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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손 부족해 전국서 불렀다… '원정 밭일' 베테랑들의 비극

중앙일보 2019.07.24 05:00
23일 경북 봉화군 석포면 마을에 위치한 쪽파밭에서 70~80 노인들이 쪽파 모종을 심고 있다. 박진호 기자

23일 경북 봉화군 석포면 마을에 위치한 쪽파밭에서 70~80 노인들이 쪽파 모종을 심고 있다. 박진호 기자

“이번에 사고가 난 반장님 팀은 쪽파 파종과 비닐 제거가 주특기예요. 입소문이 나서 전국에서 농사 좀 하는 사람은 다 압니다.” 23일 경북 봉화군 석포면 석포1리 마을에 위치한 쪽파밭. 17명의 노인이 밭에 앉아 쪽파 모종을 심고 있었다. 이 밭은 지난 22일 강원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 도로에서 발생한 전복사고로 숨진 강모(61·여)씨 등 ‘원정 밭일’에 나선 일행의 목적지였다.
 

“반장님팀 쪽파 파종·비닐 제거가 주특기였는데…”
사고 근로자들 향하던 경북 봉화 쪽파밭 가보니
할머니들 팀 꾸려 일손 부족한 곳 어디든 달려가
전남 등 먼 곳은 가서 3~4일씩 머물며 일하기도

밭에서 만난 김용철(65)씨는 “사람을 써야 하는 입장에서 이왕이면 일을 많이 해주는 사람을 선호하는데 그 반장님 팀은 빠르고 일도 잘하는 편이라 평이 좋았다”며 “사고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안 좋아 안치된 곳에도 다녀왔다”고 말했다. 지인의 소개로 강씨를 알게 됐다는 김씨는 지난달 경기도 평택시에 있는 밭 비닐 제거 작업을 그 팀에서 맡아서 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봉화와 평택을 비롯해 전남 무안과 전북 고창 등지의 밭을 임대한 뒤 알타리무와 쪽파 등을 재배하는 일을 한다. 봉화군 석포면에 있는 2640㎡(800평) 규모의 쪽파밭은 올해 처음 임대했다. 1년을 쓰는 조건으로 120만원(평당 1500원)을 내고 빌렸다. 이날도 사람이 없이 경기도 등에 있는 팀을 급하게 불렀다. 경기도 평택과 화성에서 13명이 왔고, 전북 고창에서도 4명이 왔다. 이들 역시 모두 70~80대 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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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오전 7시33분 강원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 도로에서 승합차가 전복되는 사고가 나 구조대가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22일 오전 7시33분 강원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 도로에서 승합차가 전복되는 사고가 나 구조대가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인부 모집·운전해오면 일명 ‘봉고비’ 45만원
평택에서 온 양춘화(71·여)씨는 “우리 팀은 13명이 움직이는데 내가 막내”라며 “원래 주특기는 알타리무를 묶는 작업인데 급하다고 해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송인호(82·여)씨는 “전남 해남과 영암까지 가서 일한 적도 있다. 그렇게 멀리까지 가면 3~4일을 묶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들 역시 이날 새벽 강씨 팀처럼 15인승 승합차를 타고 왔다. 승합차 운전기사가 오전 1시 30분부터 경기도 평택과 화성지역 6개 면을 돌며 13명을 태웠다. 이후 3시쯤 팀원이 모두 타자 봉화로 출발했다. 쪽파밭에는 오전 6시에 도착했다. 김씨는 “젊은 사람이나 남자들은 이런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니 할머니들이 팀을 꾸려 봉고차를 타고 전국각지 다닌다”며 “먼 거리의 경우 인부를 모집하고 운전까지 하면 일당 외에도 봉고비로 45~50만원을 더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봉고비는 기름값과 고속도로통행료, 인부 모집비 등으로 농장주가 지급하는 돈이다. 통상 가까운 거리는 15만원, 먼 거리는 50만원가량을 준다고 한다.
 
