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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신 왜 베네수엘라냐"···박지원과 정동영 19년 갈등

중앙일보 2019.07.20 05:00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왼쪽)가 지난 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입장하며 박지원 의원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왼쪽)가 지난 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입장하며 박지원 의원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6일 아침 민주평화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동영(DY) 대표는 “한 원로 정치인”을 지목하며 “뒤에서 들쑤시고 분열을 선동한다”고 말했다. ‘원로 정치인’은 박지원 의원을 지칭한 것이다. DY가 당 대표 취임 이후 박 의원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비판한 것은 처음이었다.
 
불과 몇 시간 전인 이날 자정쯤, 평화당 의원 총회가 끝나자마자 비당권파 10명은 성명을 발표했다. “새로운 대안을 모색한다”는 내용이었다. DY를 보이콧하고 탈당 준비에 들어간 것이다. 그 중심에 박지원 의원이 있었다.
 
DY와 박 의원은 이제 공식적으로 등을 돌렸다. 1996년 이후 대체로 같은 당에서 정치해온 둘인데, 왜 반목하게 된 것일까.
 
민주당 권노갑 최고위원(왼쪽)과 정동영 최고위원이 2000년 12월 7일 오전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뒤 어색한 표정으로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민주당 권노갑 최고위원(왼쪽)과 정동영 최고위원이 2000년 12월 7일 오전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뒤 어색한 표정으로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①정풍 운동
DY와 박 의원을 곁에서 오래 봐온 천정배 평화당 의원에게 둘의 관계를 물었더니, 그는 “오래전부터 사이가 나빴다”고 했다. 둘 사이 감정의 골을 이해하려면 김대중 정부 때인 2000년으로 돌아가야 한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DJ)의 최측근은 권노갑 최고위원이었다. 그와 관한 루머도 시중엔 무성했다.
 
 그 무렵, 2000년 12월 2일 청와대에서 만찬이 열렸다. ‘40대 기수론’을 외치며 최고위원이 된 DY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는 DJ 앞에서 “권 최고위원을 항간에선 '제2의 김현철'에 비유한다. 2선으로 물러나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권 최고위원도 같은 테이블에 있었다. 그런데 정치 입문 5년 차인 소장파 정치인이 동교동계 좌장에게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이다. 이른바 ‘정풍 운동’이었다. 보름 뒤 권 최고위원은 물러난다. 정 의원은 이후 천정배ㆍ신기남 당시 의원과 함께 ‘천신정’으로 불리며 쇄신파란 타이틀을 얻었다.  
 
당시 청와대 공보수석을 지내고 문화부 장관을 맡고 있던 박 의원은 이 상황을 쭉 지켜봤다. 이후 박 의원은 2002년 4월 다시 청와대로 컴백했다. 대통령 비서실장으로였다. 이번에는 대통령 비서실장 박 의원이 쇄신파의 타깃이 되어 갈등을 겪었다. 
 
지난해 6월 8일 국민의당 의원총회에서 박지원 의원과 정동영 의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해 6월 8일 국민의당 의원총회에서 박지원 의원과 정동영 의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②2018 전당대회
DY와 박 의원은 감정의 앙금은 있었지만, 줄곧 민주당 계열 정당에 몸담았다가 탈당해 국민의당과 평화당 창당을 함께 하는 등 정치 행로는 같았다. 그러다 지난해 평화당 전당대회를 계기로 사이가 다시 멀어졌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박 의원은 DY, 천 의원과 함께 모인 자리에서 “우리 중진들은 뒤로 물러나고 당 대표에 출마하지 말자”고 했다. 하지만 DY는 당 대표 선거에 나가 결국 당선됐다. 또다시 관계가 틀어졌다. 평화당 한 관계자는 “박 의원은 DY를 아랫사람처럼 봤는데, 악연이 자꾸 쌓이니 둘 사이가 좋았겠냐"고 했다.
 
