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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희의 한반도평화워치] 경제 보복엔 엄중 대처하되 징용 문제엔 협상력 발휘해야

중앙일보 2019.07.19 00:02 종합 27면 지면보기
한·일 갈등 방치해도 좋은가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한·일 갈등이 정면충돌의 위기로 빠져들고 있다. 한국 정부의 무대책·무성의에 참을성의 한계를 느낀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라는 이름으로 경제 보복의 칼을 빼 들었다. 한국 정부는 유효한 해결책 모색보다는 반일 감정을 볼모로 강경 대응에 집착하고 있다. 한·일 어느 한쪽이 물러설 기미도 별로 없어 충돌과 파국이 다가오는 느낌이다. 한·일 갈등을 이대로 방치해도 좋은가?
 

증거없이 남북한 밀거래 호도한
일본 비우호적 행위엔 단호히 대처
징용 문제엔 양국이 수용 가능한
후속 조치 진지하게 모색해야

갈등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일 양국 정부의 언동을 보면 전략적이라기보다 감성적이고, 종합적이라기보다 단세포적이며, 상호 배려보다는 상대 비난에 집중하고 있다.
  
‘단순화의 오류’ 빠진 한·일 정부
 
한·일 정부는 모두 ‘단순화의 오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한국이 싫은 게 아니라 문재인 정부가 싫다”고 얘기한다. 한국 정부는 “일본이 싫은 게 아니라 아베 정부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한다. 정부가 국민을 대표하고 국가를 상대로 외교를 한다는 생각이 적다. 오히려 국민을 볼모로 잡고 있다. 양국을 오가는 1000만 명의 국민을 갈등을 흡수할 수 있는 충격 완화제로 간주하고, 자신들은 역으로 책임을 방기한 채 갈등을 조장하는 양상이다. 하지만 ‘한국=문재인’, ‘일본=아베’라는 단순한 도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갈등의 실마리는 풀리지 않을 것이다.
 
한·일은 모두 자신은 선이자 정의이고, 상대방은 악이자 불의라고 보고, 자기 생각이 관철되지 않으면 ‘징벌의 논리’로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쟁의 논리가 협상의 논리에 앞서는 연유다. 한국은 일본이 불법적인 행동을 한 가해자이니 사죄·반성· 보상을 하지 않는다면 징벌적 조치도 불가피하다고 본다.
 
일본은 한국이 늘 ‘골대를 움직이는 나라’이고 ‘법과 조약을 준수하지 않는 믿을 수 없는 상대’라고 보면서 준법에 실패하면 징벌적 조치로 응수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외교를 법과 징벌의 논리로 다루다 보니 가능성의 예술인 정치와 외교의 영역은 사라지고 있다.
  
상대방 나쁜 것만 들춰내며 편견 증폭
 
이런 비전략적 자세는 상대방에 대한 몰이해와 오해, 착시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국에서는 일본은 과거사의 가해자이고 한국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통용된다. 과거사 회귀형 사고법에서는 과거사가 한·일 관계의 거의 전부이고, ‘반일은 일상화된 문화코드’가 된다.
 
역으로 일본의 우익들은 한국을 아직도 대국-소국의 틀에서 본다. 과거사 반성 요구를 ‘소국의 응석’이라고만 보고 거듭된 사과 요구에 피로감을 호소한다. 한국은 국가 전체가 ‘반일의 응집’이고 중국에는 한없이 관대한 ‘중국으로 경사된 나라’라고 색칠한다. ‘불신이 일상화된 문화코드’다. 과거사와 상대 비하에만 앵글을 맞추고 상대방의 나쁜 곳만을 들추어내는 미디어에 의해 오해와 편견을 증폭하고 있다.
 
일본의 수출 규제는 강제 징용 판결 이후 협의-중재-제3국 중재를 요구하는 일본에 대해 무관심·무시·무성의와 방치로 일관한 한국에 대해 인내심의 한계에 달한 아베 총리의 성급한 보복 조치다. 이는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의 자산을 현금화하면 대응 조치를 할 수밖에 없다던 일본 외무성의 거듭된 언급과 상치된다.
 
이번에는 외무성은 뒷자리로 물러나고 관저에 가까운 경제산업성이 전면에 나섰다. 외교적 분쟁을 경제적 조치로 치환하여 상대방을 겁박하는 ‘경제의 무기화’는 치졸한 수법이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자유·공정·무차별 원칙에 기반을 둔 자유무역을 강조한 일본 자신의 어법을 뒤집는 처사이기도 하다.
 