석포리에서 만난 주민들은 고령화와 인력 수급 문제로 대부분의 주민이 농사를 포기했다고 설명했다. 석포1리 김영분(60·여) 이장은 “쪽파밭이 있는 반야마을의 경우 주민 대부분이 70~80대 노인이라 80% 정도는 농사를 짓지 않고 임대를 준 상황”이라고 말했다. 쪽파밭에서 2㎞가량 떨어진 배추밭에서 만난 한 주민은 “사람이 없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외지에서 일할 사람을 부르는데 오는 사람 대부분이 70~80대 할머니이거나  외국인 근로자다”라고 했다.
23일 경북 봉화군 석포면 산골 마을에 위치한 쪽파밭에서 70~80 노인들이 쪽파 모종을 심고 있다. 박진호 기자

23일 경북 봉화군 석포면 산골 마을에 위치한 쪽파밭에서 70~80 노인들이 쪽파 모종을 심고 있다. 박진호 기자

출하 시기 놓치면 손해 막심 어쩔 수 없이 불법체류자 고용
실제 석포리 마을 곳곳에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고랭지 채소를 수확하는 모습도 보였다. 일꾼들이 수확한 무와 채소를 박스에 포장하면 5t 트럭이 밭 입구에 대기하고 있다 쉴새 없이 운반했다. 이곳에서 만난 성모(53)씨는 태국과 중국에서 온 30대 외국인 근로자 10여 명과 무를 수확하고 있었다.
 
자신을 ‘작업반장’이라고 소개한 성씨는 충남 서산에서 3일 전 일꾼을 모집해서 봉화로 왔다. 이들은 당분간 봉화와 강원 태백을 오가며 밭일을 할 계획이다. 성씨가 농장주의 요청을 받아 일꾼을 모집한 뒤 수확 등 출하를 책임지는 구조다. 일당은 성씨가 배분한다. 그는 15년째 철이 바뀔 때마다 전국을 돌며 이런 식으로 일한다고 했다.
 
성씨는 “봉화에서 일할 사람이 없다 보니 농장주가 서산에 있는 나한테까지 연락을 했다”며 “3월 전남 해남을 시작으로 무안, 5월엔 전북 부안, 충남 홍성·서산에서 일꾼 10여 명과 팀을 이뤄 무·배추 수확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봉화뿐만 아니라 전국 농촌에 일손이 없기는 마찬가지”라며 “내국인 일꾼은 70대 이상 노인이 대부분이라 파종이나 밭매는 작업에 투입하고, 힘이 센 젊은 외국인은 배추나 무 수확을 주로 한다”고 했다.
23일 경북 봉화군 석포면 산골 마을에 있는 무 밭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수확한 무를 박스에 포장해 놓은 모습. 최종권 기자

23일 경북 봉화군 석포면 산골 마을에 있는 무 밭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수확한 무를 박스에 포장해 놓은 모습. 최종권 기자

노동 가능 인구 등 데이터베이스화 절실 
성씨는 밭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 “절반은 합법이고 반은 불법체류자”라고 털어놨다. 그는 “출하 시기를 놓치면 막심한 손해를 입는 농장주의 사정을 고려하면 불법체류자를 쓰지 않을 수 없다”며 “몇해 전 일부 지역에선 출입국사무소 직원이 단속을 나오는 바람에 농사를 망친 농가들이 군청과 관계기관에 진정서를 낸 적도 있다”고 말했다.
 
농가들은 고질적인 농촌 일손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합법적인 외국인 근로자 제도 확대 등 다양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농가가 합법적으로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는 방법은 고용허가제(최장 4년 1개월)와 외국인계절근로자(90일) 제도가 있다. 하지만 이를 통해 올해 농촌에 할당된 인원은 1만여 명이다. 전체 농가 수(약 102만호)와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함창모 충북연구원 박사는 “고질적인 농촌 일손 부족 문제를 당장 해결할 방법은 없는 상황이지만 도시 유휴인력과 농촌의 내국인을 농가에 연결해 주는 일자리 연계 플랫폼 사업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며 “지역에 어떤 작물을 키우고 언제 인력 수요가 증가하는지, 주변에 노동 가능한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등을 데이터베이스화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봉화=박진호·최종권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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