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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이 당나귀 타고 다닌 "멋진 시골"은 어떤 곳일까

중앙일보 2019.07.19 12:00
[더,오래] 송동섭의 쇼팽의 낭만시대(33)
조르주 상드 저택. 프랑스 중부, 베리의 노앙에 위치해 있다. 여러 번 이 곳을 찾았던 프랑스 낭만파 대표적 화가 외진 들라크루아는 "노앙은 나를 사로잡고, 나에게 위안을 주며, 흔치 않게 모든 것이 아름다운 곳 중의 하나로, 항상 내 마음속에 있다"라고 했다. [사진 Wikimedia Commons]

조르주 상드 저택. 프랑스 중부, 베리의 노앙에 위치해 있다. 여러 번 이 곳을 찾았던 프랑스 낭만파 대표적 화가 외진 들라크루아는 "노앙은 나를 사로잡고, 나에게 위안을 주며, 흔치 않게 모든 것이 아름다운 곳 중의 하나로, 항상 내 마음속에 있다"라고 했다. [사진 Wikimedia Commons]

 
프랑스의 중부지역은 고도가 낮은 구릉과 비옥한 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다. 상드의 고향 노앙(Nohant-Vic)은 프랑스 중부의 베리 지방에 있다. 파리에서 약 300킬로 떨어진 노앙은 파리의 노트르 담 데 빅투아르 거리(Rue Notre Dame des Victoires)에서 마차를 타고 오를레앙(Orleans)과 비에르종(Vierzon)를 거쳐서 가는데 약 30시간이 걸렸다.
 
조르주 상드가 태어나기 약 10년 전 상드의 할머니는 이곳에 저택과 부속 토지를 사들였다. 그 토지의 총면적은 약 240헥타르에 이르렀다. 18세기에 지어진 저택은 성을 방불케 했고, 땅 위에는 공원과 농장이 있었다. 상드는 4살 때 이곳으로 와서 할머니와 살았다. 노앙의 농장에서는 딸기, 버찌, 포도, 자두, 살구, 복숭아, 멜론 그리고 밤을 수확했다.
 
어릴 때도 그랬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노앙의 자연과 하나 되어 살았던 상드였다. 주로 밤에 글을 썼던 그녀는 때로 새벽 3시경에 펜을 놓고, 집을 나가서 들을 따라 무작정 걸었다. 개울가에서 시간을 보내고 곤충들을 쫓아다니다가 돌아오면 정오쯤 되어있었다. 한적한 시골이라 어떤 때는 20리를 걸어도 사람을 만날 수 없었다.
 
해가 돋고 햇빛이 뜨거워져서 땀이 날 때면 옷을 입은 채 앵드르 강에 뛰어들었다가 다시 걸었다. 다시 온몸이 땀으로 젖으면 덤불에 옷을 벗어두고는 속옷 차림으로 미역을 감았다. 그러다 풀밭에 누워 낮잠을 자기도 했다. 노앙은 원초적인 삶의 모든 평안을 허락하는 곳이었다.
 
조르주 상드의 노앙 저택의 중앙계단. 사랑을 상징하는 하트 모양으로 보인다. [사진 송동섭]

조르주 상드의 노앙 저택의 중앙계단. 사랑을 상징하는 하트 모양으로 보인다. [사진 송동섭]

 
마요르카에서 망가진 몸을 마르세이유에 머물며 다소 회복했다. 쇼팽이 원기를 회복했을 때 조르주 상드는 자신의 안식처 노앙으로 그를 이끌었다. 전에 리스트와 함께 노앙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지만 스스로 거절했던 쇼팽에게 그곳은 낯선 곳이었다. 노앙까지는 긴 마차 여행이었다.
 
