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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에 도전 한국판 백설공주 애니 “먹어본 음식이 시선끌죠”

중앙일보 2019.07.19 08:00
애니메이션 '레드슈즈' 연출을 맡은 홍성호 감독과 김상진 애니메이션 감독을 제작사 로커스 사무실에서 만났다. [사진 NEW]

애니메이션 '레드슈즈' 연출을 맡은 홍성호 감독과 김상진 애니메이션 감독을 제작사 로커스 사무실에서 만났다. [사진 NEW]

“사회 인식의 변화는 거스를 수 없는 것 같아요. 옳은 방향의 진보죠. 디즈니의 흑인 인어공주뿐 아니라 미국에선 성소수자‧소수민족 등 다양한 캐릭터가 TV에 많이 등장하고 있어요. 이런 변화가 앞으로 더 확대되리라 생각합니다.”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에서 한국인 최초 수석 애니메이터로 20년간 몸담은 김상진(60) 감독의 말이다. 공주 자매가 주인공인 1000만 영화 ‘겨울왕국’을 비롯해 하와이 원주민 설화 바탕 ‘모아나’, 주체적 여성상을 강조한 ‘라푼젤’, 아시아계 소년의 모험담 ‘빅 히어로’ 등의 캐릭터 디자인으로, 다양성을 향한 디즈니의 변화에 발맞춰온 그는 3년 전 디즈니를 떠나 한국 애니메이션 '레드슈즈'에 합류했다.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토종 애니메이션 '레드슈즈' 한 장면. 마녀인 새엄마의 마법 구두를 신은 스노우 공주는 뜻밖의 모습으로 변신하게 된다. [사진 NEW]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토종 애니메이션 '레드슈즈' 한 장면. 마녀인 새엄마의 마법 구두를 신은 스노우 공주는 뜻밖의 모습으로 변신하게 된다. [사진 NEW]

25일 개봉하는 ‘레드슈즈’는 국내 제작사 로커스 스튜디오가 220억원을 투입한 대작 애니메이션. 외모에 너무 집착한 벌로 난쟁이가 된 ‘꽃보다 일곱 왕자’들이 스노우 공주를 도와 사라진 국왕을 찾는 모험을 그렸다. 널리 알려진 ‘백설공주’ 이야기를 재해석해, 고전 동화 속 외모지상주의를 꼬집는 작품이다. 애니메이션 감독을 맡은 김상진 감독을 각본 겸 총연출 홍성호(53) 감독과 개봉 전 만났다.  

디즈니 애니메이터 출신 김상진 감독
홍성호 연출과 애니 '레드슈즈' 도전
제작비 220억…123개국에 선판매
라인프렌즈와 캐릭터 사업도 펼칠 계획

 
'겨울왕국2' 거절하고 '레드슈즈' 택한 이유
공주를 돕는 일곱 난쟁이들. 상대방을 외모로 판단하는 얄팍한 생각 탓에 저주를 받아 이런 모습이 됐다. [사진 NEW]

공주를 돕는 일곱 난쟁이들. 상대방을 외모로 판단하는 얄팍한 생각 탓에 저주를 받아 이런 모습이 됐다. [사진 NEW]

홍 감독은 “늘 동화를 보며 백설공주가 같이 애쓴 일곱 난쟁이는 아랑곳없이 백마 탄 왕자와 잘되는 것에 대한 불만”에서 출발한 이야기라고 웃으며 설명했다.  

