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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한·일 갈등 해결, 양국 정상의 신뢰 회복이 관건

중앙일보 2019.07.22 00:54 종합 29면 지면보기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한·일 관계가 쉽게 치유되기 어려운 중병에 걸렸다. 종래에도 한·일 관계는 역사 문제에 기인하는 만성질환을 앓고 있었지만, 양국 정부는 그런대로 관리 요법을 구사해 병세 악화를 막아왔다. 그런데 지금 양국 정부는 그런 금도(襟度)를 넘어서 오히려 합병증까지 유발해 버렸다. 일본 정부는 한국 산업에 꼭 필요한 물품의 수출을 규제하고 한국 정부는 일본의 보복에 반격을 벼르고 있다. 양국 국민도 앞다투어 상대국 상품 불매운동을 벌이며 분노와 증오의 날을 갈고 있다.
 

갈등 증폭은 정상 간 불신 때문
최고 지도자들의 책임 인식해야

어쩌다 한·일 관계가 이 지경에 빠졌는가. 두말할 나위 없이 ‘위안부 문제 합의’와 ‘징용공 문제 판결’의 처리를 둘러싼 양국 정부의 충돌에서 비롯되었다. 일본 정부는 합의에 따라 설치한 화해·치유재단 해산 등이 국가 간 약속 파기이고, 판결에 따라 진행하는 일본 기업의 재산 압류 등이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한국 정부는 피해자의 요구를 충분히 수용하지 못한 합의는 국민 정서상 더 실행할 수 없고, 대법원이 민사소송에서 내린 판결은 삼권분립의 원칙상 존중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종래 양국 정부는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외교 교섭을 통해 해결 방안을 마련하였다. 그런데 이번 경우에는 그런 노력이 별로 없었다. 자기주장을 원론적으로 되풀이하거나 상대방 비난에 열을 올렸다. 양국이 공중전을 벌이는 동안 서로 신뢰는 무너지고 원망은 쌓여갔다. 그 결과 경제에서조차 상호 의존 관계에 타격을 가하는 초유의 합병증이 발생하였다.
 
한·일의 상호 불신은 곧 정상 간 소통 부재와 존중 결핍을 의미한다. 두 정상은 양국이 심각한 현안을 안고 있음에도 아랑곳않고 지난 6월 말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서 의견을 나누기는커녕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언설을 되풀이했다. 수뇌의 의중을 짐작하고 따르는 데 익숙한 관료·정치가·언론 등은 한술 더 떠서 원색적인 언어로 상대방을 비난하는데 골몰했다. 그러니 외교 교섭을 할 때마다 오히려 불신이 더욱 깊어지는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
 
어떻게 하면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을까. 양국 정부, 특히 정상끼리의 신뢰 회복이 유일한 해법이다. 경제 분야의 합병증을 치유하기 위해 여러 가지 대책을 강구해도 그것은 증상을 완화하는 정도의 대증요법에 불과하다. 중병의 원인은 ‘위안부 문제 합의’와 ‘징용공 문제 판결’의 처리를 둘러싸고 증폭된 양국 정부, 특히 정상끼리의 상호 불신에 있기 때문이다.
 
늦기는 했지만, 양국은 원점으로 돌아가 정부 특히 정상끼리의 신뢰를 회복하는 작업을 추진해야 한다. 중병의 뿌리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병인요법(病因療法)을 써야 한다. 지금의 험악한 분위기에서는 양국 정상이 마주 앉기조차 어렵겠지만, 국익을 책임지고 있는 최고 지도자로서는 못할 바도 아니다.
 
양국 정상이 대화의 물꼬를 트는 데는 한일청구권협정의 준수를 확인하는 게 마중물이 될 수 있다.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를 불신하는 진짜 이유는 지난 50여년 양국이 지켜온 청구권협정을 한국이 은근슬쩍 무시하는 게 아닌가 의심하는 데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언설은 물론 대법원의 판결도 청구권협정을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게 당국자나 전문가의 견해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가 청구권협정을 준수하겠다는 뜻을 다시금 표명해 일본의 불신을 누그러뜨리고 외교 교섭을 통해 현안을 해결하는 게 좋을 것이다. 양국이 서로 타협과 양보를 통해 신뢰를 쌓으면 경제 방면의 합병증은 곧 나을 것이고, 나아가 청구권협정의 틀 속에서 병근(病根)까지 치유할 수 있는 요법(療法)을 찾게 될 것이다. 양국은 이미 그런 지혜를 발휘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양국 정상의 신속한 결단과 행동을 촉구한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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