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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731부대 희생자 영혼, 아직도 도쿄 신주쿠를 떠돈다

중앙일보 2019.07.25 05:00
1989년 도쿄 신주쿠 도심에서 발견된 100여구의 유골. 발견된 터가 과거 일본군 731부대의 연구거점이 있던 곳이어서 생체실험 희생자들의 유골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시민단체 '군의학교 터에서 발견된 유골문제를 규명하는 모임' 홈페이지]

1989년 도쿄 신주쿠 도심에서 발견된 100여구의 유골. 발견된 터가 과거 일본군 731부대의 연구거점이 있던 곳이어서 생체실험 희생자들의 유골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시민단체 '군의학교 터에서 발견된 유골문제를 규명하는 모임' 홈페이지]

 
도쿄 한복판 신주쿠에서 발견된 100여구의 유골은 과연 731부대의 만행에 희생된 이들의 것일까.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89년 7월 22일. 도쿄 신주쿠에 있던 후생성(일본의 보건복지부) 도야마(戸山) 연구청사 건설현장에서 다수의 유골이 발견됐다.  
건설현장 일대는 태평양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일본 육군 군의(軍醫)학교가 있던 곳이다. 당시 육군 군의학교 지하에는 일본군 731부대와 관련 깊은 방역연구실이 있었다.  
중국 동북부 하얼빈 교외에 있던 731부대는 일본군이 생물·화학병기 개발을 위해 만든 특수 의무부대로, 중국인·조선인·전쟁포로 등을 상대로 각종 생체실험을 자행했다.
총탄관통 실험, 동상 실험, 생체해부 실험, 세균·독가스 실험 등 살아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벌인 끔찍한 만행은 일제 최악의 전쟁범죄 중 하나로 꼽힌다.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일본군 731부대 유적지에는 일본군이 중국인과 조선인을 상대로 잔혹한 생체 실험을 한 모습이 전시돼 있다. [중앙포토]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일본군 731부대 유적지에는 일본군이 중국인과 조선인을 상대로 잔혹한 생체 실험을 한 모습이 전시돼 있다. [중앙포토]

일본군 731부대가 살아있는 사람을 상대로 세균전 실험을 하고 있는 장면 [중앙포토]

일본군 731부대가 살아있는 사람을 상대로 세균전 실험을 하고 있는 장면 [중앙포토]

 
731부대 연구실 터에서 100여구 유골 발견…생체실험 희생자 가능성  
 
육군 군의학교의 방역연구실은 731부대의 연구거점으로 알려져 있다. 유골이 대규모로 발견된 터에 과거 방역연구실이 있었기에, 유골 발견 직후 '731부대 생체실험 희생자의 유골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하지만 당시 후생성은 유골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한 조사를 거부하고, 신주쿠 구(区)에 유골의 매장을 요구했다.  
그러나 신주쿠 구는 이에 따르지 않고, 독자적으로 전문가에 유골 감정을 의뢰했다. 3년 후 나온 감정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아시아인으로 추정되는 유골은 100구 이상으로, 수십년간 매장돼 있었다. 
일본인과 다른 인종이 포함돼 있었고, 대부분 성인남자였다. 흉기에 찔리거나 베인 흔적이 있었고, 총을 맞은 유골도 있었다. 드릴 또는 톱에 의해 가공된 흔적이 있다는 견해도 있었다.
 
1989년 도쿄 신주쿠 도심에서 대량 발견된 유골들. 감정 결과 찔리거나 베이거나 총에 맞은 흔적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시민단체 '군의학교 터에서 발견된 유골문제를 규명하는 모임' 홈페이지]

1989년 도쿄 신주쿠 도심에서 대량 발견된 유골들. 감정 결과 찔리거나 베이거나 총에 맞은 흔적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시민단체 '군의학교 터에서 발견된 유골문제를 규명하는 모임' 홈페이지]