크고 좋은 마차를 구했지만 울퉁불퉁한 길에 흔들리는 몸을 막을 수는 없었다. 길은 넓은 평원으로 이어졌다. 그는 몸이 흔들리는 중에도 끝없는 지나가는 들을 내다보았다. 낯선 곳을 유난히 두려워하던 쇼팽이었다. 며칠 후 마차의 작은 창으로 버드나무와 참나무, 개울, 목초지가 보였고 몇 개의 부속 건물이 딸린 저택이 보였다. 노앙의 주변 광경은 쇼팽이 어릴 적 자주 들렀던 바르샤바 인근의 마조비아를 떠올리게 했다. 쇼팽은 마음이 놓였다. 일행이 노앙의 저택에 도착한 것은 1839년 6월이었다.
 
발데모사 수도원의 하늘에는 먹잇감을 찾는 독수리가 떠돌았지만 노앙에서는 나이팅게일과 종달새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쇼팽의 첫 마디는 “멋진 시골이야” 였다. 상드와 아이들의 소리, 그리고 하인과 주민들의 생활 소리 외에는 자연이 만든 음향만 가득했다. 담벼락으로는 덩굴장미가 피어있었고, 꽃 울타리 속에 숨은 개울과 연못을 감싸고 도는 길이 있었다. 그 길을 따라 늘어선 나무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앵드르 강은 고향의 우트라타 강을 떠오르게 했다.
 
상드는 시골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쇼팽이 불편하지 않도록 집을 꾸몄다. 플레옐 피아노도 구비해 두었다. 그는 부초 같은 떠돌이 생활 끝에 이제야 진정 고향의 품으로 돌아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상드는 잘 아는 의사를 불러 꼼꼼히 쇼팽을 검진하게 했다. 의사의 진단은 폐는 건강하다는 것이었다. 단지 후두염에 쉽게 걸릴 뿐이라고 했다. 규칙적인 식사와 충분한 휴식, 자상한 보살핌이 있으면 완쾌는 몰라도 증세가 완화될 것이라고 했다. 상드는 기뻐했고 쇼팽은 생기를 찾았다.
 
상드의 아들 모리스의 류마티즘은 다 나았다. 딸 솔랑즈는 말을 타고 씩씩하게 들판을 달렸다. 그들은 야외에서 식사를 했다. 이따금 가까이 사는 지인들을 초청해서 같이 식사도 하고 얘기도 나눴다. 저녁이 되어 방문객들이 떠나면 쇼팽은 상드를 옆에 두고 작곡한 곡을 피아노로 들려주었고 상드는 자신이 쓴 글을 읽어주었다.
 
일행은 그 지방의 계곡, 강, 옛 성터, 절벽을 찾아 소풍을 가기도 했다. 때로 그 소풍은 며칠이 걸렸다. 건강이 좋지 않은 쇼팽은 당나귀를 타고 다녔다. 손재주가 있는 상드의 아들 모리스는 그를 위해 안장을 만들었다. 일행은 건초 위에서 자기도 했다. 쇼팽은 여행에 피곤을 느끼기도 했지만, 상드는 자연에 동화되고, 신체의 활력을 자극하는 그런 여행에 쾌감을 느꼈다.
 
조르주 상드의 노앙 저택과 정원의 안내도. [자료 노앙 마을의 공식 홈페이지]

조르주 상드의 노앙 저택과 정원의 안내도. [자료 노앙 마을의 공식 홈페이지]

 
노앙은 세상사의 번거로움을 힘들어하고 애써 외면해온 쇼팽에게는 음악에만 몰두할 수 있는 완벽한 환경이었다. 그곳이 주는 평화 속에 쇼팽의 창작욕은 만개했다. 쇼팽은 순간순간 떠오르는 악상을 오선지에 옮겼다. 이후로 쇼팽의 작곡은 대부분 노앙에 체류할 때 이루어졌다. 그의 음악 인생은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마요르카에서의 곡들은 무겁고 어두운 빛이 있었지만 노앙에 오자 곡들의 분위기도 가볍고 밝은 것으로 바뀌었다. 작품번호 37의 두 녹턴은 잘 대비된다. 마요르카에서 작곡된 첫 번째 곡이 어둡고 우울한 빛이 있는 데 비해 노앙에서 작곡되었다는 두 번째 곡은 밝고 우아하다.
 
