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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의 시선] “꺼리가 안되는 데 고집피운다” 문무일의 탄식

중앙일보 2019.07.25 00:25 종합 28면 지면보기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김성태 딸 특혜채용 의혹수사는) 처음부터 무리한 것이었다. 쉽게 말해 ‘꺼리(기소 감)’가 안된다. 그런데 남부지검이 고집을 피운다.”
 

문,‘김성태 수사는 무리수’ 고백
검찰 ‘하명 수사’ 줄줄이 무혐의
‘하야’ 낙서노인 30만원형도 오버

어제 물러난 문무일 검찰총장이 KT 딸 부정채용 의혹으로 수사를 받아온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의 변호사 강모씨에게 얼마 전 얘기한 내용이란다. 강 변호사가 문 총장에게 “김 의원이 딸을 특혜채용시켰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 기소는 불가하다”고 하자 문 총장이 개인 의견으로 이같이 말했다고 한다. 문 총장은 검찰 내부에서도 두 번씩이나 이런 입장을 표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성태 수사를 해온 남부지검이 기소 입장을 굽히지 않아, 법대 교수 등 외부인사들이 참여하는 ‘수사자문단회의’를 소집하기에 이르렀다.
 
검찰이 자신의 독점적 권한인 기소를 유보하고, 자문단회의를 연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검찰 내부에서 논란이 컸다는 얘기다. 그러나 자문단회의는 십중팔구 수사를 진행해온 검찰 실무진의 손을 들어주는 쪽으로 결론 나게 마련이다. 피의자 변호인은 회의에 들어오지 못하기에 수사 담당 검사의 브리핑만을 바탕으로 논의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남부지검에서 열린 ‘김성태 사건 수사자문단회의’도 기소 여부를 놓고 찬반 격론이 벌어졌지만, 결론은 ‘기소 가능’으로 모아졌다고 한다.
 
‘특혜채용’ 하면 대개 ‘업무방해’나 ‘직권남용’ 죄가 적용된다. 그런데 김성태의 경우는 “성적을 조작해서라도 합격시켜달라”는 요구 정황이 포착되지 않았고, 사기업 취업은 공무원(의원)의 직권이라고 볼 수 없어 두 혐의 모두 적용되지 않는다고 검찰 스스로가 밝혔다. 그래서 검찰이 대안으로 적용한 게 ‘뇌물’죄다. 한데 뇌물죄란 뇌물을 주고받는 측이 ‘사전모의’를 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검찰은 김성태를 기소하면서 그런 물증도, 정황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다는 게 중론이다.
 
이러니 검찰총장마저 “꺼리가 안되는 무리한 수사”라고 지적한 게 아닌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판사 출신인 박범계 의원이 검찰 기소에 의문을 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23일 KBS 토크쇼에서 “(김성태) 공소장을 보니까 반대급부가 이석태 KT 회장의 증인 채택을 안 해 주는 걸로 돼 있는데 저 부분은 법리적으로, 글쎄…나는 약간 갸우뚱했다”고 했다. 친문 강경파로 야당 의원 의혹을 맹공해온 박범계의 말이니 눈에 띌 수밖에 없다.
 
그동안 검찰이 야당에 벌인 수사를 보면 무리수가 많았다. 강원랜드 불법금품 수수 의혹 사건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은 염동열 의원, 강원랜드 채용비리 의혹 1심에서 무죄를 받은 권성동 의원, ‘김학의 사건’에 외압을 행사한 의혹으로 수사받다 무혐의 처분된 곽상도 의원 등 열거하기 벅차다. 이들 사건은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철저 수사’ ‘진실 규명’을 지시한 ‘하명사건’들이다. 검찰이 청와대를 의식해 ‘아니면 말고’식 수사를 했다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뿐인가. 지난달 27일 대구 검찰은 동대구 경찰 지구대 외벽에 ‘문.하야’란 낙서를 한 혐의로 입건된 60대 남성 A씨에 ‘공용물건손상’ 죄목으로 벌금 30만원 형을 약식 기소했다. A씨는 낙서 세 글자를 한 죄로 ‘전과자’가 될 처지에 몰린 것이다. “낙서 내용은 관계없고 경찰서 담을 훼손한 데 따른 처벌이며, 과거에도 판례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국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낙서가 공용물건(담)의 본질적 기능을 훼손한 것인지부터 의문이다. 상식에 비추어 검찰이 기소유예 처리할 거로 봤는데 정식 범죄로 기소하니 놀랍다. ‘대통령 비판하면 벌금 30만원’이란 잘못된 인식이 국민에게 퍼질까 우려된다”고 했다.
 
오늘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 취임을 앞두고 현 정부나 진보 진영에 칼을 겨눴던 검사장들이 줄줄이 사퇴했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등을 지휘하며 신미숙·송인배 전 청와대 비서관과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을 기소한 한찬식 서울동부지검장과 ‘통합진보당 내란 음모 사건’ 수사를 지휘해 이석기 전 의원에게 징역 9년형을 안긴 차경환 수원지검장 등이 옷을 벗었다. 능력만 보면 고검장 승진이 예상됐던 이들이라 뒷말이 많다.
 
현 정부의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신설 방침으로 궁지에 몰린 검찰이다. 이런 상황에서 믿을 건 국민뿐이다. 그러려면 첫째도 둘째도 수사가 공정해야 한다. 지금까지 보인 모습은 정반대다. 윤석열 체제 아래 심기일전해 “죽은 권력만 잡는 검찰”이란 오명에서 벗어나야 한다. 곧 밀어닥칠 ‘사법 개혁’ 쓰나미를 앞두고 검찰에 주어진 마지막 기회다.
 
강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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