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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러 빼고 일본만 비난…그 뒤엔 윤도한 혼선 있었다

중앙일보 2019.07.25 00:14 종합 2면 지면보기
윤상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왼쪽)이 24일 막심 볼코프 주한 러시아 대사대리에게 자리를 안내하고 있다. 볼코프 대사대리는 러시아 군용기의 한국 영공 침범과 관련해 ’국제법 위반 행위이자 주권 침해 행위지만 고의가 아닐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른쪽은 파벨 레샤코프 참사관. [뉴스1]

윤상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왼쪽)이 24일 막심 볼코프 주한 러시아 대사대리에게 자리를 안내하고 있다. 볼코프 대사대리는 러시아 군용기의 한국 영공 침범과 관련해 ’국제법 위반 행위이자 주권 침해 행위지만 고의가 아닐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른쪽은 파벨 레샤코프 참사관. [뉴스1]

청와대와 국방부가 러시아의 독도 영공 침범에 대한 대응에서 서툴렀다는 논란을 자초했다.
 

러시아 영관급 무관 말만 믿고
어제 오전 “러 유감 표명” 브리핑
오후 러 ‘침범 부인’ 전문에 당혹
윤 “러 입장 바뀐 이유 밝히기 곤란”

출발은 24일 청와대의 오전 브리핑이었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나섰다. 윤 수석에 따르면 전날인 23일 오후 3시 국방부로 초치된 주한 러시아대사관의 차석 무관인 니콜라이 마르첸코 공군 대령이 “기기 오작동으로 계획되지 않은 지역에 진입한 것으로 생각한다”며 “한국 측이 가진 영공 침범 시간, 위치 좌표, 캡처 사진 등을 전달해 주면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알렸다. 마르첸코 대령은 또 “최초에 계획된 경로였다면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러시아는 국제법은 물론 한국 국내법도 존중한다. 적절한 사과와 유감 표명이 러시아와 외교부, 국방부, 언론 등을 통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설명은 23일 저녁 러시아 국방부의 주장과 결이 달랐다. 러시아 국방부는 공보실 명의의 언론 보도문을 통해 “임무 수행 과정에서 양국(중국, 러시아) 공군기들은 관련 국제법 규정들을 철저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국방부는 어쨌든 오후 1시45분쯤 최현수 대변인이 읽은 입장자료에서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는) 일본 측의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으며, 독도는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대한민국 영토”라고 강조했다.  
 
윤도한. [연합뉴스]

윤도한.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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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공군 전투기가 독도 영공을 침범한 러시아 군용기에 경고 사격을 하자 일본이 항의한 것에 대해서다. 이 자료에 영공을 침범했던 러시아를 규탄하는 내용은 없었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 “러시아의 정확한 입장을 파악한 다음 우리 입장을 정리하겠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오후 2시쯤 백 브리핑에선 “러시아 국방부가 (한국 영공 침범에 대한) 자체 조사에 착수했다”며 윤 수석의 설명을 뒷받침해 줬다.
 
하지만 입장자료를 낸 지 세 시간이 안 된 4시15분쯤 국방부가 기자들에게 “러시아 국방부가 영공 침범을 부인한 공식 전문을 보냈다”고 알렸다. 국방부는 “어제(23일) 외교 경로를 통해 밝힌 유감 표명과 정확한 조사 및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과 배치되는 주장”이라며 “(러시아와의) 실무협의를 통해 관련 사실을 확인시킬 예정”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가 보냈다는 공식 전문은 오전 청와대의 설명이나 오후 국방부의 입장자료와는 정반대인 셈이다. 결과적으로 국방부는 앞서 입장자료를 내면서 영공 침입을 부인하는 러시아는 문제삼지 않은 채, 우리 군의 대응을 비난한 일본만을 비판하는 태도를 보여준 게 됐다.
 
논란이 일자 윤 수석은 오후 6시15분쯤 다시 브리핑에 나서 “러시아 무관과 러시아 전문이 서로 내용이 달라졌다”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의 입장이 바뀐 데 대해 “짐작하는 이유가 있지만, 외교적 문제가 있어 밝히진 않겠다”며 “오전에는 러시아 무관이 이렇게 밝혀 온 내용을 그대로 전달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날 하루 오전과 오후 오락가락한 발표에 대해 홍규덕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청와대와 국방부가 섣불렀다”며 “러시아의 공식 입장이 나오기도 전에 영관급 장교(차석 무관)의 말을 믿고 속단했다”고 말했다. 김규철 전 주러시아 대사관 무관(예비역 육군 대령)은 “러시아 무관은 본국의 훈령에 그대로 따라 했을 것”이라며 “러시아 무관의 발언은 맥락상 영공 침범을 인정하는 게 아니라 한국과 갈등이 일어난 데 대한 유감으로 읽힌다”고 말했다.
 
이철재·위문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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