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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진보는 경쟁하지 않는다, 내칠 뿐이다

중앙일보 2019.07.22 00:39 종합 31면 지면보기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인문사회학부장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인문사회학부장

조희연 교육감이 폭탄선언을 했다. 특목고, 자사고 일괄 폐지안을 공론에 부치자고 말이다. 찔끔찔끔 없애다 남은 불씨가 활화산처럼 타오를까 위기감이 스쳤다. 남은 자사고에 학생이 몰리는 광경도 심란하고, 차기 정권에서 역공당할 수도 있다. ‘고교서열화’와 전쟁에 나선 조교육감에게 부유층 엘리트학교는 ‘공공의 적’ ‘스카이캐슬’ 같은 국민적 악몽이다. 대신 계층. 지역 차별없이 꿈을 키우는 푸른 초원이 그가 소망하는 공정한 교육현장이다.
 

자사고·특목고 ‘납재 캐슬’ 변질
공교육붕괴, 국가적난제 공동책임
자사고·혁신학교 공존 경쟁이 최선
공교육 개혁에 명문대 결단이 필수

삼척동자도 다 알지만, 대학입시를 없애면 꿈은 이뤄진다. 강남·강북, 도농(都農) 간 격차를 줄이면 된다. 시골에서 소 키우다 명문대 합격증을 받는 낙원을 상상해볼 수 있겠다. 조교육감 자신도 ‘개천에서 용 난’ 인물이니, 모조리 실개천을 만들어 ‘꿈 경쟁’을 해봄직하다. 인재를 선점한 자사고는 금·은수저 용소(龍沼), 특목고 역시 위화감을 조장하고 인성교육을 망치는 악의 꽃, 폐지다.
 
필자가 인터뷰한 일반고 선생은 자사고 폐지를 열렬히 환영했다. “방학 후 우등생이 이탈한 교실은 허탈하다”고. 자사고는 인근 우등생들을 수시로 빨아들였고, 실험, 탐구, 동아리, 참여 등 비교과활동을 마련해 학종 스펙을 멋지게 꾸며줬다. 그럴 능력과 자원이 부족한 채 입시경쟁에 들러리 서는 일반고 현실이 서글프다고 했다. 자사고와 특목고는 스카이(SKY)대학에 인재를 대는 ‘납재(納才) 캐슬’, 선망대상이지만 1등급 성적과 고액 등록금 장벽이 가로막는다. ‘기회 평등’ 원리에 어긋나 분명 적폐다.
 
개혁이 필요하다. 그런데 ‘악의 꽃’을 발본색원해 평준화 원점으로 되돌리는 것이 근본 해결책인가. 조교육감의 굳은 신념에는 20년간 겪어온 공교육 붕괴의 전철을 다시 밟을 위험은 없을까. 전국 80%를 차지한 진보계열 교육감은 공교육 증기기관차를 녹슬고 노쇠한 선로(線路)로 다시 옮기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대안이 시원찮아서다. 진보진영이 개창한 혁신학교의 실체는 여전히 모호하고, 학생·교사 참여형 교과과정과 교육방식은 서툴고 유동적이다. 명분은 멋진데 그곳에 자녀를 맡겼다간 영원히 녹슨 길로 접어들까 좌불안석이다.
 
인구가 많은 자유주의 국가에서 평준화는 반드시 명문고를 출현시켰다. 일본이 그랬고, 미국이 그렇다. 『일본고등학교』를 쓴 인류학자 롤렌(T. Rohlen)은 평준화 후 오사카 지역에 등장한 사립명문고 주변 집값이 폭등했음을 경멸조로 분석했는데, 그것은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사회학자 콜만(J.Coleman)은 1980년대 초 ‘교육보고서’에서 교육성취도가 현저히 낮은 공립학교에 왜 국가예산을 집중하는지 되물었다. 평등성은 구제하겠지만, 노력 형평성과 성취 효율성을 해친다는 논리였다. 콜만은 ‘낭비’라고 단정했다. 한국에서 이런 의견을 냈다간 패가망신하기 십상이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줄곧 수위를 차지했던 한국의 가파른 추락은 진보계열 교육감만의 책임은 아니다. 일반고 교육현장이 날로 부실해진 탓이다. 그런데 이 공유된 책임을 자사고와 특목고 탓으로 돌려 일괄 폐지한다고 21세기 백년대계가 설까. 혁신학교는 물론 진보계 교육의 대안이 흐릿해서 하는 말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엔 PISA가 강조하는 학업성취도 중심교육이 오히려 패착일 수 있다. 인성, 자질, 꿈의 배양이 더 중요함을 모르는 바 아니거늘, 땡빚을 내더라도 일반고를 탈출하고 싶은 수요자 심정을 누가 탓할 수 있을까.
 
우파 정권이 10년을 키운 자사고,특목고, 특성화고는 전국 고교 2천358개 중 802개(34%)로 확대됐다 (자사·특목고는 312개). 이제 ‘공교육의 적’으로 몰려 쫓겨나는 그 빈터에 혁신학교가 들어서고 있다. 수많은 고등학생이 생경한 지역으로 강제 이주해야 한다. 교육청은 자격요건을 심사해 예산을 살포했다. 137개 고등학교가 재정지원을 좇아 혁신학교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비용은 물론, 형평성과 수월성 쟁점은 ‘입시교육 주범’ 프레임에 함몰됐다. 명백히 불공정 게임이다. 우파 모델은 그냥 두고 좌파 대안을 경쟁시켜야 공정하다. 좌파는 경쟁을 기피한다, 그냥 내칠 뿐이다? 사비 463억 원을 들여 가꾼 전주 상산고는 반론기회도 없이 ‘의대특화반’ 오명을 둘러썼다. 억울할 것이다.
 
입시교육을 탈피하려면 우선 대학과 대적해야 한다. 대학의 ‘입시 갑질’에 공교육은 꼼짝을 못하는데 “성적에 구애 안 받고 꿈을 실현하는 교육”이라. 진보 대안의 이 멋진 꿈이 실현되려면 ‘꿈과 앎을 정밀 측정하는’ 명문대학이 탄생하면 된다. 스펙도 못마땅해 즉석 문제풀이를 시키는 명문대는 이런 폭탄선언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모조리 내치기 전에, 조교육감이 할 일이 있다. 스카이대 총장들과 담판해서 ‘꿈의 순도’(純度)를 측정하는 획기적 입시안을 만들라. 이건 만리장정 감이다. 그러니, 자사고, 혁신학교 간 공존 경쟁이 최적이다. 선택지를 뺏으면 탈출행렬이 장사진을 이룬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인문사회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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