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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의 시시각각] 방송가의 ‘부역자들’

중앙일보 2019.07.24 00:35 종합 30면 지면보기
양성희 논설위원

양성희 논설위원

최근 언론정보학회 주최 세미나에서 조항제 부산대 교수는 한국 공영방송이 극복해야 할 가장 큰 문제로 ‘정치후견주의’를 지목했다. “공영방송이 당대 정부의 도구처럼 여겨지며, (사장 등이) 자신을 고위 공직자에 앉힌 권력자에게 충성으로 보답하려는 관행” 말이다. 물론 조교수는 그 대표사례로 이명박 대통령 시절 KBS·MBC를 꼽았으나,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게 세간의 인식이다.
 

논란의 공영방송 ‘정치후견주의’에
‘직장 괴롭힘’ 1호 사업장 지목까지
세상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나

최근 공영방송의 정치편향 논란은 한둘이 아니다. 뉴스·시사 프로그램이 복잡미묘한 사안들을 선악 프레임으로 단순화해서 편 가르기 한다는 지적이 많다. 공영방송이 진보·보수를 아우르며 타협점을 찾기보다 스스로 이념화해 여론을 과대 대표하기도 한다. 경영도 최악이다. 양사의 영업적자가 1000억 원대로 커졌다. 반 토막 난 시청률, 떨어진 신뢰도, ‘적폐청산’ 후유증 등이 산적해 있다.
 
특히 MBC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난 16일, 고용노동청에 진정서가 접수된 첫 사업장이 됐다. 2016~17년 박근혜 정부 시절 입사했다가 최승호 사장 취임 후 계약이 해지된 비정규직 아나운서 7명이 진정서를 제출했다(이들을 포함 8명의 계약직 아나운서가 MBC와 해고무효 소송 중이다). 지난 5월 법원이 이들의 근로자 지위를 임시로 인정했으나 “기존 아나운서 업무 공간에서 격리되고, 아무런 업무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사내전산망을 차단당했다”고 이들은 호소했다.
 
이후 MBC 직원들이 돌아가며 이들을 저격했다. 우선 메인 뉴스 앵커를 지낸 손정은 아나운서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자신을 포함한 11명의 아나운서가 타 부서로 쫓겨난 후 대타로 입사한 이들이라며 “얘들아~”로 시작하는 글을 올렸다. “어떻게든 MBC에 다시 돌아와야겠다며 몸부림치는 너희의 모습이 더이상 안쓰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고 했다. 과거 사측이 뽑은 (파업)대체 인력에 대한 ‘부역자 단죄론’이다. 전종환 아나운서도 “2016~17년 누군가는 대체인력이 되길 거부하며 입사지원서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시기를 놓쳐 방송사 입사가 좌절될 수도 있고, 어디선가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을 수도 있다”며 거들었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면 이들을 채용한 과거 경영진·간부에게 있는 것인지, 이들의 ‘부역’이 계약직 부당해고를 정당화하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 노동자의 권리, 사회정의를 강조해온 MBC다. 심지어 노동운동계에서조차 “파업 때 비정규직이 업무에 참여한다고 해서 정규직이 그들을 원망하거나 내치지 않는다. 이번 사태는 인권, 노동, 약자의 세 측면에서 모두 낙제”라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 보수정권 시절 공영방송 ‘장악음모’가 공영방송의 위기를 가져오고 그래서 ‘적폐청산’을 통한 ‘정상화’에 올인한 것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과거가 현재의 모든 것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다. 고작 1~2년 차 20대 계약직 아나운서들에 대한 MBC 중견 직원들의 잇단 ‘저격’을 보면서 『386 세대유감』이라는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30대 젊은 필자들이 한때 정의로웠으나 이제는 막강권력이 된 386세대를 ‘저격’한 책이다. 이렇게 썼다. “과거의 헌신으로 오늘의 영광을 보상받으려는 것은 정당한가.”
 
앞서 세미나에서 조교수는 “지금 공영방송은 고사 지경”이라며 “해결책으로 수신료 인상을 비롯해 공영방송의 안정적인 위상 찾기 같은 큰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사회적 합의에 이르는 길은 결코 녹록지 않아 보인다. 미디어 환경 급변 속에서 프랑스·독일·덴마크 등 서구의 공영방송들도 강도 높은 개혁을 요구받고 있으며, 아예 수신료 폐지 논의가 나오는 나라까지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참 법원은 그제 2012년 MBC 파업 당시 계약직으로 채용된 보도국 프리랜서 앵커를 계약 종료한 것에 대해 ‘부당해고’라고 판결했다.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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