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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보다는 입놀림’ 필승의 당구 병법 견제계

중앙일보 2019.07.20 13:00
[더,오래] 이인근의 당구 오디세이(10)
스포츠에는 상대 선수를 막고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견제'가 비일비재하다. 축구, 야구, 수영 등의 종목뿐만 아니라 당구에도 있다. 이중 프로 당구 경기가 아닌, 친구 간 경기에서의 견제는 일명 '겐세이'라 불린다. 겐세이는 프로의 것과는 다르게 우습고 치졸한 면이 있다. 사진은 경기에서 집중 견제를 당하는 축구선수 이동국. [연합뉴스]

스포츠에는 상대 선수를 막고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견제'가 비일비재하다. 축구, 야구, 수영 등의 종목뿐만 아니라 당구에도 있다. 이중 프로 당구 경기가 아닌, 친구 간 경기에서의 견제는 일명 '겐세이'라 불린다. 겐세이는 프로의 것과는 다르게 우습고 치졸한 면이 있다. 사진은 경기에서 집중 견제를 당하는 축구선수 이동국. [연합뉴스]

 
당구를 치다 보면 승리욕이 발동하면서 게임에 승리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태의 견제가 나타난다. 여기서 말하는 견제는 선수의 게임에서 보는 ‘세이프티(Safety, 공격이 실패했을 때 상대방에게 공이 가지 않도록 안전하게 플레이하는 방법)’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친구들과 사이에서 벌어지는, 약간은 치졸한 형태의 ‘겐세이(당구 게임에서 자주 사용되는 은어로 ‘견제’ ‘훼방 놓다’라는 뜻의 일본어)’를 말한다.
 
언어적 견제의 3가지 방법
당구는 다른 종목과 비교할 때 육체적 활동보다는 정신적·심리적 활동을 극대화한 종목이다. 상대방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을 가장 효율적인 견제 방법으로 사용한다. 견제 형태 중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면서 효과적인 방법은 아무래도 언어적 견제(입놀림, 구찌 겐세이)일 것이다. 언어적 견제 방법은 대략 적극형, 소극형, 비아냥형으로 나뉜다.
 
신중하게 자세를 잡고 샷을 하려는 상대방의 머리통 뒤에서 느닷없이 치고 들어간다. 상대방의 심기를 건드려 미스 샷을 유도하려는 것이 주된 목적인데, 자극적일수록 효과적이랄 수 있다. 예를 들어 쉽지 않은 배치의 공을 해결하고 감각이 고조된 상대방에게 “에이, 설마 그 실력에 장마다 꼴뚜기려구” 라는 적극적 견제를 한다면, 상대방은 반드시 쳐내려는 의지를 굳힌다. 이로 인해 오히려 몸이 경직돼 헛방을 날리게 된다.
 
상대방의 심기를 흐트러뜨리려면 아무래도 “폼은 정말 별론데 맞는 게 참 신통해”라는 비아냥식 견제가 보다 효과적일 것이다. 주의해야 할 것은 상대방의 견제 수용 한계를 숙지하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적절한 수위 조절을 하는 정교함을 갖춰야 한다. 수용 폭이 깊은 친구에게 너무 밋밋한 견제는 별 효과가 없을 터이다. 수용 폭이 낮은 친구에게 지나친 자극을 주면 화난 친구를 달래기 위해 당구비보다 비싼 술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막가파식 우기기형이 있다. 대부분의 모임에는 이런 유형이 하나쯤 있게 마련이다. 삼구 게임을 하다 보면 이따금 쿠션에 먼저 맞았는지 목적구에 먼저 맞았는지 모호한 경우가 생긴다. 우기기형은 자신이 이런 상황에 부닥치면 당연히 쓰리 쿠션이고, 상대방의 경우에는 투 쿠션이라고 우긴다. 그래서 우정과 정의 사이에서 고뇌하게 만들 때가 있다.
 
지난 4월 열린 PBA(프로당구협회) 투어 트라이아웃에서 박근형 선수가 공을 치는 모습. 당구는 다른 운동보다도 정신 집중과 마음 관리가 중요하다. 친구와의 경기에서 상대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여러 가지 겐세이를 사용해보자. [PBA 제공=연합뉴스]

지난 4월 열린 PBA(프로당구협회) 투어 트라이아웃에서 박근형 선수가 공을 치는 모습. 당구는 다른 운동보다도 정신 집중과 마음 관리가 중요하다. 친구와의 경기에서 상대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여러 가지 겐세이를 사용해보자. [PBA 제공=연합뉴스]

 
이런 친구와 일합일리할 때는 미리 대응 방식을 정하고 들어가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강 대 강으로 부딪쳐 당신의 강골함을 보여주고 한동안 그 친구와의 서먹함을 감수할 것인지, 아니면 승리를 헌납한 보상으로 술 한잔 얻어먹는 경제적 실리를 꾀할 것인지 미리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친구들과 게임에서 이따금 나타나는 견제 형태에는 구시렁형과 자학형이 있다. 구시렁형은 당구를 치는 내내 마치 ‘비 맞은 중’처럼 혼자 중얼거리는데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한다. 대개 자신의 실수를 탓하는 것 같지만 어떤 때는 어려운 당구 배치를 만들어 놓았다고 투덜거린다. 또 가끔은 상대방에게 소극적 언어 견제를 하기도 한다. 성정이 예민한 친구에게는 이렇게 슬그머니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방법이 오히려 효과적일 수 있다.
 
