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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커리큘럼·학기 파괴…‘남들이 가지 않은 길’ 간다

중앙선데이 2019.07.20 00:49 645호 2면 지면보기
[양영유의 총장 열전] 민상기 건국대 총장 
민상기 건국대 총장이 ’학생들이 창의성을 발산하며 겁 없이 도전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게 대학의 역할“이라며 신공학관의 아이디어 창작 공간인 ‘스마트 팩토리’를 소개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민상기 건국대 총장이 ’학생들이 창의성을 발산하며 겁 없이 도전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게 대학의 역할“이라며 신공학관의 아이디어 창작 공간인 ‘스마트 팩토리’를 소개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민상기(64) 건국대 총장은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의 시(詩)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을 좋아한다.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숲속의 두 갈래 길 중 사람들이 다니지 않을 길을 선택했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시구를 떠올린다고 한다. “변화하려면 새로운 길을 가야 한다는 메시지에 꽂혔죠. 학부생 때 독일 유학을 간 것도, 총장이 되고서 커리큘럼 파괴에 나선 것도 그런 맥락이죠.”
 

‘무엇’ 아닌 ‘왜’ ‘어떻게’ 도출해야
진짜 공부되고 창의적 괴짜 나와

공대, 직무 중심 대규모 학부 재편
사회계열도 대단위 단과대로 통합

성적 제한 없애 전과 자유롭게
전문가 영입 내년 AI대학원 세울 것

대학원장과 교학부총장 등을 거쳐 2016년 9월 총장이 된 그는 취임사에서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로 가겠다. 혁신적인 교육방법을 찾아 학생들의 취업과 창업에 새로운 길을 열겠다”고 선언했다. 대학 재정난이 가중되고, 학생 수가 감소하고, 4차 산업혁명의 파고가 몰아닥치는 상황에서 평탄한 길 대신 울퉁불퉁한 길을 선택한 것이다.
 
민 총장은 진짜 공부를 시키고, 창의적 괴짜가 나오게 하려면 ‘무엇(What)’이 아니라 ‘왜(Why)’를 통해 ‘어떻게(How)’를 도출해 내는 혁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새 길은 커리큘럼 파괴와 전공 칸막이 철폐, 산학협력, 교수 수업공개였다. 그가 고등교육의 ‘파괴적 혁신가(disruptive innovator)’로 불리는 까닭이다. 12일 건국대에서 만난 민 총장은 “대학들이 똑같은 길을 가면 미래가 없다”고 강조했다.
  
독일 유학 때 1대 1 구두시험 전율 못 잊어
 
고등교육의 길이 울퉁불퉁한데 더 공격적으로 운전하는 것 같네요.
“건국대는 2005년 이후 적극적인 투자로 외형을 확장했습니다. 생명과학관·상허연구관·신공학관 등 신·증축 건물만 22개에 이릅니다. 인프라가 튼실해졌으니 속을 꽉 채워야지요. 내실 다지기는 제 숙명입니다. 학사개편을 통해 철옹성 같은 학과 칸막이부터 없앴습니다. 쪼개진 학문 단위를 합쳐 융합과 통섭의 길로 가자는 취지입니다.”
 
왜 학부 교육 파괴가 중요한가요.
“현재 수십 개의 학과로 세분된 학제는 과거 2차 산업혁명 시기의 산물입니다. 분업·대량생산 시대에 빠른 기술개발을 뒷받침하기 위한 성장전략으로 고안된 게 학문 칸막이 전략이었죠.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엔 융·복합이 경쟁력입니다. 전공별 지식 총량이 아닌 전공 간 통합을 통한 지식 창출이 승리하는 시대입니다.”
 
