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국의 극동정책, 일본의 헌법 개정에 호의적”

중앙선데이 2019.07.20 00:20 645호 20면 지면보기
희망 헌법

희망 헌법

희망과 헌법
사카이 나오키 지음

사카이 교수 저서 『희망과 헌법』
전후 일본 헌법 비판적 고찰
미국 반공·민주화 교두보 필요
결과적으로 일본 민족주의 키워

최정옥 옮김
그린비
 
강제징용 배상과 일본의 경제 보복을 둘러싸고 한·일 갈등이 치킨게임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양국 정부는 상대의 외교적 해결책을 서로 거부한 채 정면충돌도 불사하겠다는 듯이 마주 달리는 열차의 속도를 늦추지 않고 있다.
 
한국에선 은근히 미국의 중재를 기대하는 눈치도 있지만 이는 미·일 관계를 잘 모르는 데서 나오는 오판이란 지적이 나온다. 지난 주말엔 한·일 실무자 협상에서 한국 대표단에 대한 홀대가 문제가 됐는데 일본의 이 같은 태도는 미국과의 사전 교감이나 최소한 묵인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일본국 헌법의 발화주체와 응답’이라는 부제가 붙은 『희망과 헌법』은 전후 일본 헌법의 특징을 독특한 시각으로 고찰함으로써 지금의 미·일 관계 이면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참고서라 할 수 있다. 물론 양국 관계를  ‘신식민지 체제’로 여기는 저자 사카이 나오키 코넬대학 교수의 주장에 모두가 동의하기는 어려울 수 있겠지만 한편으론 일리가 있는 지적이라 받아들일 만한 대목도 분명히 보인다.
 
현재의 일본 헌법은 1946년 11월 3일에 반포되고 이듬해 5월 3일 시행됐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연합국에 의한 일본 점령이 종료되기 5년 전에 발효됐다. 헌법에는 국민주권의 범위를 일본 국민과 일본 국가의 영토에 한정한다고 표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점령으로 주권을 상실한 상태인 일본이 사실상 배제된 채 연합국, 특히 미국의 의중이 대거 반영됐다.
 
천황제 유지, 교전권 금지를 명시한 일본 헌법은 미국의 묵인 아래 만들어졌다. 일본의 아베 총리는 21일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할 경우 개헌에 유리한 위치에 오르게 된다. 지난 3일 아베 총리가 참의원 선거 슬로건인 ‘정치의 안정’을 강조하는 장면. [중앙포토]

천황제 유지, 교전권 금지를 명시한 일본 헌법은 미국의 묵인 아래 만들어졌다. 일본의 아베 총리는 21일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할 경우 개헌에 유리한 위치에 오르게 된다. 지난 3일 아베 총리가 참의원 선거 슬로건인 ‘정치의 안정’을 강조하는 장면. [중앙포토]

당시 중국을 공산주의자에게 도둑맞았고 유럽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에서도 냉전체제가 만들어지자 미국으로서는 아시아의 유일한 근대화된 공업사회인 일본을 반공과 민주화의 교두보로 자유주의 진영에 묶어 두는 일이 극동정책의 핵심으로 대두됐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상의 새로운 식민지체제’가 필요했다고 저자는 봤다.
 
현행 일본 헌법 특징 중 하나는 천황제 유지다. 연합국의 일본 점령에 가장 필요한 조치는 바로 일본이라는 국체 수호와 국민통합 구심점 확보였다. 이를 위해서는 히로히토(쇼와) 천황에게 전쟁 책임을 귀속시켜서는 안 된다는 요구가 강했고 이는 실제로 받아들여졌다. 전후 일본의 보수주의자들은 민족주의에 호소하면서 동시에 미국의 지배로 인한 혜택을 입게 된다. 여기에서 바로 ‘태평양 횡단적인 제국적 국민주의의 공범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독립 후 일반적으로 일본은 미국의 식민지로 간주되지 않았지만 지금도 일본 영토 내에는 ‘반영구적인’ 미군 기지가 있다. 뿐만 아니라 자위대라고 불리는 군대가 기본적으로 미국의 명령체계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자위대는 식민군이나 다름없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교전권을 금지한 ‘잘못’을 뒤늦게 후회한 미국은 이후 줄곧 일본 헌법의 개정, 특히 9조(일본의 전력 보유 금지와 국가 교전권 불인정)의 파기 혹은 대폭적인 교체를 목표로 극동정책을 생각해 왔다고 사카이 교수는 설명한다.
 
저자는 신식민주의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 “점령지역에서 미국은 직접 통치하지 않고 주민의 대표에게 주권을 이양한다. 형식상 미국과 그 국가는 대등한 외교관계를 맺는다. 동맹 혹은 집단 안전 보장을 구실로 그 지역에 미국의 군사시설을 설치하고 지위협정으로 군사 활동에 관한 치외법권을 보장한다. 종래 종주국과 식민지 사이에 보이는 직접 통치를 피하고 그 지역의 국가에 표나게 간섭하는 것을 가능한 한 피한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아베 총리가 수출 규제를 통해 무엇을 노리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본이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가려는 평화헌법 9조의 개헌은 아베가 공공연히 내건 정치적 목표다.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는 오는 21일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선인 3분의 2 의석을 얻기 위한 전략이라는 설도 있다. 이참에 동북아 안보 및 경제 협력의 틀 자체를 바꾸려는 속셈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의 속마음(혼네)을 제대로 읽고 대응해야 할 때다. 이 책은 지일(知日)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