“저도 상대적으로 키가 작고 소위 잘생긴 스타일은 아니에요. 있는 그대로 나를 사랑해줬으면 좋겠는데 사람들은 자꾸 조건을 자꾸 걸더군요. '너는 키는 작지만 성실하고 똑똑해' '작은 거인이야' 등으로요. 그조차도 편견이고 강요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있는 그대로 서로 받아들일 수 없을까. 내 얘기라고 생각하며 시나리오를 썼다”고 돌이켰다.  
이런 진심이 통한 걸까. 김 감독이 ‘겨울왕국2’ 제안도 뿌리치고 디즈니를 나와 ‘레드슈즈’에 힘을 보탰다. “다 아는 동화를 독특하게 바꾼 시각이 재밌었어요. 디즈니에서 주어진 작업은 이미 설정이 다 끝난 시리즈의 속편들뿐이었죠. 디즈니에서 배운 것을 활용해 새로운 모험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의 말이다.  
초록 난쟁이들의 저주 받기 전 모습. '꽃보다 일곱 왕자'라 불렸다. 난쟁이가 된 후에도 아무도 보는 눈 없이 혼자 있을 땐 이런 본모습으로 돌아간다. 이런 세세한 설정이 이야기에 재미를 불어넣는다. [사진 NEW]

초록 난쟁이들의 저주 받기 전 모습. '꽃보다 일곱 왕자'라 불렸다. 난쟁이가 된 후에도 아무도 보는 눈 없이 혼자 있을 땐 이런 본모습으로 돌아간다. 이런 세세한 설정이 이야기에 재미를 불어넣는다. [사진 NEW]

 
'번개' 부적 쓰는 흑발 왕자…한국색 넣어 
“딱 하나 마음에 안 든 게 작업할 캐릭터 숫자가 지금껏 제가 한 영화 중 가장 많았어요. 주요 캐릭터 디자인만 해도 다들 변신을 하니 열여섯 가지나 됐죠.” 김 감독이 웃었다. 클로이 모레츠, 지나 거손 같은 할리우드 스타가 더빙에 참여하는 등 해외 시장을 겨냥했지만, 한국적인 요소도 불어넣었다. 일곱 왕자 중 리더인 멀린이 그 예다. 그는 머리색이 검고, 마법을 쓸 땐 한글로 ‘번개’라 적힌 부적을 던진다.  
한국인으로 설정된 멀린 왕자. 한글로 '번개'라 적힌 부적을 사용한다. 한국말 더빙판과 영어로 녹음한 자막판 모두 한국어 크레딧을 집어넣은 건 황수진 프로듀서의 제안이었다고. [사진 NEW]

한국인으로 설정된 멀린 왕자. 한글로 '번개'라 적힌 부적을 사용한다. 한국말 더빙판과 영어로 녹음한 자막판 모두 한국어 크레딧을 집어넣은 건 황수진 프로듀서의 제안이었다고. [사진 NEW]

동화 속 공주보다는 여느 10대 소녀같이 묘사한 레드슈즈에겐 의도치 않게 “한국적인 뉘앙스가 들어갔다”고 그는 설명했다. “저희 애니메이터들이 한국 사람이고 평소 자신이 쓰는 몸동작을 참고해 디자인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녹아든 것 같아요.”
 
"음식장사와 비슷, 먹어본 음식이 시선 끌죠"
'레드슈즈'에는 ‘백설공주’에 더해 ‘개구리 왕자’ ‘빨간구두’ ‘아더왕의 전설’ 등 여러 동화들의 패러디 요소도 들어갔다. 이렇게 말하니 홍 감독이 고충을 털어놨다. “1년에 애니메이션이 100편씩 개봉하는데 95편은 언제 들어갔다 나오는지도 몰라요. 오리지널 스토리로 개발하면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듣도 보도 못한’ 음식을 먹는 느낌을 받는가봐요. 음식장사와 비슷한 거죠. 먹어본 음식을 디밀어야 맛이라도 보려 하더군요.” 김 감독도 같은 이유로 “디즈니도 오리지널 스토리를 개발하길 부담스러워 한다”고 했다.  
김상진 애니메이션 감독이 이번에 디자인한 캐릭터 중 가장 애착 간다고 말한 마녀 레지나. 마릴린 먼로를 토대로 초기 디자인한 뒤, 주름 묘사 등에 공을 들였다. [사진 NEW]

김상진 애니메이션 감독이 이번에 디자인한 캐릭터 중 가장 애착 간다고 말한 마녀 레지나. 마릴린 먼로를 토대로 초기 디자인한 뒤, 주름 묘사 등에 공을 들였다. [사진 NEW]

