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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갈라진 나라에서 태어난 매킬로이의 멍에

중앙일보 2019.07.21 15:31
컷탈락이 확정된 후 로리 매킬로이. [로이터=연합뉴스]

컷탈락이 확정된 후 로리 매킬로이. [로이터=연합뉴스]

“너는 누구 편이냐”
 
스타가 된 후 로리 매킬로이는 이런 질문을 받으며 살았다. 2011년 매킬로이가 US오픈에서 우승했을 때다. 우승 확정 후 기뻐하며 걸어가는 그의 어깨에 누군가 아일랜드 국기를 걸쳐줬다. 매킬로이의 의견은 묻지 않았다.  
 
잠시 후 TV 카메라에 매킬로이가 나왔는데 아일랜드 국기는 사라졌다. 소셜미디어가 시끄러웠다. 북아일랜드의 개신교도들은 “아일랜드기를 치워 버린 우리의 영웅”이라고 환호했고, 아일랜드인들과 북아일랜드의 가톨릭교도들은 매킬로이에 격분했다.  
 
북아일랜드는 친 영국 개신교도와 친 아일랜드 가톨릭교도가 반목하고 있다. 1998년 평화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테러가 빈발했다. 매킬로이의 작은 할아버지인 조 매킬로이는 1972년 집에 침입한 괴한들의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북아일랜드 경찰은 가톨릭계인 매킬로이의 할아버지 가족이 개신교 지역으로 이사 온 것에 프로테스탄트들이 분개해 테러한 것으로 추측만 하고 있다. 평화협정 후 테러는 거의 사라졌지만, 아직도 반목은 남아 있다.  
 
매킬로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았다. “너는 누구 편이냐”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살았다.  
 
그러나 올림픽에 골프가 들어가면서 복잡해졌다. 아일랜드 선수로 나갈 것인지 영국 선수로 나갈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매킬로이는 인디펜던트와의 인터뷰에서 “올림픽이 나를 어려운 상황에 몰아넣고 있다. 그래서 올림픽이 싫다”고 했다. 
 
매킬로이는 2016년 리우 올림픽에 아일랜드 대표로 나가기로 했다가, 결국 지카 바이러스의 위험을 이유로 참가하지 않았는데 국적에 대한 복잡한 생각이 작용했을 것이다.  
 
18일(현지시간) 북아일랜드 로열포트러시 골프장에서 시작된 디 오픈 챔피언십은 북아일랜드에서 열린 역대 가장 큰 스포츠 이벤트다. 대회는 매킬로이가 “북아일랜드에서 디 오픈 챔피언십을 열어야 한다”고 주창해 68년 만에 열리게 됐다. 매킬로이는 16세에 로열 포트러시에서 61타를 친 경험이 있다. 최고의 우승 후보였다. 
디 오픈에서 매킬로이를 응원하는 팬들. [AP]

디 오픈에서 매킬로이를 응원하는 팬들. [AP]

 디 오픈이 이 나라의 복잡한 반목의 역사를 해소할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당연히 매킬로이가 화제의 중심이 됐다. 
 
대회를 하루 앞둔 날 매킬로이는 “경기에 집중하고 싶다”면서도 “스포츠는 나라에 매우 중요한,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엄청난 힘이 있다. 우리나라에 그게 필요한 것을 모두 안다. 스포츠는 사람들이 과거를 잊고 미래를 향해 갈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매킬로이는 또 “(분쟁이 일어난 북아일랜드인으로서)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내일 1번 홀에서는 다른 느낌이 들 것”이라고 했다.
 
부담이 많았던 것 같다. 그는 평소와 달리 1라운드 1번 홀에서 OB를 내고 쿼드러플 보기를 했다. 마지막 홀에도 트리플 보기를 하면서 매킬로이의 스코어라고는 믿기 힘든 8오버파를 쳤다.  
 
매킬로이는 2라운드에서 불가능할 것 같은 컷통과를 위해 사력을 다했다. 놀라운 집중력 속에서 경기했고 거의 목표를 이룰 뻔했다. 그러나 딱 한 타가 모자랐다. 매킬로이는 경기 후 우승한 것도 아닌데 눈물을 보였다. 그의 2라운드 투혼은 아름다웠다. 그러나 굳이 벼랑 끝에서 싸워야 했나 싶다. 그를 이런 곳에 몰아넣은 주위 환경이 아쉽다.    
 
매킬로이는 “나는 누구 편”이라고 선언하지 않았다. 반목을 증폭시키지 않았다. 과거가 아니라 미래로 가려 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꾸 그의 어깨에 깃발을 걸쳐 놓고 팔을 잡아 당겨 우리 편이 되라 했다. 마음의 짐을 지웠다. 갈라진 나라에서 태어난 매킬로이의 멍에가 아닌가 싶다.  
 
포트러시에서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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