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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킬라통에 숙성해도 스카치위스키로 인정! 그 이유는

중앙일보 2019.07.23 13:00
[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26)
스코틀랜드 발블레어(Balblair) 증류소의 위스키 숙성고. [사진 김창수]

스코틀랜드 발블레어(Balblair) 증류소의 위스키 숙성고. [사진 김창수]

 
스코틀랜드 ‘스카치위스키 협회(SWA)’는 ‘스카치위스키’라는 위스키 업계의 독보적인 브랜드를 지켜나가기 위해, 엄격한 위스키에 대한 정의를 가지고 있다. 특히 위스키를 숙성하는 ‘참나무통(이하 오크통)’에 대해선, ‘700ℓ 이하의 오크통을 사용할 것’이라고 정해, 이를 어긴 위스키는 ‘스카치위스키’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었다.
 
하지만 지난 6월, 스카치위스키 협회는 ‘피니시’를 포함한 숙성에 사용하는 통의 종류를 세칙으로 덧붙였다.
 
스카치위스키 숙성에 사용하는 통의 기준
① 새 오크통과 와인(스틸 혹은 주정강화), 맥주, 에일, 증류주의 숙성에만 사용된 오크통 내의 무엇인가, 혹은 몇 가지를 사용해 숙성하는 것.
다만 이하의 통은 제외한다.
- 핵과류(매실, 복숭아 등 큰 종류의 과실)를 원료로 한 와인, 맥주, 에일, 증류주의 숙성에 사용된 것.
- 발효 후에 과일, 당류, 향료를 더한 맥주 또는 에일의 숙성에 사용되었던 것
- 증류 후에 과일, 당류, 향료를 더한 증류주의 숙성에 사용되었던 것
 
② 와인, 맥주, 에일, 증류주의 숙성은 각각의 전통적인 제조법의 일부로 이뤄져야 한다.
③ 어떤 통을 사용하더라도 완성된 제품은 스카치위스키의 전통적인 색, 맛, 향의 개성을 갖춰야만 한다.
 
이로써 전통적으로 오크통에서 숙성하던 쉐리와인이나 버번위스키 오크통 숙성 위스키뿐만 아니라, 테킬라, 칼바도스(사과 증류주), 소주, 바이주 등 다양한 증류주의 숙성에 사용된 통이 위스키 숙성에 쓰일 수 있게 됐다. 작년, 위스키 업체 디아지오가 테킬라 통을 사용한 스카치위스키 발매를 추진했다가 승인되지 못했는데, 이번에 뒤집힌 것이다.
 
위스키 숙성고의 테킬라 나무통 안에서 위스키가 숙성되고 있다. [사진 김대영]

위스키 숙성고의 테킬라 나무통 안에서 위스키가 숙성되고 있다. [사진 김대영]

 
그렇다면, 왜 전통을 중시하던 스카치위스키 협회가 이런 결정을 내린 걸까?
 
우선, 오크통 가격이 매우 비싸졌기 때문이다. 특히 쉐리 와인을 숙성했던 오크통은 쉐리 와인 산지인 스페인의 쉐리 와인 생산감소로 매우 귀한 존재가 됐다. 몸값이 비싼 쉐리 오크통을 감당할 수 없자, 위스키 메이커들은 스페인에 ‘빈 쉐리와인 오크통’을 생산하기 위한 쉐리 와인 숙성고를 지었다.
 
미국에서 만들어지는 버번오크통과 유럽 각지의 와인오크통도 세계적인 위스키 수요 증가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 스카치 위스키가 ‘오크통’에서 미련을 버린다면, 더 싼 나무통으로 값싼 위스키를 만들 수 있다.
 
위스키 숙성고의 값비싼 올로로소 쉐리오크통(좌)과 피노 쉐리오크통(우). [사진 김대영]

위스키 숙성고의 값비싼 올로로소 쉐리오크통(좌)과 피노 쉐리오크통(우). [사진 김대영]

 
다양한 ‘피니싱(finishing)’ 실험이 위스키 소비자들에게 환영받은 것도 변화의 큰 계기다. 피니싱은 하나의 통에서 숙성되던 위스키를 다른 통에 옮겨 담아 추가 숙성시키는 것이다. 럼, 와인, 꼬냑 등 다양한 통에서 추가숙성을 시킴으로써, 기존 위스키 맛에 새로운 맛을 한 겹 더 쌓을 수 있었다. 기존 위스키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위스키를 경험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다른 술의 팬들까지 위스키에 관심을 갖게 하였다.
 
스코틀랜드 밖의 증류소들이 피니싱에 쓰던 나무통을 처음부터 숙성에 사용하면서 그 진가가 드러났다. 오직 소주, 에일, 테킬라 나무통에서 위스키를 숙성해, 전통적인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위스키와 견줄만한 위스키를 생산해낸 것이다. 세계 위스키 시장에서 스카치위스키의 점유율은 점점 떨어졌고, 반대로 새로운 맛을 만드는 일본, 미국 등의 위스키는 성장했다. 아무리 보수적인 스카치위스키 협회라도, 이를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바베이도스 산 럼을 숙성했던 나무통에서 숙성중인 위스키. [사진 김대영]

바베이도스 산 럼을 숙성했던 나무통에서 숙성중인 위스키. [사진 김대영]

 
한 편에선 우려도 적지 않다. 맛은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싼 통에만 위스키를 숙성해 전체적으로 위스키 맛이 저하될 것이란 의견이 있다. 테킬라나 바이주 등은 고유의 개성이 너무 강해, 위스키 맛을 망칠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비싼 쉐리오크통 수요가 줄어, 옛날에 맛봤던 양질의 쉐리 위스키가 사라질 것을 걱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스카치위스키가 소비자의 입맛을 무시하지 않으리란 거다. 저품질의 위스키를 양산했다간, 스카치위스키를 맹렬히 쫓고 있는 미국, 아일랜드, 일본 위스키가 스카치위스키의 자리를 대체하고 말 것이다. 오히려 스카치위스키 업계의 ‘숙성에 대한 R&D 투자’가 가져올 새로운 위스키 맛을 기대해보자. 전통적인 쉐리 오크통에서 오래 숙성된 위스키보다 훨씬 맛있는 소주 맛 위스키가 태어날지도 모르니까.
 
김대영 중앙일보 일본비즈팀 과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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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영 김대영 중앙일보 일본비즈팀 과장 필진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 위스키 덕후이자 싱글몰트 위스키 블로거다. 위스키를 공부하기 위해 일본에서 살기도 했다. 위스키와 위스키 라벨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를 소재로 위스키에 대한 지식과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삶의 지혜 등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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