이번 영화에 가장 애를 먹은 것은 자금조달이다. 애니메이션 특성상 개발에 오래 걸리고 많은 비용이 필요한데다 국내에서 성공을 거둔 토종 애니가 드물어서다. 홍성호 감독은 “이번에 들어간 제작비 220억원이 지금 관객의 눈높이에 맞는 완성도를 위한 최소한의 비용”이라며 “한국 애니 최고 기록인 ‘마당을 나온 암탉’의 220만 관객 정도론 도저히 리쿱이 안된다. 전 세계 세일즈를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런데 “중국은 사드 문제 때문에 명함도 못 내밀고 미국은 애니메이션 시장을 디즈니가 장악해 나머지 중소 배급사들이 거의 다 무너지는 상태였다”면서 “회사(로커스) 차원에서 돈을 벌면서 이번 작품을 만들어나갔다”고 했다.  
 
네이버 라인프렌즈와 캐릭터 사업 계획
김상진 감독이 레드슈즈의 스케치를 보여줬다. 왼쪽 아래쪽 곰인형은 이번 애니 속 캐릭터를 토대로 만든 것이다. [사진 NEW]

김상진 감독이 레드슈즈의 스케치를 보여줬다. 왼쪽 아래쪽 곰인형은 이번 애니 속 캐릭터를 토대로 만든 것이다. [사진 NEW]

‘레드슈즈’는 지난 2월 유럽 최대 규모 ‘유럽필름마켓’에서 최초 공개해 세계 123개국에 선판매했다. 북미 시장 배급도 타진 중이다. 캐릭터 상품화도 고려하고 있다. 애니판 ‘런닝맨’을 제작하며 인연을 맺은 네이버 계열사 라인프렌즈가 먼저 사업을 제안해왔단다.  
“한국 애니라고 하면 취학 전 아동용·유아용엔 강점이 있죠. 하지만 산업적으로 더 위로 치고 올라가지 못하고 있어요.” 홍 감독의 말에 김 감독도 “아직 한국 애니만의 뚜렷한 강점이 없다”고 따끔하게 말했다.  
2003년 개봉 당시 영상미로 주목받은 한국 애니메이션 '원더풀 데이즈'. [사진 아우라엔터테인먼트]

2003년 개봉 당시 영상미로 주목받은 한국 애니메이션 '원더풀 데이즈'. [사진 아우라엔터테인먼트]

그간 해외 진출 가능성을 주목받은 애니가 없진 않았다. 16년 전 홍 감독이 참여한 ‘원더풀 데이즈’가 한 예다. 그러나 기대만큼의 성과는 없었다. “단순하죠, 재미가 없으니까. 그림만 예쁘지, 시나리오는 부족했어요.” 홍 감독의 말이다. 그는 “상업적으로 성공 못할 소재와 재미가 없었던 부분은 우리 스스로 인정하고 반성해야한다”면서 “이번 ‘레드슈즈’도 잘 안되면 냉정하게 되짚어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애니 디즈니서 기록·분석 작업 배워야" 
김상진 감독이 캐릭터 디자인에 참여한 디즈니 애니 '겨울왕국' 스케치.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김상진 감독이 캐릭터 디자인에 참여한 디즈니 애니 '겨울왕국' 스케치.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김 감독은 디즈니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을 이렇게 꼽았다. “미국은 아주 치가 떨릴 정도로 ‘기록’에 집착해요. 애니메이터가 요만한 노트에 손으로 찍 갈겨 쓴 캐릭터 설정, 회의 중 낙서까지 모든 자료와 경험을 아주 무서울 정도로 관리하죠. 디즈니가 지금 옛날 그렇게 2D 작업했던 것들을 디지털로 전환하고 있는데 그 작업이 아직도 안 끝났을 정도예요. 성공이든 실패든 그 요인을 분석해서 쌓아가며 이뤄지는 것들이 있어요”  
그는 “한국 애니메이션은 역사가 꽤 깊은 데 비해 그런 기록과 분석이 아쉽다”면서 “이제부터라도 경험을 쌓아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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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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