독일 유학 생활 13년은 민 총장의 교육관에 큰 영향을 미쳤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토론식 수업이었다. 끊임없이 ‘왜’란 질문을 던지고 시험은 교수와 1대 1로 구두로 치르는 것도 생소했다. “독일 상징인 창조성이 여기서 나오는 거구나. 필기시험 내용은 돌아서면 까먹는데 구두시험은 10년이 지나도 기억이 생생하네.” 민 총장은 그때의 전율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가 정형화된 커리큘럼 틀을 깨고 ‘Why’와 ‘How’ 교육에 나선 배경이다.
 
공과대를 대단위로 통합했습니다.
“공대는 14개 학과를 5개 대규모 학부로 재편해 산업계가 필요로 하는 직무 중심으로 커리큘럼을 바꿨어요. 화학공학과·유기나노시스템공학과·융합신소재공학과를 합친 화학공학부의 경우 입학정원 161명, 재학생 900명, 전임교원 24명으로 대형화했죠. 학생들은 세부 전공을 넘나들고, 강의실에서 벗어나 현장실습과 창작 활동을 합니다. 교수들의 융·복합 연구, 연구 수주도 활발하고요.”
 
사회계열도 변화가 많네요.
“2017년 정치대·상경대·글로벌융합대 등 3개 단과대의 7개 학과를 사회과학대로 통합했어요, 사회과학 분야의 융합 시너지 창출을 위해서죠. 정치외교·경제·행정·국제무역·응용통계·융합인재·글로벌비즈니스 전공이 있는데 학과 간 교육과정 협업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폭넓은 수업선택권 보장을 위해 다양한 학과목 수강 제도를 가동 중입니다.”
 
건국대는 학기제를 파격적으로 바꾸고 있다. 4학년 8학기제의 틀을 깨야 산업계·학생·기업의 요구를 따라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학생들이 자기 주도적으로 학기와 커리큘럼을 설계할 수 있도록 도입한 유연 학기제가 그것이다. 1년 2학기에 현장실습 1학기를 더한 ‘2+1학기제’, ‘채용연계형 3+1학년제’, ‘4+1 석사예약입학제’, ‘7+1 자기설계학기제’가 대표적이다. 7+1 학기제는 8학기 중 한 학기는 학생 스스로 드림(Dream)을 설계하는 학기제다. 창업·현장실습·해외 인턴 등 제한이 없다.
 
도전 정신이 단단해질 것 같네요.
“처음엔 겁을 먹었던 학생들도 거침없이 도전합니다. 현장을 모르는 이론은 죽은 지식이잖아요. 그래서 현장실습 기업 수를 2016년 155곳에서 올해는 699곳으로 늘렸어요. 참여 학생 수도 1014명으로 세 배나 급증했습니다. 2016년 4명이던 학생 창업자는 25명, 창업동아리는 13팀에서 66팀으로 불어났죠. 122개 창업과목을 6300여 명이 이수할 정도로 인기가 좋아요.”
  
개방형 학습공간 K-큐브선 열정적 토론
 
민 총장은 학생들이 진짜 공부를 하는 현장을 직접 보여주겠다며 상허기념도서관의 개방형 학습공간 ‘K-큐브(K’reative Cube)’와 신공학관의 ‘KU스마트팩토리(Smart Factory)’로 안내했다. 상허(常虛)는 건국대 설립자인 유석창(1900~1972) 박사의 호로, 기념도서관은 1989년에 신축 개관했다. 도서관 6층의 K-큐브에 들어서니 방학인데도 학생들로 북적였고, 큐브실에선 열정적인 토론 소리가 들렸다. 조용한 도서관이 아닌 시끄러운 도서관이었다. 신공학관의 ‘KU스마트팩토리’는 아이디어 창작 공간이었다. 가상현실(VR)실·금속장비실·3D프린터실·설계실이 인상적이었다. 정의훈(경영학 4)씨는 “아이디어와 열정만 있으면 누구나 문을 두드리는 도전의 무대”라고 했다. 민 총장과 현장 인터뷰가 이어졌다.
 
