해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청주·양양=최종권·박진호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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