상드는 사랑이 넘치는 수많은 애칭으로 쇼팽을 불렀다. 쇼팽이 가진 여러 약점에도 불구하고 상드가 쇼팽을 그 후로도 오랫동안 헌신적으로 사랑했다는 것은 상드의 지난 ‘화려한’ 경력을 상기할 때 놀라운 일이었다. 수 많은 남성들을 쉽게 거치던 그녀의 모습과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오로지 주기만 하는 또 다른 모습 중 어느 것이 진정한 그녀의 모습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쇼팽은 상드의 보살핌 속에 평화로운 삶을 누리며 점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상드가 만드는 세계로 빠져들었다. 상드에 의하면 쇼팽이 사랑한 여인은 오직 그의 어머니뿐이었는데, 분명 상드가 만드는 그 세계도 어머니 품처럼 편안함과 푸근함을 주는 것이었다.
 
상드는 친구를 노앙으로 초대했다. 두 사람이 모두 친했던 폴란드 출신의 그셰마와를 초대하자 쇼팽은 그와 폴란드어로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아이들은 R를 독특하게 굴리는 폴란드어를 흉내 냈다. 사실 노앙에는 초대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손님들은 야외식사 후 당구를 치거나 산책을 했고 그렇지 않으면 방에 머물며 책을 읽거나 소파에서 쉬기도 했다.
 
프랑스 낭만파의 대표적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도 노앙에 자주 초대받았던 손님이었다. 상드는 그를 위해 따로 별채에 화실을 마련해주었다. 그는 상드와 쇼팽뿐만 아니라 동네 여인을 자신의 그림의 모델로 세우기도 했다. 그가 장미향이 풍기는 정원에서 그림을 그릴 때면 창문을 타고 넘어온 쇼팽의 피아노 소리가 새들의 노랫소리와 어울려 들려왔다.
 
조르주 상드가 그린 캐리커쳐. 쇼팽, 들라크루아와 함께 자기 자신을 그렸다. 프랑스 협회 도서관의 로방줄 컬렉션(Collection Lovenjoul de l'Institut de France) 소장.

조르주 상드가 그린 캐리커쳐. 쇼팽, 들라크루아와 함께 자기 자신을 그렸다. 프랑스 협회 도서관의 로방줄 컬렉션(Collection Lovenjoul de l'Institut de France) 소장.

 
쇼팽은 바르샤바의 가족들에게 상드와의 관계를 적당히 둘러댔다. 그저 좋은 사람이 자기를 보살펴 주고 있다고 했다. 마요르카에서부터 파리의 친구에게 보낸 편지마다 자신의 행적에 대해 비밀을 요청했던 쇼팽이었다. 그는 여전히 추문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바르샤바의 가족에게도 상드와의 관계가 자세하게 알려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물론 두 사람을 둘러싼 여러 가지 소문들은 파리 사교계에 돌아다녔고 바르샤바까지 흘러 들어갔을 것이다. 쇼팽은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안식을 주는 집을 얻은 쇼팽은 이후로 일 년을 반으로 나누어 여름이 있는 반은 노앙에서, 겨울이 있는 나머지 반은 파리에서 생활하였다. 다음 편은 노앙에서 여름을 보내고 다시 찾은 파리에서 확인되는 변화된 쇼팽에 대한 이야기이다.
 
초기 노앙시절 발표된 쇼팽의 작품으로 유명한 것은 소나타 2번 f# 단조이다. 이 곡은 풍부한 감성과 독창적 전개로 낭만주의 피아노곡의 걸작으로 꼽힌다. 3악장에는 쇼팽이 몇 해 전 작곡해 두었던 장송행진곡이 들어 있다.
 
송동섭 스톤웰 인베스트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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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동섭 송동섭 스톤웰 인베스트 대표 필진

[송동섭의 쇼팽의 낭만시대] 한국인이 좋아하는 고전 음악가 쇼팽. 피아노 선율에 도시적 우수를 세련된 모습으로 담아낸 쇼팽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일생의 연인 상드와 다른 여러 주변 인물에 관련된 일화를 통해 낭만파시대의 여러 단면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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