현장을 보니 변화가 실감 납니다.
“융합형 사고를 가진 괴짜가 일을 내는 시대입니다. 칸막이를 더 없애야지요. 올 1학기부터 재학생 전공 선택 폭을 넓혀주는 전과(轉科) 성적 제한 규정과 수료학점 기준을 전격 폐지한 배경입니다. 신입생들에게도 ‘건대생이 됐으니 원하는 전공을 마음대로 선택하라’고 말했죠. 입학정원 20% 내 전과 제한을 뒀지만, 100% 허용하는 과도 있어요. 고3들 사이에선 ‘건국대=전과 캡’이라는 말이 유행하죠.”
 
중요한 건 교수들이 변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젊은 교수들은 환영하지만, 고참들은 피곤해하는 것 같아요. 미세가 아닌 파괴적 조정이니 당연하죠. 후배 교수들이 나서자 선배들도 호응하고 있어요.”
 
전체 교수의 강의를 녹화해 공개하려는 계획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아직 10% 선에 불과해요. 수요가 많은 강의부터 할 겁니다. 학생들이 등록금을 냈으니 학점과 상관없이 원하는 강의는 온라인으로 들을 수 있어야지요. 이게 교육 혁신의 마지막 단계입니다.”
 
건국대가 개혁 속도를 내고 있어도 브랜드 파워는 여전한 고민이다. 특히 글로벌 분야가 그렇다. “글로벌 명문이 되려면 세계 100위권에는 들어야지요. 인공지능(AI) 거대 트랜드를 강의와 연구에 접목할 생각입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도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AI라고 했잖아요.”
 
어떤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내년에 AI 전문대학원을 만들 겁니다. 준비위원회도 가동했어요. 전문가 영입이 가장 중요해요. 정부도 적극 지원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대학 총장들은 등록금·입시 등 정부 정책을 불편해합니다.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과 중국을 보세요. 고등교육이 급성장하고 있잖아요. 시스템과 목표가 잘 안 바뀌고 장기적인 덕분이죠. 반면 우리는 장관이 바뀌고 정권이 바뀌면 정책도 바뀝니다. 대학을 정치의 눈으로 봐서 그래요. 고등교육위원회를 설치해 지속가능한 정책을 책임졌으면 좋겠어요. 사립대 규제와 종합감사는 시대 흐름에 안 맞아요.”
 
‘과정은 천천히, 결단은 빠르게’ 뚝심의 리더십
식품공학자인 민상기 총장은 오토바이와 스키·수상스키를 좋아한다. 그래서일까. 머뭇거림이 없고 스피디(speedy)하다. 자기 성취와 목표가 뚜렷하고 실용을 중시한다. 청년 시절에도, 교수와 총장이 되고서도 그랬다. 건국대 축산대를 2학년까지 다니다 “새 도전을 하겠다”며 독일 슈투트가르트 호헨하임대로 유학을 떠났다. 1981년부터 94년까지 학·석·박사 공부를 마쳤다. 당시 꿈은 유럽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되는 것이었다. 회장 면접까지 봤는데 계속 떨어지자 미련 없이 진로를 바꿔 95년 건국대 교수가 됐다.
 
교수 시절엔 까칠했다. 강의실에서는 토론을, 실험실에서는 정확성·준비성을 강조했다. 강의 과목 중 하나는 1대1 구술시험을 치러 오래 버티는 학생에게 A 학점을 줬을 정도다. 총장이 되고서는 ‘과정은 천천히, 결단은 빠르게’를 원칙으로 포용과 뚝심의 리더십을 보여준다는 평. 좌우명은 ‘고통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No pain, No gain)’이다.  
 
유치원의 ‘왜’ 교육이 인재 양성의 출발점이라며 유치원을 운영하는 게 버킷리스트 1호다. 1955년 경기도 양평에서 6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양영유 교육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yangyy@joongang.co.kr
  
※총장 열전은 크로스미디어로 진행합니다. 17일 발간된 월간중앙 8월호에서 더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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