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물 흐르다 보면 도랑 생겨” 한·중수교의 산파…리펑 전 총리 별세

중앙일보 2019.07.24 00:04 종합 14면 지면보기
1994년 3월 29일 방중한 김영삼 대통령이 리펑 총리와 만찬에서 건배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1994년 3월 29일 방중한 김영삼 대통령이 리펑 총리와 만찬에서 건배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1989년 6·4 천안문(天安門) 사태 때 무력 진압을 주장했던 리펑(李鵬) 전 중국 국무원 총리가 지난 22일 밤 91세로 사망했다. 리펑은 장쩌민(江澤民·93) 전 국가주석과 함께 중국의 제3세대 지도부를 구성했던 인물이다.
 

16년간 중국 2인자 … 향년 91세
천안문 사태 때 무력진압 주장

87년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된 리펑은 이후 98년까지 총리를 지냈고, 이후 2003년 3월까지 우리의 국회의장에 해당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을 지냈다. 권력 2위로 군림한 기간은 16년이었다. 리펑은 28년 10월 중공 저장(浙江)성 군사위원회 서기인 리숴쉰(李碩勛)과 비밀당원 자오쥔타오(趙君陶) 사이에 태어났다. 그러나 리숴쉰이 31년 하이난다오(海南島)에서 체포돼 사망한 이후 10세 때 저우언라이(周恩來)의 양자로 입양됐다. 저우는 대장정 후유증으로 아이를 갖지 못하는 부인 덩잉차오(鄧潁超)와 함께 여러 혁명 열사의 자제를 양자로 입양했는데 그중 하나가 리펑이었다.
 
재임 중 국무원 싼샤(三峽) 공정건설위원회 주임을 맡아 양쯔(揚子)강 홍수를 막는 싼샤댐 건설을 주도했다. 한국과의 수교에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는데, 91년 5월 북한을 방문해 중국이 앞으로 “두 개의 코리아 정책을 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남북한 모두 유엔 가입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자신만의 단독 유엔 가입을 바라자 더는 고집을 부리지 말라는 압박이었다. 결국 그해 9월 남북한은 유엔에 동시 가입했다. 92년 4월 리펑 총리는 중국을 찾은 이상옥 외무장관을 만나 “물이 흐르다 보면 도랑이 생기게 마련(水到渠成)”이라고 말해 한·중 수교가 곧 이뤄질 것을 시사하기도 했다.
 
리펑의 생애에서 가장 어두운 부분은 89년 천안문 사태다. 그해 4월 15일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 사망을 계기로 민주화 시위가 일어나자 그는 양상쿤(楊尙昆) 주석 등과 강경 진압을 주장했고, 최고 권력자 덩샤오핑(鄧小平)의 승인 아래 6월 3일 밤 천안문 광장의 시위대를 무력 진압했다.  
 
천안문 사태는 ‘인민의 아들’ 중국 인민해방군이 인민에게 총부리를 겨눴다는 점에서 중국 역사의 큰 오점이 되고 있다. 리펑은 부인 주린(朱琳)과의 사이에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뒀다. 아들 리샤오펑(李小鵬, 60)은 현재 중국 국무원 교통운수부 부장(장관)으로 있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