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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의 시선] 정의와 이상 뒤의 집착과 몽상

중앙일보 2019.07.19 00:43 종합 28면 지면보기
박재현 논설위원

박재현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민정수석이 나온 경남고와 혜광고는 부산의 구도심에 있다. 지금은 해운대와 광안리 등에 밀렸지만 두 사람이 학교에 다닐 땐 부산의 중심지였다. 항도의 상징인 국제시장, 자갈치시장, 용두산공원, 영도다리 등이 있다. 문 대통령 가족처럼 이북에서 내려온 피난민과 생계를 위해 찾은 다른 지역 사람들 대부분이 여기에 정착을 했다. 일본 문화에도 개방적이다. 시민들은 일본의 고시엔 고교야구 대회와 드라마를 보며 자연스럽게 일본을 받아들였다. 투박한 지역적 특성과 항구도시의 개방성이 합쳐지면서 부산 특유의 묘한 정서가 이곳에서 꿈틀댔다.
 

조국 법무장관행 기회이자 위기
개인적 소신·이념에서 해방돼야
‘마!’란 부산 사투리 뜻 들어야

하지만 정치적으론 진보세력에게 쉽게 문을 열지 않는다.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 대통령은 자신의 득표율(41.1%)보다 낮은 38.7%의 지지를 얻는 데 그쳤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오거돈 부산시장이 당선될 때도 중앙당 차원의 지원 유세는 별로 없었다. 여기다 최근 각종 조사에서 나타나는 집권세력 지지율은 30% 초반에 불과하다. 대권(大權)을 꿈꾸는 조 수석이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출마하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왜 두 사람은 정치적 지지의 외연을 넓히는 데 실패하고 있을까.
 
두 사람과 관련해 전달된 에피소드를 보자.
 
#사례 1
 
시민=“변호사님 저도 책 하나 주세요.” (※문 대통령의 당시 변호사 사무실에 자서전 『운명』이 쌓여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문 변호사=“하하. 나중에 드릴게요.” (※실망한 시민은 나중에 문 대통령 친구로부터 “책을 다른 사람에게 주려고 준비한 것이라 한 권을 따로 빼서 줄 수 없었다”는 설명을 들었다)
 
#사례 2
 
검찰 간부=“수사권 조정에 대한 검찰의 반발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조 수석=“원칙이 무너지면 개혁을 할 수 없습니다.” (※두 사람은 더 이상 대화를 진전시키지 못했다고 한다. 검찰 간부는 조 수석이 ‘해맑고 순수한 사람’이라고 표현하며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아마도 지지자들은 원칙과 정의를 지키는 것에 대해 쓸데없이 흠집을 내려는 의도라고 주장할 것이다. 반면 비판자들은 한 사람은 지나치게 정의와 명분에 집착해 융통성이 없고, 또 한 사람은 현실을 도외시한 몽상가라고 힐난하지 않을까.
 
차기 법무장관으로 사실상 확정된 것으로 알려진 조 수석이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한·일 갈등에 대한 보수언론의 보도를 비판하고 있다. 한때 법무부에서 연구위원으로도 있었던 이력을 감안하면 법무장관 행은 개인적으로 엄청난 영광일 것이다. 그만큼 그의 언행에도 자신감이 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에겐 정점으로 가는 과정이지만 비판 여론을 감안하면 또 다른 위기로 해석할 수 있다. 그의 역량과 잠재력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때마침 최근 출간된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저서 『대변동(Upheaval)』은 위기에 따른 선택과 변화를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위기의 상태를 인정하고, 개인적 책임을 수용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개인적 제약으로부터 해방돼야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조 수석의 행보는 어떨까.
 
이 정부 출범 후 이어진 크고 작은 위기에 그와 집권층은 어떤 모습을 보였나. ‘부산 싸나이’다운 화끈함을 바랐던 것은 애초부터 기대난망이었나. 선비로서의 문제의식도 좋지만 상인으로서의 현실감각을 갖춰 달라는 것을 친일과 보수의 프레임으로 매정하게 내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절차적 정당성과 민첩한 판단력을 바탕으로 한 실사구시가 없이 어떻게 국가적 위기를 해결하려고 하는지 답답할 뿐이다. 권력에 대한 비판 없이 어떻게 언론의 기능을 말할 수 있을까. 과거 보수정부 때의 민정수석 역할과 다른 게 뭔지도 알 수 없게 됐다. “비서로서의 소임을 다한 뒤 학교로 돌아가겠다”는 다짐이 법무장관 행으로 이어져도 언론은 아무런 문제 제기를 하지 말아야 하는지 묻고 싶다.
 
열렬한 야구광이기도 한 조 수석은 일전에 “나의 바람은 프로야구단 롯데자이언츠의 구단주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도 롯데 응원단들이 내뱉는 “마!”라는 함성의 의미를 잘 알 것이다. 이 말에는 “그렇게 하지마” “어휴, 정말!” 등 부산 사람들이라야 쉽게 알아듣는 이심전심적 뜻이 포함됐다.
 
아마 많은 시민들은 현 정부를 향해 “마!”를 외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참, 그 ‘마!’에는 애정이 담겨 있을 때가 많다.
 
박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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