DY의 한 측근은 “박 의원이 유성엽ㆍ최경환 의원 같은 자기 사람을 대표로 만들어 당 운영을 좌지우지하려고 DY에 선거에 못 나가게 한 것이니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했다. 반면 박 의원 측 관계자는 “박 의원은 당을 혁신하고 신선한 이미지를 주려면 새로운 인물을 내세워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런데 DY가 당 대표가 되는 바람에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DY 측 관계자는 “DY가 당 대표가 된 뒤 박 의원이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고 했다. 최근 DY는 측근들에게 “박 의원이 나를 당 대표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섭섭함을 토로했다고도 한다. 이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있다. 지난 4월 김경수 경남지사 보석 결정 이후 ‘박 의원의 입’이라 평가받던 김정현 평화당 전 대변인은 “차질없이 지사직을 수행해주기 바란다”는 긍정적인 논조의 논평을 냈다. 당시 DY는 ‘더불어민주당 2중대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좀 더 지켜보자’는 입장이었으나 당 대표와 조율하지 않았다. 평화당 관계자는 “DY가 상당히 불쾌해했다”고 말했다.김 전 대변인은 "빨리 논평을 내야 할 상황이어서 김 지사 1심 판결 때와 같은 입장으로 논평으로 낸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신임 당대표가 지난해 8월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제1차 정기 전국당원대표자대회에서 당대표 선출이 확정되자 손을 들고 인사하고 있다. [뉴스1]

정동영 민주평화당 신임 당대표가 지난해 8월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제1차 정기 전국당원대표자대회에서 당대표 선출이 확정되자 손을 들고 인사하고 있다. [뉴스1]

③노선 갈등
DY는 지난해 8월 6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열었다. 당 대표 취임 후 첫 행보였다. 이후 일주일 동안 쌍용차 해직자 분향소와 전교조 위원장의 단식 농성장 등을 방문했다. 대표 취임하자마자 평화당 노선을 ‘진보 정당’으로 바꿔갔다.
 
박 의원은 8월 12일 페이스북에 DY를 향해 “1인 독주면 국가도 당도 회사도 성공하지 못한다”며 “정 대표께서 지나치게 좌클릭을 한다면 우리는 중도개혁을 DJ 때부터 표방하기에 토론의 필요성이 있다”고 썼다. 이후 줄곧 박 의원은 DY에 ‘좌클릭’ 딱지를 붙였다. 노선갈등의 대표적 사례가 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가 지난해 8월 6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마련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고 김주중씨 분향소를 찾아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스1]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가 지난해 8월 6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마련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고 김주중씨 분향소를 찾아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스1]

지난해 8~9월 인터넷전문은행을 두고 국회가 시끄러울 때였다. 의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DY가 “인터넷전문은행에 반대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하자, 박 의원은 “미국 행 비행기를 타야지 왜 베네수엘라 행 비행기를 타려고 하느냐”고 비판했다고 한다.
 
하지만 DY 측 한 관계자는 “박 의원이 질투가 많다. 둘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은데 DY를 견제하려고 딴지를 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박 의원 측 관계자는 “DY가 너무 당을 자기 마음대로 운영하니 견제를 한 것”이라고 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와 천정배 민주평화연구원장이 지난 5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선거제도개혁 패스트트랙 이후 전망과 과제 토론회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뉴스1]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와 천정배 민주평화연구원장이 지난 5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선거제도개혁 패스트트랙 이후 전망과 과제 토론회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뉴스1]

④외전: 천정배는 왜?
지난 16일 밤 '반 DY'를 선언한 민평당 의원 10인 중 의외의 인물이 있었다. DY와 1996년 'DJ 키즈'로 함께 정계 입문한 천정배 의원이었다. 천 의원은 ‘천신정’의 한명이었고, DY와 20년 이상 정치 행보를 같이해온 친구 사이다. 
 
천 의원에게 이유를 물어봤다. 천 의원은 “나는 이제는 당이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하는 시점이라고 봤는데, DY는 자신을 중심으로 수습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당의 미래에 대한 생각이 다를 뿐 DY와는 (인간적으로는) 여전히 가깝다 ”고 했다.
 
이 때문에 천 의원은 DY에 무조건 반기를 들진 않는다. 최근 비당권파 모임에서 박주현 최고위원 임명을 이유로 DY가 당 대표직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일부 의원들이 주장하자, 천 의원은 “최고위원 임명은 당 대표의 권한인데 왜 그것을 비판하느냐. 명분이 부족하다”고 DY를 옹호한 적도 있다고 한다.
 
비록 반 DY 의원들과 온도 차가 있다고는 해도, 둘은 지금 '당권파'(DY)와 '비당권파'(천정배)로 갈라져 마이웨이를 가고 있다. 신기남 전 의원은 지난 총선 낙선 이후 정치활동을 접은 채로 더불어민주당 당적만 유지하고 있다. 이제 '천신정'은 없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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