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 천안문 사태 무력진압 주인공 리펑 전 총리 사망

중앙일보 2019.07.23 19:57
1989년 6·4 천안문(天安門) 사태 때 무력 진압을 주장했던 리펑(李鵬) 전 중국 국무원 총리가 지난 22일 밤 사망했다. 향년 91세. 리펑은 장쩌민(江澤民, 93) 전 국가주석과 함께 중국의 제3세대 지도부를 구성했던 인물이다.
1989년 6.4 천안문 사태 때 무력 진압을 주장했던 리펑 전 중국 총리가 사망했다. 향년 91세. [중국 바이두 캡처]

1989년 6.4 천안문 사태 때 무력 진압을 주장했던 리펑 전 중국 총리가 사망했다. 향년 91세. [중국 바이두 캡처]

87년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돼 최고 지도부에 입성한 리펑은 98년까지 총리를 역임했고 이후 2003년 3월까지는 우리의 국회의장에 해당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을 지내는 등 16년 동안 중국의 권력 2위로 군림했다.  

저우언라이 양자로 입양돼 고속 승진
양쯔강 홍수 막는 싼샤댐 건설 주도
“물이 흐르다 보면 도랑이 생긴다”
92년 한·중 수교에도 산파 역할해
89년 6.4 천안문 사태 당시엔
무력 진압 이끌어 큰 오점 남겨

리펑은 28년 10월 중공 저장(浙江)성 군사위원회 서기인 리숴쉰(李碩勛)과 비밀당원 자오쥔타오(趙君陶) 사이에 태어났다. 그러나 리숴쉰이 31년 하이난다오(海南島)에서 체포돼 사망한 이후 10세 때 저우언라이(周恩來)의 양자로 입양됐다.
저우는 대장정의 후유증으로 아이를 갖지 못하는 부인 덩잉차오(鄧潁超)와 함께 여러 혁명 열사의 자제를 양자로 입양했는데 그중 하나가 리펑이었다. 그러나 리펑은 2014년 펴낸 『리펑 회고록』에서 자신이 저우의 양자가 아니란 주장을 펴기도 했다.
리펑은 “저우 총리, 덩 엄마와 내 관계는 노동지(老同志)와 열사 후손의 관계로 사람들이 말하는 양자 관계는 아니다. 저우 총리와 덩 엄마는 나 말고도 여러 혁명 열사의 자제를 돌봤다”고 말했다.  
중국 산시성 양자링 토굴 생활을 할 때의 리펑이 저우언라이의 부인 덩잉차오와 함께 서 있는 사진. 유상철 기자

중국 산시성 양자링 토굴 생활을 할 때의 리펑이 저우언라이의 부인 덩잉차오와 함께 서 있는 사진. 유상철 기자

이와 관련해 세간에선 리펑이 저우언라이의 후광으로 고속 승진했다는 말을 의식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리펑은 저우의 특별한 배려 속에 55년 구소련으로 유학을 가 수력발전을 전공했으며 귀국 후 전력발전 부문에서 일하며 급성장했다.
재임 중 국무원 싼샤(三峽) 공정건설위원회 주임을 맡아 양쯔(揚子)강 홍수를 막는 싼샤댐 건설을 주도했다. 리펑은 한국과의 수교에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91년 5월엔 북한을 방문해 중국이 앞으로 “두 개의 코리아 정책을 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남북한 모두 유엔 가입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자신만의 단독 유엔 가입을 바라자 더는 그런 고집을 부리지 말고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안을 받아들이라는 압박이었다. 중국은 이미 한국과의 수교를 생각하고 있었다.
결국 그해 9월 남북한은 유엔에 동시 가입했다. 92년 4월 리펑 총리는 중국을 방문한 이상옥 외무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물이 흐르다 보면 도랑이 생기게 마련(水到渠成)”이라고 말해 한중 수교가 곧 이뤄질 것을 시사하기도 했다.
또 총리로 재임 중이던 94년 10월 중국 권력 3인방 가운데에선 가장 먼저 한국을 찾았다. 권력 3위 차오스(喬石) 전국인대 상무위원장이 95년 4월, 1위 장쩌민 국가주석은 95년 11월에 한국을 방문했다.
리펑의 생애에서 가장 어두운 부분은 89년 천안문 사태와 관련한 대목이다. 89년 4월 15일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 사망을 계기로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과 시민의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자 그는 양상쿤(楊尙昆) 국가주석 등과 함께 강경 진압을 주장했다.  
결국 최고 권력자 덩샤오핑(鄧小平)의 승인 아래 6월 3일 밤 중국 인민해방군을 동원해 천안문 광장에 모인 시위대를 무력 진압했고 그 과정에서 아직도 정확한 숫자를 알 수 없는 많은 사람이 죽었다. 올해는 천안문 사태 3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했다.
리펑 전 총리의 아들 리샤오펑은 현재 중국 교통운수부 부장(장관)으로 있다. [중국 바이두 캡처]

리펑 전 총리의 아들 리샤오펑은 현재 중국 교통운수부 부장(장관)으로 있다. [중국 바이두 캡처]

이제 천안문 유혈 진압의 가장 중요한 당사자가 사망한 만큼 중국 당국이 천안문 사태를 어떻게 재평가할지가 큰 관심사다. 천안문 사태는 한때 중국에서 ‘정치적 풍파(風波)’로 불리기도 했으나 시진핑(習近平) 집권 이후엔 다시 ‘폭란(暴亂)’으로 규정되고 있다.
천안문 사태는 ‘인민의 아들’로 불리는 중국 인민해방군이 인민에게 총부리를 겨눴다는 점에서 중국 역사의 큰 오점이 되고 있다. 리펑은 부인 주린(朱琳)과의 사이에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뒀다. 아들 리샤오펑(李小鵬, 60)은 현재 중국 국무원 교통운수부 부장(장관)으로 있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