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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국익의 시간과 보편의 시간

중앙일보 2019.07.19 00:35 종합 31면 지면보기
박원호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박원호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주, 소수 인종 출신의 미국 여성 하원의원 4명을 대상으로 “범죄가 창궐하는 자기 나라”로 되돌아가라는 직설적인 트위터를 몸소 남겼다. 일국의 대통령이 남겼다고 믿기 어려운, 트럼프 대통령의 평소 언행을 감안하더라도 인종주의적 발언이 금기시되는 미국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발언이었다. 미국 하원은 지난 화요일, 해당 발언에 대한 공식적 규탄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단기적, 협소한 ‘국익’ 계산에
트럼프를 지지하는 한국민들
보편적 가치에 대한 관심없어
국제적 존중 영원히 힘들어

돌이켜보면,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한 번도 논란의 중심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지난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많은 이들의 예측을 뒤집고 대통령에 당선된 이래, 국내적으로는 반(反)이민자 정책에서부터 국제적으로는 미국의 기존 통상정책들을 뿌리째 뒤흔드는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미국 갤럽에서 133개국 시민들을 대상으로 수행한 조사에 의하면 트럼프 집권 이후 “미국 리더십에 대한 지지도”가 전세계적으로 기록적인 최저점인 30%를 기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독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북한과의 적극적인 대화에 나선 그의 행보에 대한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트럼프 대통령은 그 동기가 무엇이었건간에 북한과의 직접적인 대화에 나서는데 주저하지 않았고, 적어도 한반도에 평화와 대화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는데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감은 정부와 시민들 공히 지니고 있는 듯하다. 트럼프 대통령을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하자는 말이 나오는 곳은 전세계적으로 한국이 유일할 것이며, 한국 이외의 곳에서는 아마 농담으로 받아들여질 이야기일 것이다. 이미 그의 재선을 염려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사실 한국민들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사랑은 그를 철저하게 ‘이용’하자는 입장으로 요약될 것이다. 국익을 위하여, 혹은 우리 민족의 안녕과 번영을 위하여 모든 도덕적 판단은 뒤로 한 채, 악마와도 손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이런 관점을 정치학자들은 “현실주의”라 부른다.
 
만국에 대한 만국의 보이지 않는 투쟁이 벌어지는 곳,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질서에서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될 수 있으며 결과가 수단을 정당시한다는 이런 관점은 중학교 교과서에 나올 만큼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다. 강대국들 사이에 끼인 약소국으로서 생존의 투쟁을 벌여야 했던 굴곡진 한국현대사는 그 자체로서 현실주의의 교과서가 될 만하다. 국익이 외교의 가장 중요한 고려대상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서 항상 참이며, 한국이 처한 환경에서는 더욱 누구나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협소하고 근시안적으로 이해된 국익은 우리를 보편에서 멀어지게 하고 있다. 협소하다는 건 지나치게 자민족 중심주의라는 의미이며 근시안적이라는 것은 우리의 국익이 고려되는 시계(視界)가 철저하게 눈앞의 즉각적인 비용의 대차대조표라는 점이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우리 모두를 세계적 보편성에서 멀어지게 하고, 한국이라는 나라가 이제는 수행해야 할 국제사회에서의 지도적 역할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예컨대, 우리는 트럼프가 전세계를 대상으로 시작한 무역분쟁을, 지난 수많은 세월의 협상과 논의 위에서 쌓아올린 국제자유무역 질서를 일거에 파괴하는 인류사적 관점에서 생각하고 비판한 적이 있었는가. 우리의 관심사는 오직 한국 철강품목의 쿼터 면제였다. 트럼프 이민국의 불법체류자 수용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인권침해 문제들은 미국내 뿐아니라 국제사회를 들끓게했던 비난을 받았지만 정작 우리 언론에서는 그 내용을 거의 찾아볼 수도 없었다. 우리가 ‘인권’이라는 단어에 관심을 가질 때는 유일하게 ‘북한인권’이라는 맥락 속에서이기 때문이다. 사소한 부정의는 우리의 관심사가 아닌 그들의 국내 문제이며, 우리는 주어진 조건에서 최대한을 챙기면 된다는 생각일 것이다.
 
국익은 지금 절대적으로 보이겠지만 그 국익의 시간은 영속하지 않는다.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건 하지 않건 트럼프를 둘러싼 짧은 국익의 순간은 언젠가 종료될 것이며, 어쩌면 우리는 그 이후에 불어올 역풍(逆風)을 미리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한반도 평화라는 목적을 위해 트럼프를 ‘이용’하는 것이, 동시에 트럼프 재선을 위해 북한과의 대화가 이용당하는 것이라면, 빨리 가려는 노력이 오히려 보편적 호흡과 순리적 과정보다 늦을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북한과 대화를 진행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 민족사적 당위로서 통일체제를 복원하는 일이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가 세계평화에 기여하기 때문이며, 미국의 대통령이 트럼프가 아닌 그 누구라 하더라도 설득할 수 있는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단기적 국익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보편성의 관점에 선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미국 대통령의 부도덕성이나 타국의 인권문제는 우리에게는 그야말로 먼나라 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미국이건 어느 나라였건, 부정의와 인권침해에 침묵하고 둔감해지는 순간, 국제사회에서 우리가 서 있는 입지는 꼭 그만큼 좁아든다.
 
박원호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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