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의 박운서 전 통상산업부 장관. 교통사고 이후 치료를 받을 때 찍은 사진이다. 권혁재 기자
박운서 전 차관 24일 필리핀서 별세
대일 통상협상때 '타이거 박' 별명
"남은 인생 남을 위해 살겠다"며
은퇴후 필리핀 원주민 돕기 투신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투병해와
"봉사 안했으면 장관 하려 주책 떨었을 것"
"코드 맞춰 승진할 생각마라" 후배 질타도
당시 공기업인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사장을 거쳐 고(故) 구본무 회장의 요청으로 LG그룹에 몸담았다. 적자에 허덕이던 데이콤 회장을 맡아 흑자 회사로 바꾼 뒤 2003년 말 은퇴했다.

박운서 전 차관이 교통사고 치료를 받고 난 다음, 그의 오른쪽 발의 모습. 권혁재 기자
그 후 10여년을 필리핀 밀림에서 촌로처럼 보냈다. 15ha의 땅을 사서 벼농사를 지었다. 농작물 재배법을 공부해 시행착오 끝에 연간 4000여 가마를 수확할 수 있었다. 이걸로 망얀족 아이들 밥을 먹이고, 교회 14곳을 세웠으며, 농사법을 가르쳤다.
2015년 필리핀 현지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트럭이 전복되면서 언덕을 굴렀다. 구겨진 차제 조수석에서 그를 끌어냈지만 하반신 곳곳이 참혹하게 부서진 상태였다. 현지 병원 의료진은 괴사한 그의 발가락들을 절단했다. 의식불명인 채로 서울로 후송됐다. 다행히 의식은 찾았지만 양쪽 무릎과 정강이엔 철심이 박히고, 요도엔 평생 달고 살아야 할 도뇨관이 달려있었다. 오른발은 엄지발가락뿐이었다. 그나마 엄지발가락이 하나 남은 덕분에 그는 목발을 짚고 설 수 있었다. 애써 몸을 추스른 그는 다시 필리핀 원주민에게로 돌아갔다.

박운서 전 통상산업부 차관. 공직과 기업에서 은퇴하고 2005년 필리핀으로 봉사활동을 떠나기 직전에 본지 인터뷰를 하면서 찍은 사진이다. 고위 공직자와 기업 경영자 시절엔 항상 기사 딸린 승용차가 있었지만 은퇴 이후엔 차가 없다. 아내와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 '버스타기 연습'을 한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권혁재 기자
2005년 본지 인터뷰에서 그는 "미친 듯이 일했으며 내 브랜드를 지키려고 노력했다"고 공무원 시절을 회고했다. 그러면서 후배 공무원들에게 따끔한 한마디를 던졌다. "과거에는 사명감에 불타 윗사람하고 부딪치기도 했는데…. 요즘은 10년 후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생각하는 대신 코드 맞춰가며 높은 자리에 오를 생각만 하는 것 같아." 하필이면 국제 통상규범에 한참 어긋나는 일본의 수출 규제로 나라 안팎이 어지러울 때, 대일 통상협상장을 호랑이처럼 주무르던 '타이거 박'이 떠났다.
유족은 부인 김옥자씨와 아들 찬준·찬훈·찬모씨가 있다. 빈소는 고인의 유해가 국내로 운구되면 27일 낮 12시 이후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19호실에 마련될 예정이다. 발인은 29일 오전 7시다.
서경호 기자 praxis@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