자학형은 상대방에게 직접적인 견제를 하는 대신 자신이 잘못한 플레이를 스스로 꾸짖어 역으로 상대방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전략이다. 즉 자신이 미스 샷을 하거나 득점을 못 하였을 때 세상을 잃은 듯 허탈한 모습을 한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괜히 미안함을 갖게 하거나, 혹은 불같이 성을 내며 상대방을 주눅 들게 하는 방법이다. 가끔 자신에게 신체적 내지 정신적 결함이 있다는 의미의 욕을 뱉기도 한다.
 
주의할 점은 멘탈이 강하거나 정서적 유대감이 부족한 상대라면 잘 통하지 않는다. 멘탈이 강한 상대는 이러한 반응에 더더욱 자신감을 갖고, 정서적 유대감이 약한 상대에겐 아무런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
 
나는 상대방의 큐 볼이 목적구를 향해 올 때 아슬아슬하게 빠질 것 같으면 확신에 찬 큰 소리로 “나이스 샷”을 외친다. 혹시나 하는 상대방은 나의 환성에 ‘아 맞았나 보다’ 하다가 살짝 비켜나가는 것을 보고 나선 실의와 원망에 찬 눈으로 나를 흘겨본다. 이 경우 “어, 왜 빠지지? 당구대가 문제가 있네” 하고 농을 친다.
 
자학형 견제는 상대방을 직접적으로 약 올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꾸짖어 상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이 밖에도 친구의 플레이를 두고 비아냥 거리는 비아냥식 견제, 자존심을 건드려 긴장으로 몸을 굳히는 적극적 견제도 있다. [사진 pixabay]

자학형 견제는 상대방을 직접적으로 약 올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꾸짖어 상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이 밖에도 친구의 플레이를 두고 비아냥 거리는 비아냥식 견제, 자존심을 건드려 긴장으로 몸을 굳히는 적극적 견제도 있다. [사진 pixabay]

 
반대로 내가 친 공이 아슬아슬하게 맞을 것 같을 때 “에이 빠졌네!”라고 하면 상대방은 ‘어, 정말 빠지나?’ 하는 일말의 기대로 눈을 반짝이다가 이내 실망으로 바뀐다. 그러면 “야, 이 테이블 마음에 드네!”라며 상대방을 골려 주는 방식이다.
 
이따금 신체적 견제도 한다. 신중하게 큐 자세를 잡은 친구의 엉덩이를 가볍게 쓰다듬거나 예비 동작을 하는 친구의 큐 바로 뒤에 내 큐를 바짝 세워 놓고 스트로크 할 때 상대방의 큐가 걸리도록 하는 것이다.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 당구를 즐기면서 웃고자 할 때 효과적인 방법이다.
 
한번은 친구가 허리를 비틀고 두 다리도 다 들고 있는 불편한 큐 자세를 취했다. 두 발을 다 들어 올리는 것은 안 된다며 친구의 한쪽 발을 잡고 있다가 이 친구가 샷을 하는 순간 놓아 버렸더니 친구가 벌러덩 테이블 위로 넘어졌다. 다행히 다친 데가 없어 모두 웃고 말았지만 나이든 친구에겐 위험한 장난이라 이 방법은 더는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는 친구와의 당구 게임에서 우리는 한번 이기면 그렇게 좋아하고 한번 지면 그렇게 우울해 한다. 이렇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잘난 것 없어 더욱 친근한 친구들과의 일합은 항상 즐겁다.
 
깨알 당구 팁
너무 심하게 견제해서 게임비보다 친구를 달랠 술값이 더 나가지 않도록 조심하고, 내가 이길 것 같은 게임에서는 음료를 주문하라. [사진 pixabay]

너무 심하게 견제해서 게임비보다 친구를 달랠 술값이 더 나가지 않도록 조심하고, 내가 이길 것 같은 게임에서는 음료를 주문하라. [사진 pixabay]

 
백전백승의 당구 병법 8계
1. 가급적 요행수로 공을 쳐(플루크, 또는 후루꾸) 상대의 기를 죽인다.
2. 수시로 언어적 견제를 해 상대방 정신을 흩트린다.
3. 요행수는 필히 장타로 연결한다.
4. 장타를 치고 난 후 완벽한 디펜스를 한다.
5. 이긴다고 생각하는 게임은 차나 음료수를 주문한다.
6. 큰 게임에 승리한 후 게임비를 계산할 때 동전은 보조해 준다.
7. 어려운 공은 긴 인터발로 상대방 심기를 흩트린다.
8. 상대방의 실수는 박장대소로 응답한다.
 
이인근 전 부림구매(주)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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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근 이인근 전 부림구매(주) 대표 필진

[이인근의 당구 오디세이] 하루 당구장 내방객 120만명, 애호가 1200만명, 전국 골목 곳곳에 당구장 2만2000개, 세계 유일의 당구 전문 TV 채널…아마 한국은 당구를 세계에서 가장 사랑하는 나라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 열풍의 주역은 바로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세대다. 대학 시절부터 당구를 쳐온 애호가의 알량한 구력과 지식에 잡생각을 섞어 당구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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