구체적 증거 제시도 없이 마치 한국이 북한과 밀거래를 통해 첨단 물질을 팔아넘긴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수출 관리가 허술하고 한국을 신뢰할 수 없어서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하겠다는 것은 15년간 한국 기업과 거래한 자신들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안전 보장을 이유로 한 비우호국 취급은 외교적 배신행위에 가깝다. 차라리 이참에 잘 나가는 한국의 대표기업인 삼성전자·LG전자·SK하이닉스를 못살게 굴어 일본의 산업 경쟁력을 회복하고 싶다고 고백하는 편이 솔직할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수출 규제는 강제 징용 판결 이후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않은 한국에 대한 징벌적 규제라는 점을 잘 새겨야 한다. 한국 일각에서는 이를 참의원 선거에 불리한 자민당이 국내 정치용으로 내놓은 일시적인 조치라고 본다. 하지만 자민당은 60석을 넘게 획득할 공산이 크고 공명당의 13~14석과 합치면 여당의 승리는 이미 굳혀져 가는 형세다. 단순한 국내 정치용으로 치부하는 것은 한국의 오산이다. 아사히신문 조사에 따르면 일본 국민의 56%가 아베의 조치를 지지하고 여당 지지층에서는 지지가 76%에 달한다. 일본 국민도 한국에 대해 싸늘하다는 방증이다.
 
한국 정부가 강제 징용 판결에 대한 후속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면 2차, 3차 보복 조치를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일본도 손해를 보고 아프겠지만 한국이 훨씬 더 큰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비대칭적 피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해 정당성을 호소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결론이 도출될 때까지 2~3년은 걸리기 때문에 당장 실효적 대책은 되지 못한다.
  
한국 정부, 강온 양면 전략 필요
 
이번 기회에 부품·장비·소재 분야의 대일 의존도를 줄이자는 것은 아주 좋은 생각이다. 그러나 연구·개발에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고, 일본 기업들이 가진 특허권의 벽을 넘어서야 한다.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시간의 문제다. 그 사이에 한국의 주력 산업인 전자와 반도체 분야가 주춤거릴 것이고 연관 기업들이 고충을 겪을 것은 자명하다. 세계 반도체 시장에 착란을 가져올 것도 분명하지만, 1차 피해는 한국 기업이 감수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일본에 대해 ‘강온 양면 전략’으로 임해야 한다.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는 사드 배치에 대해 한국을 괴롭힌 중국과 유사한 반자유무역적 발상을 공표한 것이다. 비난받아 마땅하다. WTO에 제소하여 조치의 합법성과 정당성을 물어보는 것도 당연하다. 특히 안전 보장상의 이유로 한국을 북한과 연루시킨 비우호적 외교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일본에 따져보는 것이 마땅하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가 ‘수출 금지 조치’가 아닌 ‘수출 제한 조치’임을 잘 알고 대처할 필요가 있다. 성가신 절차가 늘어나고 납품 기일이 늦어지는 것이지 일본이 수출을 안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 일본이 단기간에 수출 규제 조치를 거두어들일 가능성이 크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수출 규제가 지나치게 강경 일변도의 원칙주의로 흐르지 않도록 일본과 원활한 소통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
  
1+1+ α 협상안 필요
 
일본을 강경 일변도로 몰아붙이거나 지속적인 대치 국면을 만들어가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일본과 타협할 수 있는 것은 타협하고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은 주는 협상의 기술을 발휘할 때다. 일본이 요구해 온 후쿠시마 인근 8개 현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와 관련, 일본이 수출 품목을 전수 조사한다는 조건으로 일부 해제하는 것도 우호적 제스처가 될 수 있다. WTO에서 승소한 상태라 우위에 선 협상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강제 징용 판결에 대한 정부의 후속 조치를 진지하게 고려해볼 타이밍이 됐다. 일본과 사전 협의 없는 한국의 졸속한 대안 제시는 오히려 일본을 더 자극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 양국이 수용할 수 있는 대안 모색에 적극 나서야 한다. 어떤 형태로든 한국 정부가 포함되지 않는 조치는 일본이 응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일본 정부와의 외교적 협의를 통해 시간을 확보하고 이제라도 전문가들로 구성된 민관합동위원회를 구성하여 위기를 타개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늦어지고 미뤄질수록 한국의 피해는 커질 뿐이다. 피하는 게 능수는 아니다. 비난만 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다양한 지혜를 모으고 원활한 의사소통을 하면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조치 마련을 서두를 때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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