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권근영의 숨은그림찾기] 물의 도시 베네치아의 물 없는 해변

중앙일보 2019.07.23 00:46 종합 27면 지면보기
권근영 JTBC 스포츠문화부 차장대우

권근영 JTBC 스포츠문화부 차장대우

아이들은 모래성을 쌓으며 까르르 웃고, 수건을 깔고 누운 노부부는 서로의 등에 썬크림을 발라줍니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 두 달 전부터 생긴 ‘물 없는 해변’입니다. 이 ‘해변’의 피서객들은 해파리와 비닐봉지, 화산 폭발, 기후와 지구 환경의 변화에 대한 노래를 이어갑니다. “내가 죽거든 새도 동물도 산호초도 없는 텅 빈 지구에 남겠지” “올해 바다는 숲처럼 녹색이 됐어” 같은 가사입니다.
 
인공 해변은 베네치아의 미로 같은 골목길을 돌고 돌아 찾은 옛 무기창고 건물에 있습니다. 방문객은 위층 데크에서 ‘바캉스족’들의 노래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관객이 들이대는 카메라에도 아랑곳없이 수영복 차림 가수들은 천연덕스럽게 피서객을 연기합니다. 세계 미술계의 반짝 성지가 된 창고, 제58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리투아니아관입니다. 2년에 한 번 미술의 최첨단을 전시하는 이곳에서 30대 중반 작곡가·극작가 등이 만든 오페라 ‘태양과 바다’ 공연이 일주일에 단 두 번, 한 번에 8시간씩 열립니다. 기후 변화의 괴기스러움을 쾌활하게 노래한 이 작품으로 리투아니아는 최고의 국가관에 주는 황금사자상을 받았습니다.
 
올해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태양과 바다’. 권근영 기자

올해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태양과 바다’. 권근영 기자

최근 남프랑스의 수은주는 46도까지 올랐고, 이탈리아에는 사과만 한 우박이 쏟아졌고, 미국 뉴올리언스에서는 폭우로 이재민이 속출했습니다. 이러니 지구 온난화를 다룬 이 전시는 영화 ‘기생충’ 속 표현처럼 “참으로 시의적절”합니다. ‘지금’이 아니면 볼 수가 없는 퍼포먼스인 덕분에, 공연 종료 직전인 토요일 오후 6시 무렵, 전시장 앞에는 줄을 선 관객들이 들여보내 달라 간청합니다. 훈계하기보다는 유머가 넘치는 표현법 덕분에 방명록에는 “이런 체험이라니, 예술이 생생해요” 같은 감상이 넘칩니다. 수상작이 반드시 최고의 작품이랄 수는 없지만 지금 이 시점에 눈여겨봐 둘 만한 작품임은 분명합니다.  <베네치아에서>
 
권근영 JTBC 스포츠문화부 차장대우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