 
"미군에 들키면 큰일 나는 인체 표본 서둘러 묻었다" 구체적 증언 나와   
 

이같은 감정결과에도 불구하고, 신주쿠 구는 "731부대와의 관련성은 알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후생성 또한 2001년 비슷한 취지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유골이 육군 군의학교의 의료용 표본 또는 의료교육용 시신의 것이며, 전사자 시신이 포함됐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이듬해 후생성은 유골을 화장하지 않고, 발굴현장 근처에 세운 납골시설에 안치했다. 
유골 발견 당시, 신주쿠 구의원이었던 가와무라 가즈유키(67)씨가 연구자·대학교수들과 함께 만든 시민단체 '군의학교 터에서 발견된 유골문제를 규명하는 모임'(이하 유골 규명모임)의 끈질긴 노력 덕분이었다. 
이 단체는 "과거 731부대의 생체실험 재료로 희생됐던 이들의 유골이 포함돼있을 가능성이 있다"며 신주쿠 구와 일본 정부를 상대로 계속해서 진상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영원히 미스테리로 남을 뻔했던 유골의 진실은 전쟁 당시 육군 군의학교에 근무했던 간호사의 증언으로 다시 빛을 보게 됐다. 2011년 2월 6일자 도쿄신문에 따르면, 유골 규명모임이 98년 어렵사리 찾아낸 간호사의 증언은 꽤 구체적이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전쟁 당시 육군 군의학교에 인접한 임시 도쿄 제1육군병원 지하실과 영안실에는 큰 유리병에 담긴 전신 표본을 비롯해 많은 인체표본이 있었다. 
  
1989년 도쿄 신주쿠 도심에서 발견된 유골. 두개골 윗부분이 크게 손상된 채 발견됐다. [시민단체 '군의학교 터에서 발견된 유골문제를 규명하는 모임' 홈페이지]

1989년 도쿄 신주쿠 도심에서 발견된 유골. 두개골 윗부분이 크게 손상된 채 발견됐다. [시민단체 '군의학교 터에서 발견된 유골문제를 규명하는 모임' 홈페이지]

 
유골이 발견된 곳(현재 국립감염증연구소)에 대해 간호사는 "육군 군의학교의 위생학 교실, 표본실, 도서관이 있던 건물로, 미군 공습에도 불타지 않고 남아 있었다"며 "유리병에서 인체표본을 꺼내 건물 옆에 묻었던 걸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간호사는 병원 관계자로부터 "점령군인 미군이 와서 인체표본을 발견하면 큰일 나기 때문에, 인체표본을 묻은 장소에 병원 직원용 숙사를 지었다. 감시를 위해 나도 거기에 살았다"는 말을 들었다고도 했다.    
가와무라 씨 등은 이후에도 간호사의 증언을 거듭 청취하며, 증언을 뒷받침할 조사를 벌였다. 
간호사의 증언과 유골 규명모임의 집요한 요구 끝에 2006년 후생성 장관과 간호사의 면담이 이뤄졌고, '간호사 증언은 조사할 필요가 없다'던 후생성은 그의 증언을 토대로 발굴 조사를 하기로 했다. 2011년 숙사 건물이 철거된 두 군데 장소에서 발굴 조사를 했지만, 새로운 유골은 발견되지 않았고 의족, 석고 틀 등 의료관련 물품만 나왔다. 
 
일본 도쿄 신주쿠에 있는 국립감염증연구소. 1989년 이 건물을 짓기 위해 공사를 하던 중 100여구의 유골이 발견됐다. [사진 위키피디아]

일본 도쿄 신주쿠에 있는 국립감염증연구소. 1989년 이 건물을 짓기 위해 공사를 하던 중 100여구의 유골이 발견됐다. [사진 위키피디아]

 
중국인 생체실험 피해자 유족의 DNA 감정 요구에 일본 정부는 묵묵부답  
 
출토된 의료물품이 폐기되지 않고 보존되고 있는 것도 유골 규명모임의 노력 덕분이다. "유골의 신원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도 있다"는 모임 측의 주장을 2014년 일본 재무성이 받아들인 것이다.   
이같은 사실이 널리 알려지며, 전쟁 당시 가족이 일본 731부대에 끌려가 생체실험 대상이 됐다고 주장하는 중국인 유족들이 육군 군의학교 터에서 대량 발견된 유골의 신원을 밝혀달라고 일본 정부에 요구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발견된 유골과 731부대와의 관련성이 밝혀지지 않았다"며 중국인 유족들의 DNA 감정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시민단체 '군의학교 터에서 발견된 유골문제를 규명하는 모임'을 이끌고 있는 가와무라 가즈유키 씨 [모임 홈페이지]

시민단체 '군의학교 터에서 발견된 유골문제를 규명하는 모임'을 이끌고 있는 가와무라 가즈유키 씨 [모임 홈페이지]

 
가와무라 가즈유키 씨가 대표를 맡고 있는 '유골 규명모임'은 지금도 진상 규명을 위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지난 주말에는 유골 발견 30년을 맞아, 전시회와 관련시설터 견학 등의 행사를 진행했다. 가와무라 씨는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유골의 신원을 하루빨리 밝혀내 유족의 품에 돌려주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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